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가사의 서정적인 특징과 작사가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서정적이다. 애국가 가사도 한국인의 서정성에 기여한 몫이 크다고 본다. 우리의 애국가 가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첫째, 서정성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國歌)는 강하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든다. 주로 국가 의식이나 행사에서 국민들 모두가 다 같이 힘차게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군가(軍歌)나 행진곡 풍의 웅장하고 힘찬 내용을 담고 있다. 자유와 혁명을 노래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영웅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우리의 애국가 가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서정적인 특징을 보이는데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넘실 거리는 푸른 동해 바다와 높고 웅장한 백두산과, 무궁화와 소나무를 노래하는데, 자연이 담고 있는 이미지와 상징적 의미를 살려내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전달해 듣는 이가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영원성을 말하기 위해 넓고 넓은 푸른 동해 바다를 노래하고, 높고 강한 기상을 말하기 위해 민족의 백두산을 그리게 한다. 이로 인해 듣는 이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좀 더 확실하게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상상력까지 보탤 수 있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의미가 전달된다. 이런 서정의 힘은 크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든다. 뿐만 아니라 서정성은 집단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어필하는데, 집단 의식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인 개인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게 하는 방식이다. 자발적인 개인이 모인 집단의 힘은 그렇지 않은 집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다.
둘째, 말투도 예쁘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하라거나 싸우라거나 하는 식의 명령이 아니다. "~하세"라고 청유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매력적인 끝맺음이다. 청유 또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 명령하는 말과 달리 우선 나부터 할 테니 너도 같이 하자고 권하기 때문이다. 나부터 실천하는 모범을 보인다. 주체성이 강한 사람이라면 남의 명령이 달가울 리 없다. 더군다나 나라를 위한 구국과 애국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면 더욱 더 강한 주체성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하세"라고 청하는 방식으로 하니, 애국심이 절로 생긴다. 강압적이지 않고 민주적이며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켜 주는 세련된 표현이다.
셋째, 내용이 긍정적이다. 다른 나라의 국가에는 슬픔과 분노와 복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애국가는 평화와 소망과 희망을 담고 있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와 같이 우리 민족이 영원히 번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긍정적이고 밝은 언어로 국민 모두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심어 준다.
넷째, 형식도 예쁘다. 4.4조의 운율과 후렴구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이 좋아서, 시의 형식적인 아름다움도 갖추었다.
다섯째, 모두를 위한 노래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 국가에서는 특정 영웅이나 특정 계층이나 지도자를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우리의 애국가는 특정 계층이나 영웅, 지도자를 찬양하지 않는다. “대한사람” 즉 모든 국민이 주인공임을 강조한다. 이는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국가관을 보여주며, 국민 각자가 나라의 주체임을 일깨워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 애국가의 가사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며, 강요가 아닌 청유형의 말투로 국민 모두의 자발적 참여와 사랑을 이끌어내며, 시 형식도 잘 갖추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알았다. 살펴보니 대한민국의 애국가 가사는 참 좋다.
그런데 이 훌륭한 대한민국의 애국가 가사를 창작한 이가 누구인지 아직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작곡가는 명확히 아는데, 작사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창피함을 느꼈는데, 어떻게 한 나라의 국가인데, 오천만 국민들이 다 같이 부르는 노래인데 아직도 국가의 창작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을까 하는 질책하는 마음이 생겼고, 내 나라가 국가 건국 100년이 되도록 국가로서의 체계도 갖추지 못한 나라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봄에 한국어정보학회 훈민정음 세계화와 한글확장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가했다. 훈민정음연구소장이신 반재원 교수님이 발표한 주제는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이었다. 나는 토론을 맡아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아직도 애국가의 작사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료를 읽어보니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애국가 작사가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인물이 다섯 명이라고 한다. 1955년에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에서 민영환, 최병헌, 안창호, 김인식, 윤치호 등 5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고 한다. 이후 1955년에 애국가 작사자 규명 조사위원에서는 애국가 작사자를 안창호와 윤치호로 좁히고 투표를 했다고 하는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종결했다고 한다. 다시 정부수립 50주년이 되던 해인 1998년에 행자부에서 애국가 작사가 공청회를 열어 안창호와 윤치호 두 인물을 두고 논의를 거듭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계속해서 창작자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재원 교수님은 직접 나서서 애국가 가사의 창작자를 찾기 위해 좀 더 심도 깊게 자료를 찾아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 내었는데 내용이 놀랍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해와 백두산과 남산이 모두 경주에도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또한 이를 창작한 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던 인물들이 아니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 인물들은 바로 구호연과 김수원인데 이들은 독립신문에서 공모한 애국가 공모전에 작품을 낸 대학생들이었다고 한다. 구호연은 <애국충성가>를 썼고 김수원은 <한문애국가>라를 썼는데 이들의 작품은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반재원 교수님의 주장은 애국가가 공모전을 통해서 나왔던 창작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이 주장이 맞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애국가가 처음부터 나라에서 작정하고 만든 노래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고 본다. 서정적 자율성이 돋보이는 우리의 애국가 가사는 애초에 자발적인 개인이 만들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자발적인 개인이 창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서정과 서정을 통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는 처음의 태도와 달리 우리가 아직도 애국가 가사의 창작자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감동을 받았는데, 이유는 이렇다. 처음에 나는 우리나라가 국가를 만든 작사가도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라라는 것에 대해 실망을 했는데 자료를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여태 우리가 작사가가 누구인지 몰랐던 이유는 정말 모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추정되는 인물에 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있었다. 모른다고 말한 이유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것을 대충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한다. 국가를 창작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엉뚱한 사람을 창작자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창작자가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이 뚜렷하게 밝혀질 때까지 모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훨씬 더 선진적이고, 높은 문화의식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명하고 대단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권력으로 얼마든지 창작자를 바꿀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도 감동을 받았다.
무궁화 삼천리의 화려 강산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애국가의 작사가가 누구인지, 진짜 주인을 제대로 찾는 일이 우리나라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