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시

-중학생을 위한 시낭송 수업

by 시샘 김양경

넌 투자 하지 말아라

오로지 노동으로 번 돈이었다.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도 노동을 하기 위한 과정에서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등, 벌이를 위한 과정에서 드는 돈은 노동을 해서 번 돈보다 많이 필요했고, 노동으로만 번 돈은 언제나 얄팍하고 팍팍했다. 남들 번들번들 대출도 잘 받고,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 투자도 잘해서 노동 없이도 쉽게 돈이 많던데, 나도 그런 사람들이 부러워서, 투자를 한번 배워보려고 했을 때였다.

물건을 알아보고, 투자 대상을 고르는 중에 여기 저기 상담을 받았다. 그때 들었던 말이다.

"넌 투자하지 말아라."

그 말을 듣고는 불쾌감이 불쑥 올라왔는데, 어조가 다정해서 헷갈렸다. 투자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이랬다. 내가 번 돈은 투자를 하면 안 되는 돈인데, 그 이유가 이렇게 한 푼 두 푼 땀 냄새가 잔뜩 밴 돈으로는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투자를 하면 좋을 수도 있지만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 잘 되어서 이익이 되면 좋겠지만 이익이 안 될 경우도 예상을 해야 하는데, 땀 냄새 밴 돈을 잃어버리면 너무 속상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거저 번 돈을 잃어 버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좌절감이 생길 거란다. 워낙 똑똑하고 야무진 나의 그 상담자는 나에게 말해준 방법대로 자신도 그렇게 투자를 했다고 했다.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으로는 먹고 입는데 알뜰하게 쓰고, 그 외로 생긴 돈으로 투자를 했다고.

영 그런 일이 없어서, 어떻게 좀 해 보려고 하는 건데, 기껏 땀 밴 돈뿐이라서 이걸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번 돈은 그냥 숫자로 통하는 돈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벌기 위해서 내 인생과 일상과 노동과 인간 관계와 감정과 그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돈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본이 중심이 되는 사회, 자본주의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색깔을 세상의 모든 사건을 세상의 모든 감정을 오로지 돈 하나로 결정 짓는다.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떻게 벌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과정은 생략된 채 돈이라는 하나의 색깔과 하나의 사건으로 종결된다. 쓸쓸한 일이다. 그래서 그 돈이라는 것이 어떤 돈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나마 나에게 내 돈은 다른 돈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돈에도 사연이 있고, 같은 돈이라도 다른 삶의 무게가 담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윤동주의 시를 한 편 소개한다. '쉽게 씌어진 시'이다. 화자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가 포근히 품긴 학비로 대학 공부를 한다. 어렵게 번 돈을 아들의 학비로 보내주셨는데, 자신은 부모님께서 어렵게 보내주신 돈을 너무 쉽게 쓰는 것 같아 괴로워하는 내용이다. 부모님의 노동과 수고를 생각하면 시를 쉽게 쓸 수 없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6월 3일


== 시샘의 시 해설과 감상 ===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의 화자는 윤동주 자기 자신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1942년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쓴 작품이다. 시에서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부분에서 타국인 것을 알 수 있다. 육첩방이라는 것은 일본 전통 가옥인데 다다미 여섯 장 넓이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1942년은 일본제국주의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군국주의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이때 조선인들에 대한 통제와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창씨 개명, 신사참배 등을 강요했으며 이를 통해 민족을 없애려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던 때였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현실 속에서 지식인들은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어려웠고,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다.윤동주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시인이 조국의 현실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자신은 그런 조국을 떠나온 것이며 자신은 안락학 공부하며 시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무기력한 현실적 자아에 머무르지 않고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라고 말을 하면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해 보려는 다짐을 하고 끝을 맺는다. 외국의 공간에서 자신만 편안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동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희망을 찾고 자기 성찰을 하고 있다.



■작품 분석

(1)구성

1~2연 - 배경과 현실 인식

3~6연 - 슬픈 천명과 무기력

7~8연 - 자기 성찰과 부끄러움

9~10연- 자아의 화해와 위로


(2)표현법

반복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상징적 시어 -밤비, 등불, 아침 등 어둠과 희망, 현실과 미래의 대비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대립적 이미지(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분열, 마지막에는 악수로 화해)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활유법,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의문법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3)주제

부모님이 보내주신 학비로 대학교를 다니는 화자가 부모님이 힘들게 돈을 벌어서 보낸 돈을 그만큼 가치 있게 써야 하는데 자신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그리고 이후에 자신을 스스로 위로한다.


(4)표준 발음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창바께 밤삐가 속쌀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육첩빵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시이니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한 줄 시를 저거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보내 주신 학삐 봉투를 바다]

대학 노트를 끼고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늘근 교수의 강이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생가캐 보면 어딘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하나 둘 죄다 일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거실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시가 이렇게 쉽께 씨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육첩넌 투자 하지 말아라



(5)표준 발음의 원리

육첩방[육첩빵]/학비[학삐]

예사소리 'ㄱ ㄷ ㅂ ㅅ ㅈ' 가 특정 환경에서 ㄲ ㄸ ㅃ ㅆ ㅉ로 발음되는 현상이다.

받침 'ㄱ, ㄷ, ㅂ' 뒤에 연결되는 예사소리는 된소리로 발음된다.


등불[등뿔]

합성어가 합성되는 과정에서 사잇소리 'ㅅ'에 의한 된소리 현상이다.


씌어지는[씨여지는]

손을[소늘] 것일까[거실까]

받침이 뒤에 오는 초성으로 이동하여 발음된다


(6)작품의 특징

어두운 시대에 시인이 자신의 무기력과 내면적 갈등을 성찰하며, 현실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기 반성의 시이다.


(7)어조

담담하게 독백체로.

자기 반성과 부끄러움, 슬픔, 다짐이 섞인 진솔한 어조

마지막에 '최후의 나'가 '내게 손을 내밀어 위안'을 느끼는 부분에서는 절제된 희망과 의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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