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날씨는 변한다. 특히 여름에는, 자주. 날이 맑았다가도, 금세 흐려지기도 하는 것이 여름 날씨다. 차가운 비가 총알같이 쏟아졌다가도 금세 잠잠해져 버리는 것이 여름 날씨다. 날씨에 따라 마음도 달라지는 것 같다. 맑은 날씨에는 활짝 갰다가, 흐린 날에는 급하게 어두워진다.
비가 내리는 아스팔트 위에는 차들이 정신없이 달린다. 비가 오든 안 오든,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 저쪽에서 사자가 뛰어오는가 하면, 저쪽에서는 코뿔소가 달려 나온다. 사슴 같은 차가 요리조리 차들 사이를 누비는가 하면, 코끼리 같은 트럭은 땀을 뻘뻘 흘리며 도로를 지나다닌다. 보도블록 위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보인다. 간혹 전신주와 간판에서 떨어진 빗물은 우산을 세게 때린다. 여름을 지나며, 사람의 생김새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피부색이라든가. 여름에 고생을 했다면, 몸의 체형이라든가. 아, 또 여름이 되면 변하는 것이 있다. 바로 풀들의 길이이다. 내가 자주 가는 산책길이 있다. 공장 사이에 난, 작은 공원인데, 몇 달, 아니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물가의 풀들이 무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제, 내가 다시 그 공원을 찾았을 때, 풀들은 무럭무럭 자라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다. 사방에서 풀냄새, 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음 또, 여름엔, 나무들의 키도 한층 더 자란다. 안개가 덮고 있는 산은 비록 머리가 보이지 않지만, 날이 맑을 때는 알 수 있다. 겨울이나 봄과 비교했을 때 키가 한 층 더 자랐다는 것을. 자연물만 변하는가? 아니, 세상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는, 코로나가 감기처럼 유행하고 있다. 때마침 독감도 번지고 있어 분간하기가 어렵다. 주식도 – 하지는 않지만 – 날마다 변동한다, 도시 곳곳의 공사 중인 건물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높아진다. 이제 이 여름이 끝이 오면, 가을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 뒤에선, 긴 겨울이 세상에 하얀 소동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어떤 분의 마음이다. 그분이 나만 사랑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분은 모두를 위해 자기 독생자를 죽게 하셨다. 그분은 내가 죄인이었을 때나, 은혜 아래 있을 때나 동일하게 날 사랑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방황하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행동은 잔뜩 하고 다닐 당시에도 그분은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분을 믿게 된 후, 원치 않는 질병에 걸려 죄에 깊게 물들었을 때도. 나는 그분에게 버림을 받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분은 날 버리지 않으셨다.
꿈도, 소망도, 건강도, 삶의 의욕도, 친구도 잃은 채, 나는 무기력한 3년을 보냈다. 삶의 방향이 없었기에, 나는 자연히 쾌락이라는 강물 속으로 도피했다. 쾌락을 열심히 퍼마셨다. 하지만 남는 건 없었다. 날마다 설사를 하고 구토를 할 뿐이었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쾌락 주워 먹기를 멈추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분은 나를 선하신 길로 인도하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저 돈을 벌려고 갔던 기독교 대학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 그 가운데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주셨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기도했다. 순전히, 내 목적만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더 큰 무언가를 계획해 놓으시고 계셨다. 지면이 길지 않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나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시길! 나는 어느새,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혼뿐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세상에, 3년 동안 하지 않았던 기도를 그런 식으로 하게 하실 줄이야! 그분은 나를 그렇게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신 것이었다. 그 관계 속에서, 나는 그분이 날 버리지 않으셨음을 알았다. 상처와 죄로 얼룩져 있는 내 영혼이었음에도. 여전히 내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분은 우리 관계를 축복하셨고, 우리가 서로 기도하게 하셨다. 또한 우리를 통한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다! 나는 이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도 좋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은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나같이 변변찮은 사람에게도 그리 하신 분께서, 당신에게도 그리 하지 않으실 리가 없다.
세상은 바뀐다. 바뀌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던가? 허무함, 그리고 끝없는 공허함이었다. 술을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다른 쾌락에 취해도 그 공허함은 끊어지지 않았다.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탄 버스를 다른 죄의 터미널로 안내할 뿐이었다. 내 삶은 안개에 갇힌 듯이 답답하고 어두웠다. 소망 따위라곤 없었다.
그런데 보라. 지금 그랬던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졌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있다.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일까? 그분은 친구가 없던 내게 친구를 주셨다. 약화되어 있던 나의 건강을 서서히 회복시켜 주셨다. 꿈이 없어 좌절하던 내게, 주님 당신의 꿈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그 외 나의 크고 작은 기도제목을 들어주셨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서서히, 서서히 이루어졌다. 안개 골짜기에서 안개를 찢고 미명이 비춰들 듯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비’ 이지 제사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예배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다. 우린 날마다 그분의 은혜를 얻기 위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만 한다.
죽어 있던 나를 위해서 일을 행하신 그분이, 앞으로도 일을 하지 않으실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없다. 그분은 예전부터 일하셨고, 신실하심으로 날 바라보셨다. 또한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쉬지도 졸지도 아니하시느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이다. 요점은 이렇다. 온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마음만큼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수천 년 전, 아브라함을 보실 때나, 현대를 살아가는 나를 보실 때나, 그분의 마음은 동일하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