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여행

by 커피탄 리



이렇게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조금 낭만에 젖는다. 밤새 무심하게 쏟아지던 비는, 아침에는 그 힘을 다해 기세가 사그라든다. 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밭의 채소를 자라게 해 주고, 마른 강을 풍부하게 채워준다. 갈라진 땅의 상처를 다시 아물게 해 주고, 일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휴식할 수 있는 때를 마련해 준다. 휴식, 정말 휴식일까? 대부분의 사람들 – 비 오는 날 몸과 마음이 쳐지는 사람들에겐- 은 고문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비를 즐기는 나 또한 가끔은 울적해지곤 하니 말이다.


혼자인 세월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열일곱 살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전 스무한 살 때까지, 또 병에 시달리기 시작한 스무세 살 때부터 스물다섯 까지. 그 시기 중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을까? 그동안 수없이 많은 비가 내렸다. 하늘에도 내 마음에도. 아직 내 마음에 소나기가 내리기 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아홉, 이제 막 고전문학을 접했을 때였다. 사랑을 잃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나는, 한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굳게 아주 굳게. 책상 위에는 늘 한 권의 책과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과 하루를 기록하는 내 일기장. 고3 수험생한테 무슨 책이냐고, 무슨 일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이때 읽었던 책 한 권이, 지금은 누더기가 된 일기장이 내 인생 전체를 바꿨노라고.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문학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약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적고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2016년 6월, 입시미술학원 입학(?)을 앞두고 나는 휴가를 선언했다. 정말 생뚱맞은 휴가였다. 수시가 체 5개월도 남지 않았던 때였으니 말이다. 한창 <월든>을 재미나게 읽고 있었고, <월든>에서 묘사하는 삼나무에 꽂혀 있을 때였다. 그 삼나무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시 나에게 삼나무는 세계수, 혹은 신목처럼 신성한 나무였다. 내 외로움과 고독,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나무. 말없이 오래도록 한 자리에 서서 커다란 키로 날 내려다보고 보호하는 검은 나무.


내 여행은 삼나무를 찾기 위해 시작되었다. 전국에 삼나무가 있는 곳을 검색해 보았다. 전남 보성에 삼나무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장 보성행 버스표를 끊었다. 오늘처럼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었다. 차창에는 빗물이 맺혀 있었다. 차창 밖으로 산이며, 들이며, 나무들은 눅눅한 빛을 띠고 있었다. 차는 순천을 거쳐 보성으로 향했다. 보성에 다가갈수록 물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차는 보성 녹차 밭 앞에 날 떨어트렸다. 순식간에 축축한 안개가 내 시야를 감쌌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삼나무 숲길엔 안개가 자욱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슈베르트의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다. 숲의 초입에 들어가자 원숭이(?)를 비롯한 이상한 짐승, 새들의 소리가 날 반겼다. 숲 초입의 칼국수 집에서 녹차 칼국수를 먹고 숲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묘사한 것과 유사하게 여름의 녹차 밭은 안개의 성역이었다. 그리스의 원형 극장처럼 펼쳐진 – 원통형에 위로 갈 수 록 너비가 넓어지는 - 녹차 밭은 온통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나무 냄새가 났고, 바람은 서늘했다. 배를 문지르며 숲 속으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많은 삼나무가 있었다. 소로가 말한 것처럼 삼나무는 과연 신성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차마 그 앞에 절을 할 수는 없어서. - 나는 그 당시 형식상(이었긴 하지만)의 크리스천이었다. - 사진을 찍고 노트에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숲은 손대지 않은 자연을 박물관처럼 보관하고 있었다. 키가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검은 삼나무들의 열. 좌우사방을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갯속에서, 열아홉 소년은 경탄을 마지않았다. 당시 나에겐 반사회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월든>과 보성의 숲을 보곤 아나키스트적인, 혹은 자연주의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었다. 손대지 않은 자연과, 손을 댄 문명. 둘 중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따져보았을 때 내겐, 곡선이 많은 자연이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의 방해받지 않는 은둔생활을 꿈꿨다. 한창 생각에 빠져서 그 넓은 숲을 걷고 또 걸었다. 숲은 끝이 나지 않을 듯 보였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결국 끝나고 말았다. 나뭇잎 사이론 빗방울이 톡- 토독 하고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버스에 올라 있었고, 버스는 안개 낀 장엄한 산을 바라보며 열심히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내린 곳은 이름 모를 바다. 해수욕장 주변에는 해송이 진을 치고 있고, 좁은 모래사장 끝에 항만 정박시설이 있는. 그 끝에 방파제와 등대가 놓인 길이 있는. 등대 주변으로 몇몇 주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아주 작은.


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땅이 마른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모래사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날 차버린 여자 애의 얼굴처럼 둥근 해를 바라보며, 한참 인상을 찌푸렸다. 빛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그 흔한 물새 한 마리 없었다. 먼바다에는 안개가 깔려 있고 가까운 등대 끝에는 낚시꾼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에 무심해진 채, 그리고 모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물을 관찰했다. 손을 툭 하고 뻗어보니 조개껍질 같은 것이 닿았다. 그 껍질은 쪼개져 있었다. 그렇게 감탄 외에는 별 다른 생각 없이 한 시간가량을 누워 있었다. 모래는 따뜻했다. 자연과 한 몸이 된 기분이었다.


한 시간 후, 나는 몸을 부스스 일으켜 해안선을 바라보았다. 멀리 안개가 섬을 가렸다. 보랏빛 하늘은 빛과 습기를 머금었다. 나는 해안 쪽으로 달려갔다. 진창을 밟으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덕택에 바다를 벗어나 다시 버스에 오를 적엔 내 샌들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루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 여행은 내가 차후 화가로서 관찰력을 기르는 데에 도화선이었다. 그전까지는, 아니 자퇴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연과 세계에 무관심하고 그저 게임이나 즐기던 평범한 학생이었기에. 마음의 감동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오늘은, 내 첫 여행으로부터 7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마찬가지로 안개가 산과 건물 사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아주 오래도록. 영영 떠나지 않을 것처럼. 나는 서울로 간다. 이른 아침부터 날씨를 확신하고 짐을 꾸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어느덧 기차에 오르게 되었다. 비와 안개를 거느리고 떠나는 이번 여행은 어떻게 될까? 한 친구를 만나러 떠나는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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