바다 이야기

마산 합포항의 추억

by 커피탄 리

어려서부터 나는 바다에 많이 갔다. 휴가철을 맞아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가거나, 여름방학 때 교회 수련회를 끝나고 난 뒤라거나,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무리 지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혼자 마음을 식히기 위해 바다로 간 고등학생 시절이라거나. 내가 살던 곳이 바다와 인접한 곳이라 그런 것일까?


나는 어려서 많은 지방에 살았다. 내륙과 해안을 거르지 않고. 내륙에 있을 때도, 마음이 허무할 때 자주 바다를 찾았던 것 같다. 탁 트인 풍경을 보며 마음에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을까? 열아홉과 스물, 마산에서 처음 입시 미술을 하던 시절, 나는 저녁 휴식 시간을 쪼개어 거의 매일같이 합포 바다를 보고 왔다. 합포바다는 작은 바다였다. 하늘과 하늘에 흩뿌려진 노을 먹은 구름의 영역은 넓었다. 하지만 작은 등대가 항만시설 끝에 서 있고, 부두 안쪽으로 작은 어선들이 물에 그늘을 비추고 있는, 또 큰 섬들에 시야가 가로막혀 수평 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호수에 가까웠다.


그래도 바람은 불었다. 물결은 바람의 지휘에 맞게 좌 혹은 우로 행진했다. 바닷물은 대체로 뿌옜다. 부두와 어선 갑판 위에는 항상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정지용의 시집을 읽었다. 읽었다기 보단 외워 노래했다. 쓸쓸한 노랫말이 물결과 바람을 타고 먼 섬에까지 닿았으려나? 부산 바다와 달리 흐린 날도, 안개가 끼는 날도 잘 없었다. 하지만 파도는 서늘했고 쓸쓸했다.


항상 생각한다. 동해 바다가 거칠고도 고요한 대양이라면, 남해 바다는 정원 같다고. 마산항의 바다가 딱 그랬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인 바다는 어디까지나 울진과 포항의 거친 바다일 것이다. 하지만 내 공허한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바다는 이 작은 바다. 마산 합포항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자퇴 후 2년 뒤, 입시미술학원에 들어갔다. 반년 뒤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며, 나는 그림보다 글쓰기에 더 집중했다. 입시미술은 정말 예술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문학은 예술이었고, 글쓰기는 삶이었다. 그것도 개척하는 삶. 나는 무한의 공간이 있는 흰 공책 위로, 수많은 내 삶의 이야기를 묘사해 갔다. 마산, 합포바다에서. 학원에서 합포항까지의 20분 길을 걸으며. 손에는 낡고 작은 메모장을 들고. 4500원 하는 콩나물 국밥을 먹고 나서. 노란 은행잎들이 떨어져 있는 거리를 따라서.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는 뭣도 몰랐고 고독했고 늘 혼자였지만, 적어도 문학의 강물에 몸을 푹 담그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재미난 발상이 떠올랐다. 곁에 사람이 없다고 외롭지도 않았다. 그냥, 글쓰기에 미쳐 있었다.


물에 발 한 번 담그지 않았지만, 나는 바다를 사랑했다. 시를 사랑했고 글쓰기를 사랑했다. 나는 그 세 요소에 둘러싸여 아주 행복한 일대를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학이 내 삶에서 멀어져 가고, 사람과의 신뢰관계가 회복되었다. 사람과의 애정이 싹트면서, 문학이 멀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고독했기에 선택했던 읽고 쓰기였으니까. 마음이 많이 말랑해졌다. 이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나는 이제 바다를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울 때 찾는다.


혼자 흰모래를 밟아가며, 차가운 맞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거닐면, 모래 알갱이의 숫자만큼 컸던 외로움이 사그라든다. 그저 수평선에, 수평선 모서리로 떨어지는 붉은 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짭짤한 바닷바람에 소금기를 머금은 억새들은 무겁게 고개를 턴다. 몇몇 사람은 보물 찾기를 하듯, 모래사장 위를 돌아다닌다. 나는, 오로지 나 혼자만은 다르다. 나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부두로 간다. 방파제를 큼직하게 뛰어넘는다. 바닷개와 인사한다. 미역 냄새를 맡는다. 방파제 끝에 서서, 아무도 없는 등대에 서서, 드넓은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른다. 악- 악- 악-
그럼 내 막막하고 공허한 속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진다. 나는 숨을 몰아쉰다. 햇빛이 들지 않는 등대 그늘 안에 주져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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