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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Dec 08. 2023

이름 모를 당신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전국 이곳저곳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차가 목적지가 아닌 간이 휴게소에

잠시 잠깐 스치듯, 그렇게요.

어릴 땐 원망이 많았죠.

주유소 앞에서 만난 친구들, 몇 년 두터운 정이 쌓일라치면 늘

그들을 떠나보내야만 했으니까요.

마치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볼 때, 수십, 수백 가지 풍경들이 순식간에

스치듯, 그렇게요.

저는 외로운 아이였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듯이, 그렇게요.


그러다가 제가 정착한 곳은 공장가 옆으로 강줄기가 흐르는

어느 시골이었지요.

텅 빈 도로 위로 낙엽과 바람만 굴러다니고

너른 논을 감싸는 가드레일 위로 황화가 피어있었지요.

처음 본 그곳의 하늘은 보랏빛에 가까웠습니다.


소년 우울증에 걸린 저는 한 달 만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지요.

공부를 하러 가기 보단 책을 읽으로 다녔던 도서관 가는 길.

30분이 넘는 그 공장길.

젓갈냄새가 풍겨오고

천장 크레인들이 산머리와 키 재기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전신주들 선을 치렁치렁 이어져 있었지요.

두루미와 학이 흐르는 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고

청둥오리는 몸을 거꾸로 박고 물을 마시던 그곳.

머리 긴 버드나무들은 제 머리를 강물에 행구고 있었지요.


저는 혼자만의 문학 세계에 빠져들었고

소설 속에서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베르테르, 골드문트, 할리 할러, 빌헬름과 미뇽...

시골 아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강가 나무 아래에 공을 찼지만

전 해가 질 때까지 강가 나무 아래에 앉아 소설책을

그렇게, 넘겼어요.


해가 지면 작은 교량 위에 서서

우울한 독일 가곡들을 불렀어요.

밤에 노래하는 밤 꾀꼬리처럼.

해가 강물에 치르르 식어가는 모습에서

저는 슬픔을 느꼈죠.


별들이 쌀알처럼 하늘에 펼쳐진 밤.

수풀가에선 곤충들이 나직하게 울었고

되려 외국인 노동자들의 말소리가 더 컸죠.

불 켜진 공장 기숙사에서 들려오는

주홍빛 가로등은 몇 개 없었고

저는 그 길을 지나며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결국 수능을 포기하고

2년 동안 입시 미술에 온통

매진하는 동안에도 시를, 일기를, 소설을

매일 밤마다 읽고 썼지요.


새벽 동이 터오기까지 그렇게 그랬어요.

어스름이 창틀 사이로 굴러들어오면

그제서야 나가 새벽공기를 마시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제 스무살 시절의 이야기랍니다.


얼마만큼 외로운 시간을 더 보내야 할지 몰랐어요.

눈이 펑펑

내리던 스무한 살 되던 해 겨울날

교회의 한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요.


그분은 캄캄한 고속도로를 가다가 나타나는

터널 불빛처럼 제 눈과 마음을 밝혀주셨어요.

사랑한다고. 내가 너를 지었고 너의 모든 생각, 또 마음을 안다고

제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고

저는 21년 만에 창조주의 품에 안길 수 있었어요.

그해 봄 전 미술대학에 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글쓰기를,

그만두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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