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생을 위한 시낭송 by 시샘 김양경
무슨 절간 이름인 줄 알았다. 제목이 멋있고 독특해서 시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제목을 한글로 읽을 때에는 도통 해석이 되지 않았고, 선우사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한자를 찾아보니, 반찬 선(膳)이라고 한다. 반찬 친구에게 보내는 글이란다.
- 함주시초(咸州詩抄) 4
선우사(膳友辭)/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자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자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고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과슨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자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조광, 3권 10호, 1937. 10.
== 시샘의 시 해설과 감상 ===
이 시에서는 저녁 밥상에 오른 가자미와 흰밥을 대상으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선우사'라는 제목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선'은 반찬 '선' 자인데, '반찬벗들에게 보내는 글' 정도로 해석이 된다. 가자미와 흰밥을 앞에 두고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생선에 흰밥으로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지금도 별로 공감이 안 가는데, 그 당시 밥은커녕 감자도 없어서 굶어서 죽던 사람이 많던 때에 이런 밥상을 앞에 두고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 가난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밥을 굶는 이가 많던 시대에 해외로 유학을 다녀오고 안정된 직업과 직장을 가졌던 인물이 가난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백석의 시가 탁월한 이유는 그의 시가 자신만의 독특성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의 그런 독특성은 동네 서당에서 배워서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유학 생활을 통해 신문물을 누렸고, 서양의 문학 사조를 공부할 수 있었다. 그의 시가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유학을 가서 서양의 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유학을 보내려면 허리가 휜다. 유학을 보냈다는 것은 적어도 집안이 먹고살만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거의 모든 시에서 가난을 말한다. 가난과 고결함에 대해 말한다. 이런 경향은 비단 백석의 시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문단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부자인 시인이 가난을 노래하는 예를 몇 개 살펴보면 이렇다.
짚방석(方席) 내지 마라 낙엽(落葉)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이 시의 화자는 짚으로 만든 방석이 아니라 낙엽에 앉겠다고 하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박주산채를 먹겠다고 한다. 薄酒山菜에서 박주는 막걸리처럼 싼 술이고 산채는 산나물이다. 막걸리에 나물 반찬을 내오라는 것이다. 이렇게 맨 땅에 앉아서 막걸리에 산나물을 먹겠다고 하는 시를 창작한 이는 한호이다. 한호가 누군가 하면 바로 한석봉이다. 추사 김정희와 당대 쌍벽을 이루었던 서예가이다. 한석봉은 가난하고 싶어도 가난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소탈하게 막걸리에 산나물을 먹겠다는 시를 창작했다.
연잎에 밥 싸 두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이 시조에서도 연잎에 밥만 싸서 도시락으로 먹겠다고 반찬도 장만하지 말라고 한다. 이 시조의 창작자는 윤선도이다. 조선 시대 의금부에서 금부도사를 지냈던 정치인이었다. 물론 이 이조는 유배지에서 썼던 작품이라서 부를 누릴 수 있던 때는 아니었을 것이다.
더 많은 작품들에서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고관대작에 시대를 초월해서까지 유명한 유명인사라 떵떵 거리며 살던 사람들이었을 텐데도 시에서는 가난하고 먹고 산다. 그래서 헷갈렸다. 나처럼 진짜 가난한 사람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만 헷갈렸을 것 같지 않다. 많은 이들이 헷갈려하고 있을 것 같다. 왜 부자들이,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도 이렇게 가난에 대해 말하고 가난을 칭송했을까에 대해서. 가난이 주는 위기감과 불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가난은 생존을 위협하고 자유를 억압한다. 가난은 사람을 비굴하게 하고, 사람다움을 지킬 수 없게 한다. 혹시, 이 사람들은 정말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말 가난한 사람이라면 가난을 낭만적으로 말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언제 이런 상류층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겠는가? 상류층에 살면서도 경계를 허물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세를 낮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낮은 층에 있는 내가 상류층 사람들처럼 호사를 누리면서 인간애를 말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그렇다면, 내 생각을 정리해 보면 이 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여전히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가난하더라도 마음이 고결한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을 일러주는 시인 것이다. 고작 반찬인 친구라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친구들이다. 그렇지만 그런 초라한 친구들과도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나를 위로해 주는 존재는 위대하고 커다랗고 힘센 존재가 아니라, 고작 반찬 같은 친구라 하더라도 그런 친구가 곁에 있어서 나를 위로해 주는 것임을 알게 한다.
== 시샘의 시낭송을 위한 이해와 발음===
백석 시인의 「선우사(膳友辭)」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통해 깊은 위안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시 낭송을 위해서는 시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이 시는 단순한 구성처럼 보이지만, 화자의 정서가 점층적으로 확장되고 반복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1연: 쓸쓸한 저녁의 풍경과 소박한 관계 설정
- 화자('나'), '흰밥', '가자미'라는 세 요소가 한 '나조반'에 함께 앉아 쓸쓸한 저녁을 맞이하는 상황을 제시합니다.
- '쓸쓸한'이라는 감정을 먼저 제시하며 시작하지만, 이는 단순한 고독이 아닌, 더 깊은 성찰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2연: 존재론적 교감과 친밀감의 발견
- '흰밥과 가자미와 나는 /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무생물과 유기물인 '흰밥'과 '가자미'를 의인화하여 동등한 존재로 격상시키고, 그들과의 깊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합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선우(膳友)'로서 인식합니다. '우리들은'이라는 반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조합니다.
