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내가 알프레드란 인물에 흥미를 가진 것은, 넷플릭스 시리즈 <바이킹스>, <라스트 킹덤>을 시청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원탁의 열두 기사에게 둘러싸인 전설적인 임금 아서의 이야기로 인해, 어릴 적부터 잉글랜드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아서가 브리튼 섬의 캘트족 임금이라면, 아서 당시 브리튼 섬을 침략하던 앵글로-색슨의 후대 임금이 알프레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알프레드가 정확히 어떤 치적을 쌓아갔는지 몰랐다. 바이킹의 잉글랜드 침략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안목이 없었기에, 그저 영국의 세종대왕 즈음 되는 위인으로 그를 여겼을 뿐이다. 앵글로-색슨 족이 브리튼 섬을 지배할 당시 그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기독교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신앙은 북해 건너의 이교도(바이킹, 노르드인, 노스인)들이 가졌던 신앙과 정확히 대척 지점에 있었다. 오딘, 토르, 프레이를 섬기는 북방의 거칠고 사나운 이교도들이, 유약한 수도승들이 경전을 필사하고 있던 린딘스판 섬의 수도원을 얼마나 손쉽게 약탈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793년). 잉글랜드는 내부적으로도, 여러 군소왕국으로 나뉘어 싸우는 등 혼란기를 겪고 있었고, 간교한 바이킹 지도자들은 적들의 정치적 혼란을 적재에 이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탈취해 냈다. 그것이 재원이든, 왕국이든. 여러 왕국이 멸망했고, 잉글랜드에 남은 왕국은 남서부 해안의 워섹스뿐. 알프레드는 웨섹스라는 황무지에 서 있는 외로운 등불이었다. 그가 어려서 교황의 대자가 된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을까. 별들이 그 사람 위에 떠 있는 것만 같은 특수한 일이었을까.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앞선 표식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프레드의 운명과 길 앞에 펼쳐진다. 애설울프 왕 사후, 왕이 된 형 에설레드와 함께 전투에 나서며 바이킹으로부터 잉글랜드를 지켜낸 군주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물론 그때는 아직 왕이 아니었지만. 에설레드 왕 사후, 그는 웨섹스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서 왕이 된다. 강적이라 불리는 바이킹 구스럼의 치밀한 공격 속에서, 또 구스럼의 사주 앞에 내분으로 화답한 웨섹스의 지도자들 손에 의해서 그는 잠시 왕위에서 쫓겨난다. 그는 일군의 무리와 황무지를 떠돌게 된다. 그곳에서의 시련 뒤, 절치부심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다른 나라로 도망가지 않고, 계속 백성들 앞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드러냄으로써.) 대반격에 나선다. 나는 여기에서 그간의 웨섹스 지도층들과 사제들과 민중들의 모든 기도의 응답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프레드와 민중들은 구스럼의 군대를 격파하고, 구스럼을 동 앵글리아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알프레드는 그를 봉신으로 삼아 견제한다. 이후 그는, 바이킹의 지속적인 침략을 적절히 방어하기 위해 군제를 개편하고 '부르흐'제도를 실시한다. 국토 전체를 공격과 수비가 가능한 유기적인 방어체계 속에 편입시킨 것이다. 이 부르흐의 위력에 바이킹들은 꼼짝하지도 못한다. 알프레드는 부르흐를 상업시설화 함으로써 강력한 잉글랜드의 초석을 놓는다. 그 외에도 해군을 창설하고, 샤를마뉴의 르네상스를 잉글랜드에도 재현하려 한다. 그의 목적은 문맹인 백성들이 모국어인 영어로 된 글을 읽고, 그의 통치가 문맹을 뛰어넘어 백성의 가슴에까지 뻗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현인, 학자들을 국내외에서 등용하고 그들과 함께 고전들을 번역하며 웨섹스 전역에 학문의 탑을 쌓는다. 그의 지혜의 바탕은 신앙과 독서였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바이킹 세계와 맞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국가개발과 경영을 이뤄낸 국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책 읽기를 중시하고 학문을 중흥하게 해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영감과 용기를 얻는다. 내가 교육개혁에서 필수적으로 여기는 것도 바로 독서와 인문교육이다. 알프레드는 기독교적 문명국을 건설하려 했고, 그 점은 그가 번역한 책들에서도 드러난다. 병약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누구보다 우뚝 서게 되었다. (나도 그리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세계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에게 영감과 용기를 얻으며 또 그의 서사의 감동을 기록하며 글을 맺는다. 그는 백성(일반민중, 이웃)을 생각하는 임금이었고, 그의 개혁에서도 그의 마음은 늘 백성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