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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ji Jan 11. 2023

Web 3.0 디자이너의 겨울

추위를 이기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립니다

안녕하세요,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어느 새 4년차가 되어, 지금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 web3.0 프로덕트 디자이너 Lianji입니다.



NFT 덕에 web3.0, 블록체인 같은 거대 주제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참 어렵습니다. 입사하고 1-2년은 정말 원숭이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블록체인을 아예 모르는 상태로 입사했으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부 하면서 따라가기 바빴거든요. 

지금도 사실 희망적이진 않습니다. 원숭이에서 보노보 수준 정도는 올라온 것 같달까요... 요즘처럼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라면 더더욱 의욕이 안납니다. 어찌나 분위기가 널을 뛰는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제까지 흥하던 프로젝트가 오늘 망하거나, 좀 적응되겠다 싶으면 또 새로운 업데이트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곳입니다. 


하지만 전 이 곳에 저를 더 걸어보기로 맘 먹었어요. 제가 가진 한 줄기 희망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전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기본 속성값이 크리에이터입니다. 이 곳은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이야기가 NFT라는 패키징을 통해서 매매 가능한 재화가 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와 그를 즐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충분히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크리에이터들이 대기업과 MCN에게 수수료를 퍼주고, 광고주가 좋아하는 콘텐츠도 만들어주고, 개인 정보도 주고, 최근 카카오처럼 서버에 일이 생기면 매출에 지장이 생겨도, 다른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기업이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블록체인 베이스 플랫폼이 대체제가 되기엔 아직 멀었죠. 엄청 느리고, 쓰기 불편하고, 가이드라인을 읽어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거든요. 이쯤 되면 자본주의가 잘못인 건 아닐까 하는 먼 생각까지 가곤 합니다. 여기서 일개 디자이너인 전 뭘 할 수 있을까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겠죠? 일단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짚이는 대로 다 했습니다. 한창 BAYC가 뜨던 작년은 NFT로 뭘 해도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장 내에서도 잘 나가는 커뮤니티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시도들이 많았습니다. 

1. 그럴듯한 웹사이트와 로드맵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홍보해 NFT를 판다.
2. 홀더들을 중심으로 Discord에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3. 모인 자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보유한 NFT의 가치를 올린다.

대략 이런 흐름이 커뮤니티의 어떤 왕도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갑자기 뜬 만큼 부작용도 많았어요. 프로젝트의 발전보다 NFT의 떡상 만을 바라는 단타족, 모인 자금을 들고 잠수하는 러그풀 사건 등... 국내 투자 열풍이 거세지면서 이 시장을 단순히 투기장으로 바라보는 지금 분위기가 아쉬울 뿐입니다. NFT는 한 탕 벌고 빠지자고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요즘 저희 팀에서는 NFT를 꼭 '구매'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도 가지고 있는 NFT가 많이 없습니다. 아직은 불안정해보이는 시장에 비싼 투자를 하기가 망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 마인드가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투자'를 하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 자체가요. 출발선이 투자가 되면 당연히 투자 대비 수익을 더 많이 얻고 싶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씬에서 놀기 위해 꼭 수고스럽게 블록체인 지갑을 만들고, 거래소에 가입하기 위해 새로운 은행 통장을 만들고, 며칠을 기다려 인증한 다음 코인을 구매하고...하는 귀찮은 과정을 모두가 밟아야 할까요? 


당연하게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가 저희 결론이었습니다. 일단 진입 장벽부터 낮춰주는 장치를 디자인하는 게 저희 UX팀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앞서 나열한 귀찮은 과정들을 모두 없애고 즐거운 경험만 남을 수 있도록요. 아래에 저희의 시도들을 간략히 써봤습니다.




맨 땅에 헤딩하기


NFT 붐이 시작되던 21년도에, 저희는 '좋아요'만으로도 살 수 있는 NFT인 '팬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좋아요'같은 버튼 리액션 / 유튜브 슈퍼챗 같은 후원 등 일방향 애정공세를 넘어서서, 끈끈하고 입체적인 소통은 크리에이터와 팬 사이에 중요한 활동 동기가 됩니다. 팬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크리에이터들은 받은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하곤 하죠.
저희 팀은 이런 소통이 유일무이한 토큰 형태(NFT)로 저장되는 아이디어로 발전시켰어요. 크리에이터는 후원과 관심을 보내준 팬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NFT로 보낼 수 있고, 팬은 카드와 보상을 모아 크리에이터와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터는 팬카드의 발급 조건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요. 팔로우 1번이나 좋아요 1번 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NFT를 발급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사야 하는 재화가 아닌, 놀이 수단으로 NFT를 바라본 첫 시도였어요.