3연: '우리들'의 성장 과정과 순수의 근원 (세 가지 비유)
-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고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순수하고 고요한 자연에서의 성장)
- '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술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소박하고 한적한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된 삶)
-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세상과 단절된 고립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순수하게 자라남)
-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우리들'이 세상의 속세와는 동떨어진, 순수하고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났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들'의 '욕심 없음'과 '희어짐'의 근거가 됩니다. '잔뼈가 굵은', '나이 들은', '자라난' 등 시간의 흐름을 통해 내면의 성숙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합니다.
4연: '우리들'의 본질적 속성 – 순수, 정갈함, 욕심 없음
-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순수의 절정)
- '착하디 착해서 세과슨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선량함과 무해함)
-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은 깨끗함, 비록 초라해 보일지라도)
- '희어졌다', '세과슨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파리했다' 등의 표현으로 '우리들'의 순수하고 정갈하며 욕심 없는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는 3연의 성장 과정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5연: 내면의 충족과 자족감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 가난이나 외로움이라는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충족감과 자족감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풍요로움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입니다.
6연: 세상에 대한 초월과 존재론적 완성
- '흰밥과 가자미와 나는 /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1연의 '흰밥과 가자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가 다시 등장하며 수미상관 구조를 이룹니다. 시작과 끝이 연결되면서 시 전체의 통일성을 확보합니다.
세 존재의 공동체적 유대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속세적인 가치나 번뇌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음을 선언합니다.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는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나 체념이 아니라, 내면의 평화와 충족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번잡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달관의 경지를 나타냅니다.
-의인화:'흰밥'과 '가자미'를 사람처럼 '쓸쓸한 저녁을 맞고', '이야기를 하고', '미덥고 정답고 좋은' 존재로 표현하여 친밀감을 극대화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화자의 내면세계에 동화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반복:'우리들은'이라는 주어의 반복과 특정 구절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하고, 주제 의식을 강조하며 시 전체의 통일성을 부여합니다.
-토속어/방언: '나조반', '가자미', '해정한', '하고긴', '단이술', '세과슨' 등 백석 시 특유의 토속적이고 평안도 방언적 어휘를 사용하여 시에 고유의 정서와 향토성을 부여합니다. 이는 시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리들'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대조:'가난'과 '외로움'이라는 현실적인 조건과, '서럽지 않다',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는 내면의 상태를 대조시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비유:3연에서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술 먹고 나이 들은',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등의 비유를 통해 '우리들'의 순수하고 소박한 성장 과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점층법:2연에서 '이야기할 것 같다' → '미덥고 정답고 좋다'로, 5연에서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 '부럽지도 않다'로 화자의 정서가 심화, 확장됩니다.
- '나조반[나조반]', '해정한[해정:한]', '하고긴[하고긴]', '단이술[단이술]', '세과슨[세과슨]' 등 토속어와 방언의 맛을 살려 발음하되, 과장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합니다. 너무 과장된 발음은 의미 전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희어졌다', '파리했다': 이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덧없음을 잘 살려 발음합니다. '희어졌다'는 '희-어졌다'처럼 발음하기보다, '히어졌다'에 가깝게 발음하며 순수함의 느낌을 살립니다. '파리했다'는 연약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도록 가볍게 발음합니다.
-반복되는 구절의 운율: '우리들은'이 반복될 때마다 일정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리듬감을 유지합니다. 감정을 조금씩 실어 변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감탄형 어미 '다': '좋구나', '탓이다', '없다', '파리했다' 등의 '다' 어미는 단호하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을 줍니다. 과도한 강세보다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마무리합니다.
-초반의 담담함과 쓸쓸함:
1연에서는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와 같이 다소 쓸쓸하고 고독한 어조로 시작합니다.
점차 고조되는 친밀감과 만족감:
2연 이후부터 '미덥고 정답고 좋구나', '우리들은'의 반복을 통해 대상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만족감이 점차 깊어지는 어조로 변합니다.
차분하고 달관적인 태도:
시 전체적으로는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보다는, 소박한 삶 속에서 스스로 평화를 찾아가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5연과 6연에서는 가난이나 외로움마저 초월하는 달관의 경지가 느껴지는 어조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어른의 회고적 어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나이 들은 탓이다', '자라난 탓이다'와 같은 표현에서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노년의 지혜롭고 자애로운 어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연의 의미 덩어리 안에서 자연스러운 쉼을 가지고, 긴 문장에서는 적절히 호흡을 조절하여 의미를 명확히 전달합니다. 특히 3연의 세 가지 비유는 각 비유마다 잠시 쉼을 두어 독립된 의미를 전달하도록 합니다.
속도 조절:
전체적으로는 느리고 차분한 속도로 낭송하되, 2연의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와 같은 부분에서는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정적인 분위기:
시 자체가 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므로, 과도한 제스처나 표정 변화보다는 내면의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데 집중합니다.
시선의 처리:
청중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되, 시의 내용에 집중하여 때로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 처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선우사(膳友辭)-膳, 반찬 선 友, 벗 우, 辭 말 사. '반찬 친구들에게 주는 글'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나조반 - 나주반, 나주 지역에서 나무로 만든 작은 밥상
해정한 - 깨끗한
세과슨 - 억센
유튜브 영상으로 시낭송 감상하러 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an6tvXAV1J0&lc=UgzpmuU2aIjdAVkHcJd4AaA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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