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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Dec 07. 2023

신앙시 시리즈

4 혀 없는 자의 기도

하늘로

하늘로

끝도 모르고 뻗어나가는

삼나무 우듬지처럼

곧고 외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내 몸은 죄로 뒤덮였고

밤마다

죄가 때가 되어 곤두섭니다

팔랑크스의 긴 창들처럼

일어납니다


가로등 불빛에 가려 달빛은

저를 씻어 줄 수 없습니다

끝이 뾰족한

삼나무 숲에 가려진 저 달은


얼굴에,

목과 다리와 팔에

죄를 묻히고

욕실로 들어갈 때의 심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집니다

하늘에서 새들의 시체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먼저 손을 씻습니다

거품으로 남김없이

전날의

병든 흔적을

지워버립니다


떡진 머리와

마른 등거죽과

아토피가 일어난 다리에도

거품을 묻힙니다


뜨거운 물로 몇 번이고 씻어내지만

나의 죄성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달빛 아래서도

샤워기 아래서도

도저히 때를 벗겨낼 수 없습니다


총이 있다면 진즉

머리 없는 베르테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를 위해 피를 흘려주셨으니

저를 위해 한 번 더 뜨거운 피를

흘려주십시오

로마 병정이 찌른 장창에

당신의 옆구리에서부터

꽃내 나는 피가

흘러내립니다

나무 십자가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보혈을

제가 핥아먹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천 개의 별들로

제 마음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주님

저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주십시오


나의 주님

나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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