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내 눈에 모래 알갱이가 스며들었고, 모래폭풍에 양 떼는 메에- 하며 흩어졌다. 남아 있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나는 간신히 지팡이를 잡고 몸을 지탱했다. 흩어진 양들을 쫓으려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소리를 따라갔다 열 발자국쯤 갔을까. 갑자기 모래폭풍이 사그라들었다. 산골짜기의 어느 정도 트인 부분이 나타났다. 그곳엔, 떨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놀랍게도, 그 나무엔 푸르스름한 불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타는 연기도, 타는 냄새도 없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양 떼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리로 다가갔다. 조심히, 조심히 그리로 다가갔다. 그때 어딘가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모세야! 모세야!” 음성은 놀랄 만치 내게 두려움을 주었다. 심장이 바위로 눌리는 듯했다. 나는 떨며,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타지 않는 신기한 떨기나무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도 놀란 바람에 심장 뛰는 소리가 다 느껴졌다. 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너는 네 신을 벗어라."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입안이 바싹 마르는 듯했다. 강한 바람에 내 흰 수염이 떨려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에, 그 소리는,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 말에 혼비백산을 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빛과 같은 압도적인 존재를 대면하기가 몹시 두려웠다. ‘그’가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억압과 고난을 보았다. 이제 너를 보내 내 백성을 네 조상이 살던 땅으로 직접 인도할 것이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나는 떨면서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는 이 산에서 나를 예배하게 될 것이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어떤 분이 나를 보내셨다고 해야 합니까?” “‘나는 너희와 함께할 자’이다.” 그는 계속해서 그분이 이루실 약속에 관해, 이스라엘이 가게 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관해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두려워하는 내게 기억을 보여주셨다. 내 지팡이를 뱀으로, 내 손을 문둥병자의 손으로 바꾸시더니,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주셨다! 나는 그제야 그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방망이질을 했다.
하산하는 길에, 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떠올린 것인지, 저절로 떠오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집트에서 왕자로 지내던 일, 히브리 유모에게 내가 히브리 인이라는 말을 들은 일,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오기까지 그들의 역사를 배운 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그의 열두 아들, 이집트의 제 2인자가 된 요셉. 내가 젊은 혈기로 동족을 도우려 이집트인을 죽인 일, 그들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파라오를 피해 광야 미디안으로 도망간 일, 거기서 물동이를 지고 있는 십보라와 자매들을 만난 일, 그들의 예식대로 십보라와 혼례를 치르고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나은 일, 수십 년간 이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한 일, 마지막으로 오늘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주님을 본 일…. 모든 기억들이 마치 여인들이 짜는 아름다운 무늬의 베처럼, 관련이 있는 여러 가지 그림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일들이, 오늘의 일이 있으려고 생긴 일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속 멍한 정신으로 돌이 굴러 떨어지는 산을 내려갔다. 미끌리기도,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양 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이 다 빠진 몸을 끌고 바위산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