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6일
가장 아름다운 문학을 동경하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수직 문명의 반대편, 개활지에 서서 저 멀리 펼쳐진 침엽수림과 야트막한 산맥과 바다를 날마다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에도, 달빛과 별빛이 맹인들을 인도해 주는 광활한 개활지에 소년은 혼자 서 있었다. 그곳에서 한 노시인을 만났는데, 그의 이름은 괴테였다. 온갖 휘황찬란한 이름표와 훈장을 달고, 전 세대에 거쳐 영향을 주는 거인과 소년은 만났다. 그때부터, 소년은 그의 책에 빠져 살았다. 그 어른을 두려워하면서 흠모했다. 이미 오래전에 영면에 든 그 어른에게 헌사와 소네트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다른 독일인 작가들과도 친분이 생기긴 했으나, 그 노인이 선사한 인상보다 깊은 인상을 소년에게 주는 인물은 없었다. 소년은 이후 잠시 펜을 잡지 않았지만, 이내 다시 펜을 쥐었다. 그러나 처음 노인을 만나던 시절만큼 가슴이 뛰었던 시절은 없었다. 소년은 늘 비 생경함 속에 둥지를 튼 복잡함과 신경과민 속에서 살았다. 그의 일기를 통해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 10년의 세월을 간추린 소년의 일기가 있다.
스물한 살 때, 문학책과 볼펜을 내려두고, 나는 붓과 팔레트를 잡았다. 이전까지의 모든 문학적 노력은 나의 기억과 혈액 속 어딘가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문학과 이별하는 듯했다. 나는 몹시 아팠다. 고통 중에 다행히 입은 뚫려 있어서 뚫린 입으로 내 온몸의 고통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한 발악이 나의 조잡한 몇 편의 시였다. 몇 편의 산문이었다. 그 창작물들로 나는 지금도 그렇듯 앞으로도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창작물들 속에는 진실한 감정들이 새겨져 있었고, 진실한 감정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 세상 속에서도 꽃과 나비는 생동했으므로, 그들의 뒤를 잘 따른다면, 나는 엄청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왜 내 이야기를 여기서도 쓰고 있을까. 나를 벗어날 수는 없을까.) 내 자존감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나는 어릴 때보다도 더 소극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앞서간 수많은 시인들과 동시대의 수많은 시인들과 나를 동일한 비교선상에 올려두고 저울질했다. 최고라고 인정받고 싶었고, 그것이 나를 박살 낸 시대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집착적으로, 원하는 명예를 취하려 몰두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못한 상대를 만나면, 나는 자만심을 느꼈고, 나보다 나은 상대를 만나면 그를 어떻게든 깎아내려 내가 높아지려 했다. 그것은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자만심과 열등감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였다. 그리고 그 원의 한가운데에는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명예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그것은 자기 숭배의 거대한 씨앗이자, 우상이었다. 우상을 끌어안고 있는 소년의 몸에는 숱한 상처들이 그 눈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괴테 노인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내 굴레의 욕망 중심에는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내게 그만큼 깊은 인상과 부러움을 품게 하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처럼 높아지길 바라서였을까.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다가도 어느 책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보게 되면 마음이 이상해져 옴을 느꼈다. 소년 시절 느꼈던 순수한 동경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웠고, 그 불편함의 근원은 시기심이었고, 낮은 자존감이었으며, 우상을 끌어안는 마음이었다. 실력이 그와 비교적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는 안도 아닌 안도를 느꼈다. 멀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나이대의 친구들이 영예를 얻으면 몹시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이가 차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기에. 그들 모두 괴테와 손을 잡고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나 혼자만 그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괴테였을까. 아이돌이나 배우, 가수,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내 무의식의 깊은 곳이 현대의 가벼운 정신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현대에 벌어지는 일들에 비해 고전적인 과거의 일들이 낫다고, 고전적인 과거의 인물들이 낫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과거의 인물들이 더 나았다면, 그 인물들이 낳은 현대는 왜 이상적이지 못한 걸까. 그래. 내가 호의를 품고 있는 대상은 과거 전체가 아니라, 시대를 역행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던 몇몇 거인들이었지. 그들 중 몇몇은 살아생전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일부의 목소리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었다. 좌우간, 나는 괴테를 불편해했다. 그와 나의 모든 면을 끝없이 비교하며, 눈을 어느 곳에도 온전히 둘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비교하는 것은 가장 해선 안 되는 짓이라고. 인간은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너는 네 목적을 바라보고 살면 되는 것이라고. 그의 말, 그리고 매일 드리는 기도. 두 가지는 내가 뿌리 깊은 비교 의식을 벗어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제 머릿속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와도 별로 타격을 받지 않는다. 나에겐 나의 고유한 목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괴테의 시도, 소설도, 각종 문학적인 글도,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읽는다. 내 목적의 길 위를 달려가기 위해서. 내 고약한 취미생활을 위해서.
소년의 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소년의 옆 자리엔, 다 자란 청년인 내가 앉아 있다. 그는 빛이 떨어지는 창가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한다.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마다 동기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나는 대체로, 여전히 내가 멋져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어쩌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책을 쓰려고 한다. 다가올 10년을 넘겨짚으며, 어떤 특수한 주제를 가지고서, 책을 지을 작정이다. 연구할 책들을 몇 권 갖춰 놓았다. 읽고 정리하는 데에 재미가 있다. 어떤 주제인지 책을 다 완성 짓기 전까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을 작정이다. 이 말, 저 말들이 보태지면 내 정신은 혼란을 경험할 것이기에. 그리고 이런저런 반대의 목소리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잔잔한 은혜와 거대한 날개의 날갯짓이 나를 이끌어 줄 것이다. 내가 무사히, 그 책을 다 쓰도록.
목적이 있는 책을 쓴다고 생각하니, 시인으로 등단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청신호일까. 아니면, 시가 아닌 산문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깊숙한 곳에 있는 생각 때문일까.
책을 쓰려고 하는 와중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여전히, 내 속에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문장들을 쓰려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 어쩌면 그 생각들로 인해 떠오른 착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 그건 또 하나의 우상을 빚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로 인해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걱정. 아,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내가 만약 죄를 저지르려거든, 천사가 와서 내 손가락을 부러뜨려주길. 나는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사람이다.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속엔,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욕구도 분명히 존재한다. 아름다움과 담을 쌓고 지낼 때도 있었다. 내 시가, 내 마음의 깊은 어둠 이곳저곳을 요리할 때, 시궁창과 붉은 하늘, 여기저기 떨어진 신체 일부분과 도마를 치는 중식도 소리 같은 것들이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놓고 있었을 때. 그러나 길을 거닐면서, 피어난 봄꽃을 볼 때, 우연히 가게 된 바닷가에서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모래 사이의 잘게 쪼개진 조개껍데기들을 볼 때, 연푸른 빛 파도의 울먹이는 듯한 소리를 들을 때. 또 굽이굽이 휘어진 해안선을 따라, 맨발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때, 아름다운 것을 묘사하려는 내 감정은 소용돌이치고,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또다시 글을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