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나 이백같이/백석 시

- 시낭송을 위한 시 읽기와 감상

by 시샘 김양경

백석 시는 독특하고 아름답다. 이 시도 백석 시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시이다. 백석은 이 시에서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자신의 쓸쓸함과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런 개인의 고독을 민족적인 비애감으로 연결하고, 또한 고귀한 예술가들이 느끼는 보편성으로 승화시킨다. 백석 시의 이러한 문학적 경향은 당시 한국 시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우 개성적이고 독특한 특징이다. 이 시는 백석이 28세 되던 1941년에 만주의 신찡 지역에서 지냈을 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두보나 이백같이/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낼 것이언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던 옷에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아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 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레이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을 찾아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 소리 삘뺄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인문평론』 3권 3호, 1941.4.



== 시샘의 시 해설과 감상 ===

1941년이니 당연히 일제강점기였고, 꽤나 오랫동안 일제강점이 지속되고 있던 때였다. 수 많은 조선의 사람들이 강제로 고향을 잃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을 하며 살았을 때다. 시인 또한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외국의 먼 곳에서 지내야 했으니 얼마나 쓸쓸하고 고달팠을까.

이런 고독과 슬픔은 명절에 더욱 심해질 것이다. 명절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모여서 잔치를 벌이는 때이다. 그런데 그런 흥겨운 날에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외국에서 혼자 쓸쓸히 보내야 할 때의 심정이라면 얼마나 고독하고 슬펐을까. 그러나 백석 시인은 자신의 이런 고독과 슬픔을 개인의 상황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라를 잃고 유랑을 하면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이기도 하고, 또한 높고 고귀한 생애를 살았던 시인들의 특징이기도 한 것으로 승화시킨다.

개인의 슬픔을 민족공동체의 슬픔으로 확대하고, 개인의 고독을 고귀한 시인의 예술혼으로 보편화시킨다. 따라서 백석 시에서 유랑과 고독은 유랑과 고독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연대이고, 예술혼으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아픔이 된다.

객지에서 정월대보름을 보내는 시인의 쓸쓸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객지를 유랑하는 자신의 처지와 두보나 이백과 같은 천재 시인들의 처지를 비교하여, 이들이 객지 생활을 하며 고달프게 살았지만 정신적으로는 고고하고 높은 정신을 소유했던 것처럼 자신도 그러하다는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에서 두보나 이백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매개체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유랑하는 삶이고, 또 하나는 떡국과 원소라는 음식의 동질성이다. 중국 사람들이 먹는 원소라는 떡은 백석의 고향에서 먹던 떡국떡과 같은데, 두보나 이백이 원소라는 떡을 사 먹었듯이 자신도 고향에서 떡국 떡을 사 먹을 것을 생각한다.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처럼 자신도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가난과 유랑 속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지만, 시인들처럼 맑고 높은 정신을 지니고 사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의 주제를 정리해 본다면 이렇다.


주제

타향에서 정월대보름을 맞이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

고향을 잃고 떠돌아야 하는 민족의 슬픔.

시대를 초월해 고독하고 슬프게 살아야 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공감과 동일시


*어휘 풀이

객고 : 객지에서 겪는 고생

억병 : 엄청 많이

가업집 : 음식을 만들어 파는 집

반관 :음식점

본대로:본 모습대로

원소:음력 정월 보름날을 원소라고 하는데, 이날 먹는 떡도 원소라고 한다.

느꾸어 : 느긋하게 하여. 긴장이나 흥분을 풀어.

오독독이:일종의 푹죽놀이

호궁 : 바이올린과 비슷한 현악기

옛투의: 옛날 방식의


*시의 구성과 의미

1연 (1~5행): 정월 대보름에 타향에서 홀로 맞이하는 객고(客苦)와 옛 시인(두보, 이백)에 대한 상념.

2연 (6~13행): 고향에서의 풍요로운 명절 풍경과 현재 자신의 초라하고 쓸쓸한 처지 대비.

