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는다. 여름을 만난다. 가을을 맡는다. 겨울을 맛본다.
다시 수십 번 봄을 맞고 여름을 만나고 가을을 맡고 겨울을 맛보는 사이, 내 나이는 스물하고도 여섯 살이 되었다.
구름에서 순식간에 떨어지는 소낙비처럼, 나도 지닌 것 없이 땅 위에 떨어졌다.
스물여섯 해가 흐르는 되는 동안, 내가 이룬 것은 없다. 현물적인 눈으로 볼 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겪은 경험이, 내가 읽은 책과 들은 음악이, 내가 쓴 글이, 내가 그린 그림이 내게 양분을 주었음을.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고 가을에 무궁화가 피어나기까지, 오랜 바람을 맞아야 하듯이 나 또한 그랬다는 것을.
그전까지는 내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장의 요구에 쫓겨 하루하루를 보냈다. 흘려보내지만 않은 세월, 그 속에선 많은 씨앗들이 양분을 먹고 꽃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주 뻔하게 몇 살 땐 이걸 하고, 또 몇 살 땐 저걸 하고 하는 식으로 써 내리진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늙어갈 지를. 그건 계획표이지 문학이 아니다.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몇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내 내면 속에는 에너지가 있다. 차분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막아 놓았던 둑의 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강을 채우는 것처럼, 에너지는 어디론가 뻗어나간다. 그 에너지에 기대 나도 내 예술세계를 유복하게 채워갈 것이다. 그때는, 꽃을 그리거나 꽃을 쓰는 일은 하지 않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구름을 그리거나 구름을 쓸 것이다. 구름은 자유로운 것. 매순간 모습이 달라지는 것. 빛의 색과 세기에 따라 장엄함 그리고 소박함을 동시에 연출하는 것이다. 강에 비가 내리면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강물에 실린 갈대나 꽃잎이 어디로 실려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의 예술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70대가 되어도, 80대가 되어도 흐르는 강물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 원숙한 필치로 내 작품을 다듬고 있겠지. 숲에서나 골방에서나, 탁 트인 언덕에서나. 혹은 버스나 지하철 안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의 해외 살이, 수십 번의 여행으로 나의 예술 세계는 지금과는 차원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훨씬 다채롭고 성숙해져 있겠지. 그런 나의 모습을 미리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나는 어떤 역할을 해도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확신한다. 내 두 손이 잘리고, 내 두발이 꺾이지 않는 한, 예술을 향한 나의 탐구는 계속될 것이다.
난 바람결 따라, 세월이 흐르는 데에 따라 늙어가지 않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시드는 꽃처럼. 그렇게 늙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원예사가 될 것이다. 스스로 꽃에 물을 주고 가지를 정돈해가는 그리고 햇빛과 바람과 물의 도움도 피하지 않는.
나의 햇살, 나의 빗물, 나의 바람은 다른 게 아니다. 미래를 보는 나의 믿음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책에 실린 영의 문구이다. 세월이 가도, 책이 불 타 없어져도, 땅이 꺼져버려도 사라지지 않는 말씀이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확실한 분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한다.
아마, 나는 세월이 갈수록 더 섬세해지리라. 화가가 묘사하는 소묘가 점점 섬세해지듯이. 내 안에 흐르는 거룩한 바람은 내 속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이리라. 나는 혼자가 아니다. 수많은 새싹들에게 햇빛이 필요하듯, 그들에게 그늘이 필요하듯, 나 또한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자라는 이유와 내가 성장하는 이유 또 내가 늙어가는 이유는 그것이다. 내가 보고 자란 풀과 나무들이 어떻게 늙어 가는지 지켜보는 것. 그들이 어떤 향기를 풍기고 어떤 썩은 내를 풍기는지 지켜보는 것. 그러곤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지. 세상에 향기를 풍기는 나무가 되고 싶다. 애틋한 시선으로, 언덕 아래에 떠돌고 있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늙은 나무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부를 것이다. 이리로 오라고 나뭇잎을 흔들어 속삭일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서, 내 나무의 잎이 다 떨어지고 내 몸뚱이가 다 마르고 잎이 한 개 혹은 두 개뿐이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없이, 들판 위의 마을을 비추고 있는 노을을 보고 있지 않을까? 세상은 참 아름다웠노라고 감탄하지 않을까? 옆에는 반려가 내 손을 잡고 앉아 있지 않을까? 손주들이 먼 언덕 위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지나간 삶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와서가 아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에 짓눌리지 않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내일을 꿈꾸고 기대하는 삶, 그렇기에 오늘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지금까지 그래왔듯- 살아간다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