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에 대한 생각

by 커피탄 리

처음 친구로부터 ‘실존’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처음엔 익숙한 주제에 반가웠다. 그다음엔 ‘생각을 어떻게 글로 옮기지’에 대한 막연함에 막막했던 것 같다. 실존은 무엇일까?라는 거창한 주제로 시작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실존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나는 내 손을 본다. 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지긋이 내려다본다. 그 행위는 내게 어떤 느낌을 준다. 내 핏줄이, 피부 결들이, 손톱과 손마디가, 손등의 무늬 하나하나가 다 낯설게 보이는 것. 엄지 주름을 폈다 구부리며 생각에 빠진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나란 존재가 만들어졌을까? 주먹을 쥐었다 펴본다. 창문으로 새어드는 미미한 빛에 내 손을 가져다 대어 본다. 그때 만들어지는 음영이 있다. 흰 책상 위로 음영은 자유롭게 모습을 바꾼다. 아,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어본다. 내 숨결이 내 살갗에 닿는다. 거울 앞으로 간다.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눈을 깜빡인다. 동공의 색과 밝기를 확인해 본다. 동공 위로 맺히는 빛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눈이 깜빡이고 떠질 때, 나는 어렴풋이 느낀다. 내 몸은 육체로만 이루어져있지 않음을. 육체 내부에는 한 아이가 살고 있고 사람들은 그 아이를 내 영혼이라 부른다는 것을.
내 정신, Spirit, 즉 영혼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경우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로부터 모진 말을 들었을 때, 좌절감이나 우울감에 짓눌려 괴로워할 때, 사고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등. 그때는 내 표정도 덩달아 변화하게 된다. 반면, 내 영혼이 기쁨을 얻을 때를 생각해 본다. 목이 몹시 말라 지쳐있을 때, 누군가가 건네준 시원한 샘물을 마셨을 때, 몹시 어렵던 상황에서 예상외의 해결책이 머리 위로 떨어졌을 때, 약간 서늘한 바람을 쐴 때, 등등 나는 어렵지 않게 내 표정이 밝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육체의 의지로,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내 얼굴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나는 온전히 밝아지거나 어두워질 수 없다. 그보다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에 변화가 생겼을 때, 내 근원적인 표정은 바뀐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영혼의 실존을 확인한다. 반면 영혼이 없는 것들은 어떨까? 나무, 풀, 구름, 바람, 돌, 물. 이 모든 것들은 저마다 공명하며 제 소리를 낸다. 조심스레, 때로는 과감하게. 나는 가끔은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표피를 만져본다. 그들의 실존을 확인해 본다. 수만 가지 결로 나있는 미세한 나무 굴곡, 수만 가지 이파리의 수만 가지 생김새. 이 모든 것들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인간이 만든 것과 인간 외의 존재가 만든 것이 구분된다. 인간이 만든 것은 직선으로, 인간 외의 존재가 만든 것은 곡선으로. 맑고 투명한 소리로. 보다 더 자연스러움으로.
이 모든 존재들을 통합해 봤을 때, 나는 우주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주는 비록 영혼이 없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영혼이 있는 인간과 더불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이 신비한 사실 앞에서 인간은 그 어떠한 말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다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느끼고, 즐기고, 감사해야 할 것을. 어떻게 이것들을 가꾸고 돌볼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실존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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