3연 (14~24행): 고향 음식(떡국)에 대한 갈망과 옛 시인들의 원소(元宵) 먹던 모습에 대한 상상,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쓸쓸함의 공감.

4연 (25~28행): 대보름 밤 풍경(오독독이, 호궁 소리)과 고독감의 심화, 옛 시인들과의 동일시.


*표준발음법

객고 [객꼬] 또는 [객꼬ː] (길게 발음할 수도 있음)

신세로다 [신세로다]

억병 [억뼝] (원래 뜻은 '억 개의 병'이나 여기서는 '매우 많이'라는 의미로, 실제 발음은 [억뼝]으로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준 발음법에 따라 [억뼝]으로 표기합니다.)

일가친척들 [일가친척뜰] (뒤의 '들'은 [뜰]로 경음화됩니다.)

것이언만 [거시언만] (이어지는 대로 발음)

마른물고기 [마른물고기]

앉아 [안자]

있었을 [이썯쓸] 또는 [이썻쓸]

가업집 [가업찝] (뒤의 '집'이 [찝]으로 경음화됩니다.)

떡국이라도 [떠꾸기라도] ('떡국'은 [떠꾹]으로, '국이'는 [꾸기]로 연음됩니다.)

으레이 [으레이] 또는 [으레ː] (주로 [으레ː]로 장음 발음되기도 함)

본대로 [본대로]

원소 [원소]

느꾸어 [느꾸어] (낯선 표현이지만, 쓰인 대로 발음)

맑은 [말근]

훗자손들 [훋짜손들] (사이시옷 현상으로 [훋]으로 소리 나고 뒤에 [짜]로 경음화)

따서 [따서]

아득하니 [아드카니]

슬플 [슬플]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오독또기 탕탕 터지고] ('오독독이'의 '독' 뒤에 '이'가 붙어 [또기]로 경음화될 수 있습니다.)

호궁 [호궁]

삘뺄 [삘뺄]

생각난다 [생강난다] (비음화 현상)

아무려나 [아무려나]

옛투의 [옏투의]


표현법

대비: 고향에서의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 모습(새 옷, 새 신, 떡과 고기, 일가친척)과 현재 타향에서의 초라하고 쓸쓸한 모습(때 묻은 옷, 마른물고기 한 토막, 혼자 외로이)을 대비시켜 화자의 고독감을 심화합니다.


비유: 자신의 처지를 옛 중국 시인 두보와 이백에 비유하여 보편적인 예술가의 고독과 향수를 표현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쓸쓸함을 넘어선 시대적 비애감을 드러냅니다.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향토적이고 구체적인 시어: '객고', '억병', '마른물고기 한 토막', '가업집', '떡국', '원소', '오독독이', '호궁' 등 구체적이고 토속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시의 사실성과 정감을 높입니다. 백석 시인의 특징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반복: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 '쓸쓸한 마음' 등의 구절을 반복하여 시인의 정서와 의식을 강조합니다. 특히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라는 표현의 반복은 비애감의 깊이를 더합니다.


시간의 교차: 과거(옛 시인들의 삶), 현재(화자의 객지 생활), 미래(먼 훗자손)의 시간이 교차되면서 시상이 전개됩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고독이라는 주제를 강조합니다.


설의법: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슬프지 않을 것인가"와 같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설의법을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독자의 공감을 유도합니다.


수미상관: 시의 마지막에서 다시 '옛 시인들'과 자신의 '쓸쓸한 마음'을 연결하며 수미상관적인 구조를 통해 주제 의식을 강화하고 여운을 남깁니다.


*시 낭송 시 어조와 감정

전반적인 어조: 담담함 속의 쓸쓸함과 그리움

시 전체적으로는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향을 떠나 홀로 명절을 맞는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쓸쓸함과 그리움을 잔잔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마치 독백하듯,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듯한 느낌으로 낭송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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