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은 작사, 감상과 해설
낮에 뜨는 달/안예은 작사
어디인가 여기인가 모든 것이 끝날 곳
영원 속을 헤매다 눈길이 맞닿은 그 순간
나는 너로 너는 나로 몇 번이고 되감는 실타래
언제일까 모두 끊어내는 날
나는 살아내리라
사랑이라 하는 게 꼭 지옥과도 같더라
썩어버린 것을 알면서 잡게 되는 동아줄
처음 그날도 수년 전에도 어제 그리고 오늘도
끔찍하게 똑같은 운명이여
봄이 오거든 그곳으로 가자
너와 닮았을 나의 나락으로
해가 들지 않고 꽃 피지 않아도
우리인 채로 함께 있자 다시
마음이라 하는 게 꼭 천벌과도 같더라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담게 되는 뒷모습
마지막에도 깨어나고도 오늘 그리고 내일도
잔인하게 똑같은 운명이여
봄이 오거든 그곳으로 가자
나와 닮았을 너의 나락으로
달이 낮에 뜨고 새 날지 않아도
우리인 채로 함께 있자 다시
수천 번을 고쳐 죽어 다시
떠나지 못해
가지 말아라 가지 말아라
여기가 우리의 나락이니
천오백의 세월 열아홉 번의 생
이제는 모두 멈추고서
봄이 오거든 그곳으로 가자
=== 시샘의 가사 읽기와 감상 ===
낯설고 신비로웠다. 안예은만의 세련되고 현대적인 국악적 창법으로 인해 신비로움에 깊이를 더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가 깊고 신비로웠는데, 길고 진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가사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한동안 정신이 멍해져서 소리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내가 늘 들어왔던 그 모든 사랑 이야기와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새로운 의미를 밝혀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세와 내세를 넘나들면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사랑을 끊어내겠다고 한다. 사랑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지옥 같고, 끊어내어야 하는 대상이고 '나락 간다'에서 사용되는 '나락'이라는 극단적인 의미를 포함한 단어도 나온다.
나는 그런 극단적 어휘가 어떤 의도로 사용되었는지, 나는 왜 이리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인지 내가 받은 감동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 가사에 우리 모두가 그동안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너무도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고 몇 번이고 읽으면서 의미를 상상했다. 웹툰이나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만으로 해석을 해 보았다. (이 노래는 웹툰 ost로 제작된 것이라 한다.)
1.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
운명이라는 말에는 절대적이고 피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하면 통상 너무도 절대적이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좋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사에서의 운명의 의미는 그와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도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다. 그래서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이 고통이라도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고통스러운데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디인가 여기인가 모든 것이 끝날 곳
영원 속을 헤매다 눈길이 맞닿은 그 순간
나는 너로 너는 나로 몇 번이고 되감는 실타래
언제일까 모두 끊어내는 날
영원히 반복되는 실타래는 너와 나를 계속 같은 곳에서 만나게 하고 나는 또 너를 사랑하게 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게 하고 그리고 또다시 고통은 반복되고. 끊어내고 싶은데 어디로 도망을 가든 너와 또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 같은 사랑을 노래한다.
나는 살아내리라
사랑이라 하는 게 꼭 지옥과도 같더라
썩어버린 것을 알면서 잡게 되는 동아줄
처음 그날도 수년 전에도 어제 그리 오늘도
끔찍하게 똑같은 운명이여
사랑이라는 것이 지옥이고, 썩어버린 동아줄인데도 수천 년 동안 반복되는 운명적인 사랑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고통스러운 절규가 담겨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지옥도 반드시 살아내겠다고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끔찍하게 반복되는 운명을 한탄한다.
봄이 오거든 그곳으로 가자
나와 닮았을 너의 나락으로
달이 낮에 뜨고 새 날지 않아도
우리인 채로 함께 있자 다시
내가 눈물을 줄줄 흘렸던 대목이다. 끔찍한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봄이 오면 그곳으로 가자고 한다. 나의 입장이나 너의 입장이나 비슷한 처지일 것을 이해한다. 그런 우리가 봄에 간 그곳에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달이 낮에 뜨고 새도 날지 않는 곳이란다. 그래도 그런 봄을 맞으러 가고, 우리는 서로가 너무 힘든데, 너무 고통스러운데도 함께 있자고 한다.