슬프게도 현재는 서비스를 곧 종료할 예정이에요. 하지만 나중을 위한 총알로 잘 보관해두려고 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기능을 다시 런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www.decenter.kr/NewsView/1ZAJ70JFV9

팬카드 활용 예시
팬카드 상세 화면 예시


22년도에는 NFT 경험이 온라인에만 머무는 게 아쉬워, 회사에서 갤러리까지 차려버렸지 뭡니까.

UNCOMMON GALLERY는 봉은사 앞에 위치한 150평 규모의 갤러리이고, 유저의 데이터에 따라 변화하는 NFT 아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장 특별한 점은 블록체인 지갑을 중심으로 한 공간 경험이 펼쳐진다는 점이에요. 입구를 비롯한 공간 곳곳에 QR리더기가 있는데, 지갑 QR을 찍으면 특별 NFT가 쏙 들어오거나 공간의 인터랙션이 바뀌는 등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입히고 있습니다. 

23년에도 이 곳에서 소동을 많이 벌일 것 같네요.

https://www.instagram.com/uncommon.gallery/

https://place.map.kakao.com/2070314079



그리고 23년의 첫 시도로, 메타마스크보다 만들기 쉬운 지갑 앱을 만들고 있습니다. 

좋아요로 사는 NFT, NFT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까지 만들었는데 결국 그 NFT는 '지갑'에 저장되죠. NFT 커뮤니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핸드폰 번호 인증, 이메일 인증 따위 건너뛰고, 지갑을 연결해 보유한 NFT를 증명하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web 3.0 세상에서 지갑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새로운 신분증이 될 거에요.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지갑'을 만드는 과정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습니다. 거래소 가입, 새로운 은행 통장 만들기, 3일 기다려 인증하기, 입금과 출금, seed phrase 저장 등... 이 세상으로 들어오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이 쫙 깔렸어요.

저희는 이 산더미 허들을 없애기 위해 여러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앱이 깔리자 마자 QR코드 하나로 내 지갑이 뚝딱 생기고, 저희가 만들어갈 web 3.0 경험이 NFT로 지갑에 차곡차곡 기록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목표는 메타마스크보다 쉽게 만드는 것!

이에 대한 이야기는 서비스 런치 후 다음 포스팅으로 들고 오겠습니다!




Still Ongoing


Web 2.0와 Web 3.0(아직 실현되지도 않았지만)은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이 둘의 장점만 적절하게 섞어서 2.5정도 되는 피쳐부터 디자인하고 성공시키는 게 디자인팀의 최우선 목표가 될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기 무색하게 자랑할 만한 포트폴리오가 많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스스로를 무능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했고, 자존감이 떨어지다보니 인간관계까지 엉망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우울감은 다 삐까번쩍한 결과물만 바랬던 제 자신이 원인이었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Behance에서 좋아요 많이 받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거에요. 제 포트폴리오는 이 척박한 블록체인 광야에서 맨 땅에 헤딩하다가, 머리가 깨져서 뗀 전치 13주 진단서입니다. 세상을 구할 디자인은 제 몫이 아니고, 좋은 동료분들과 할 수 있는 만큼 일하다가 하산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실패담 보따리가 엄청 큰데,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머릿 속에 정리되는 순서부터 차근차근 다음 포스팅을 이어가보겠습니다. 


더 나아가, Web 3.0쪽에 관심있는 디자이너들을 만나기가 정말 어려운데요, 만약 이 글을 읽다가 관심이 생기신 디자이너 분들은 저와 고민을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씬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를 계속 생각해봤습니다. 결론은... 오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 보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 것 같아요. 판타지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제 정신력과 체력이 닿는 데 까지만요! 이 업계 분들 모두 화이팅!


web 3.0 세상으로 가는 포탈을 갈고 닦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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