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나요?
최근 쇼펜하우어의 인생 지침이라면서 인간 관계에 대한 영상이 자주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보게 됐는데 볼수록 인간 관계를 단절하고 계산하고 냉정하게 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적어도 내가 읽은 쇼펜하우어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석을 한 건지 인간 관계를 더욱 단절할 것을 종용하는 영상이 나돌아 다닌다. 신경 쓰인다. 그런 식으로 살면 더욱 단절되고 고독해지고 삭막해질 텐데, 왜 자꾸 긴장감을 부추기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 냉정한 어른들을 향해서 내가 만난 어린왕자를 선물해 주고 싶다.
열심히 살았는데, 높아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죽기 전에야 그것이 잘못된 삶인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린왕자는 바로 '나'의 어린 시절의 '나'였다. '나'는 어린 시절 매우 아름답고 순수했고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고작 6살 때, 그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처음엔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는 자기 스스로도 어른들의 말에 따라 그냥 어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도 없이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어른으로 살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어린왕자를 만나게 된다.
'나'는 비행기 조종사이고 사막 한 가운데에 잘못 착륙하게 된다. 비행기는 망가졌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불쑥 어린왕자가 나타나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이미 퇴색되어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이었던 '나'는 6살 이후로 한번도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었고,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겠다고 거절을 한다. 그래도 어린왕자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였고, 성화에 못 이겨 '나'는 자신이 그릴 줄 아는 유일한 그림이었던 보아구렁이가 코끼리를 잡아먹은 그림을 그려 주었다. '나'는 그 누구도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주거나 이해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 주었던 것이다.
어린왕자는 '나'가 무엇을 그렸는지 딱 알아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 주는 진정한 친구를 만났던 것이다.
어린왕자 이야기다. '나'는 어린 시절 매우 아름답고 순수했고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세계에 관심을 가졌고 다양한 생명들에게 호기심을 느꼈으며, 그림을 그려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가 그린 그림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돈이 되는 수학이나 영어를 할 것을 요구했다.
고작 6살 때, '나'는 그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처음엔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는 자기 스스로도 어른들의 말에 따라 그냥 어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속된 어른이 되었는데, 이 어른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자신의 진심을 감추거나 계산해서 말하느라 단 한 번도 자신이 느끼는 진짜 감정은 말하지 못하는 껍데기뿐인 존재로 살아간다.
생떽쥐뻬리의 명작 '어린왕자'에는 어른에 대한 비판이 잔뜩 나와 있는데,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계산적이고, 욕심쟁이에, 정복자에, 지배자이며, 술주정꾼이며, 허세꾼에, 물질적이고, 기계적이며, 비논리적이고 무책임하고 무례하고, 비굴하고, 맹목적인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어린왕자는 더 이상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마침내 여우를 만나 진정한 관계 맺기의 방법을 배우게 된다는...
그러나 어린왕자를 만나지 못한 수 많은 어른들의 삶은 어떨까?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 하나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늘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진짜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노래도 이 어린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왕자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어른의 삶을 그리고 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 하나 없는 팍팍한 삶.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어른의 마음을 담고 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순간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책임감과 부담만 안고 살아가는 어른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어른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다. 가사를 살펴보자.
오늘 같이 읽을 시는 노래 가사이다. 이 가사의 노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OST인데, 손디아가 노래를 불렀다. 힘든 현실 속에서 느끼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담고 있다.
어른
박성일 작곡/이치훈,서동성 작사/Sondia 보컬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 시샘의 시 해설과 감상 ==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일상에서 겪는 고단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눈물을 흘린다. 일상이 고단한 것도 힘들지만 아직도 그런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화자를 더욱 암담하게 한다. 또한 그런 힘든 생활을 오로지 자기 혼자 책임져 나가야 하는 부담감과 고독감을 느끼고 있다. 넓은 세상에 혼자라는 말은 자신이 외톨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플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는
자신은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느끼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련이 남아 있음을 느끼며 절망하고 있는 부분이다.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에서,
화자는 지쳐버린 자신을 스스로 멈추라고 휴식을 권유하고 있다. 자기 위안을 하고 있다.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언젠가는 어둠의 시간이 갤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는데,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고 나면 갤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어서, 혹은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어둠이 갤 것이라고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아집이나 작은 자아에서 벗어나서 좀 더 큰 존재로 성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 안에서 벗어나야 하는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노래 가사에는 넓은 세상에서 자신 혼자만 고독하게 살아가야 하는, 그리고 고단한 삶을 견뎌내어야 하는 고통스런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끝내 어둠이 걷히기를 소망하고 있는 내용이다.
■작품 분석
(1)표현법
비유법
짙은 나의 어둠 : 내면의 상처를 깊은 어둠에 비유적 표현했다.
별은 영원히 빛나고 : 희망을 별에 비유했다.
반복법 : 주요 구문의 반복을 통해 감정이 점점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같은 형식의 반복으로 음악적 효과와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다.
대조법 :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밝음과 화자의 어둠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어 소외감을 더욱 잘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2)주제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자아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좌절과 슬픔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내적 상처가 깊이 드러난다. 그러나 자기 반성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3)어조 - 애상적이다. 단정적, 관조적 어조. 절제된 담담함과 희망의 의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