수천 번을 고쳐 죽어 다시
떠나지 못해
가지 말아라 가지 말아라
여기가 우리의 나락이니
천오백의 세월 열아홉 번의 생
이제는 모두 멈추고서
봄이 오거든 그곳으로 가자
그냥 이대로 그런 봄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수천 번을 고쳐 죽어도 우리는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어딜 또 가거나 피하려고 또 다른 생을 찾아갈 필요 없다는 말이다. 무려 천오백 년이나 되는 세월을 무려 열아홉 번이라는 생을 반복해서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던 고통이다. 그러니 봄이 오거든 그곳으로 가자고 한다. 낮에 달이 뜨고 새도 날지 않는 그런 봄을 맞으러 가자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하려고 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어 보겠다고 한다.
2. 가사에 담긴 풍부한 의미 해석
이 노래의 주제를 피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사랑이라고 보거나, 사랑 이야기라고만 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이 가사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랑이라는 소재를 선택했을 뿐이지 인생의 참된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뜬금없겠지만, 내가 인생의 고비에 부딪혔을 때 자주 떠올리던 옛날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
옛날에 한 부부가 살았다. 부부의 왼쪽 집에는 목수가 살았고 오른쪽 집에는 대장장이가 살았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목수와 대장장이가 일을 하느라 뚱땅거리고 두들겨 대니 부부는 너무도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도 괴로웠던 부부는 꾀를 내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다. 마침내 부인이 꾀를 내었는데 대장장이와 목수에게 이사를 가라고 돈을 대어 주자는 것이었다. 남편이 듣기에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돈을 주면 이들이 돈을 받고 이사를 갈 테니까, 그렇게 되면 조용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부는 목수와 대장장이에게 이사를 가면 돈을 준다고 했고, 이들은 흔쾌히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그날 밤 부부는 드디어 조용한 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에도 뚱땅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부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길이 없어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왼쪽 집에 살던 목수는 오른쪽 집으로 이사를 갔고, 오른쪽 집에 살던 대장장이는 왼쪽 집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다.
부부가 어떤 노력을 해도 외부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고작 왼쪽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이 왼쪽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인생 같아서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 지겹고 힘든 인생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다 바꿀 수 있다고 자신감에 차 있지만 대부분의 인생의 시간은 그런 성공을 이루기까지 견뎌야 하는 시간이 팔 할이다.
그렇다면 부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그렇다. 위의 가사의 화자처럼 덤벼야 한다. 살아내어야 한다.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천오백 년이다, 열아홉 번의 생을 사는 동안 내내 같은 고통 속에 머물게 된다.
달이 낮에 뜨는 세상이라니, 낮과 밤이 바뀐 그 거꾸로 된 엉망진창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견뎌내어야 한다. 살아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끊어낼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을 이룬 사람은 더 이상 영원히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상대를 끝까지 지켜내고 사랑을 완성해야 끊어질 것이다.
3. 내 삶의 태도와 연결하기
이것은 내 삶의 태도와도 연결이 된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내 앞에 놓인 고통스러운 현실을 진정으로 벗어놓고자 한다면 그것을 버려두고 그냥 떠나거나 회피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친구와 다투었다고 가정해 보자. 친구와 나는 둘 다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서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는다. 친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다른 곳으로 간다. 그러나 몸은 갔으나 마음은 여전히 친구와 다퉜던 이야기 안에 머물러 있다. 공간을 아무리 벗어난다 해도 마음은 영원히 따라다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친구와 잘 지낼 수 있도록, 아니면 정말 제대로 끝장을 낼 수 있도록 맞대면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지가 있어야, 그런 넓은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친구와의 불편한 마음이 끊어진다.
무엇이든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내지 않고는 그 지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내가 깨달은 것들이 이 가사가 밝혀주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나름대로 가사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나는 답답하고 힘든 삶을 이겨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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