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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K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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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근 Nov 21. 2024

여행이 일이 될 때

결핍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르고 싶지 않았고, 주목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헐리우드 키드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또래들이 자연스레 공부에 몰두할 때 나는 이문열과 이외수의 책에 빠져들었고, 따스한 봄날의 햇살 아래 피천득의 '인연'을 읽으며 춘천으로 향했다. 아사코 대신 이외수를 만나러 갔었다. 또 당시 국제신문에 연재되었던 최화수의 '지리산 365'를 읽고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섰으며, 그 길로 산에 빠져들었다.


책과 여행, 산과 바다는 내 모든 관심사였고, 책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은 메모해 두었다가 어김없이 찾아갔다.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WW)이 등장하면서 한국에서도 천리안을 중심으로 여행 동호회가 활발히 활동했다. 그리고 1999년 5월, 다음카페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동호회 활동이 시작되었다. 물 만난 고기 같았다. 직장은 여행을 위한 수단일 뿐, 매주 쉬지 않고 동호회 회원들과 산과 바다를 여행했다.


국내 1위 여행 동호회이자, 다음 랭킹 30위 카페로 규모가 커지자 더 이상 직장과 병행하기 힘들어졌다. 선택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행을 배우기 위해 여행사를 선택했다.


혼돈의 시작이었다. 취미로서의 여행과 직업으로서의 여행은 완전히 달랐다. 지나고 보니, 조직다운 조직을 처음 접하게 된 순간이었고, ‘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처음 받아들였던 시기였다.


취미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한 활동이고,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다. 취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직업은 일정한 보상을 받으며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직업을 통해 사람은 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직업적 성장이나 경력을 쌓는 데 가치를 둔다.


10대와 20대의 나 중심 사고에서 30대 시작과 함께 천직을 만났다. 그리고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철저히 취미와 직업을 분리하기로 결심했다. 취미와 직업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했고,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여행만 하며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면,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변함없이 여행도 다녔다. 취미로서의 여행은 자연스럽게 일에 녹아들었고, 여러 기회를 얻었으며, 조직 내 실적도 탁월했다.


일과 취미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므로, 이를 구분만 잘하면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취미를 전문적인 분야로 발전시켜야 한다. 여행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쌓고, 관련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가 전문가를 인정하는 기준은 10년 이상의 경력, 저서와 논문, 그리고 학위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적어도 10년의 경험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여행 인플루언서들이 직업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전문가라 생각하지만, 사회와 조직이 그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10년을 참고 견뎌보니 길이 열리고 세상이 보이더라.


유의해야 할 점은,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면 의무와 기대감이 생겨 취미가 원래 가지고 있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일과 취미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는 취미 활동에 집중하거나, 직업에서의 스트레스를 취미로 풀 수 있도록 하여 두 가지가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일도 아니고 취미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다.


마지막으로, 직업과 취미가 공존하려면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취미 활동을 즐기기 위해 직업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일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친구가 그랬고, 몇몇 헤어진 이성들이 그랬고, 장기 여행도 그랬다. 그러나 덕업일치의 삶과 25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었기에 후회는 1도 없다.


* 2024년 11월 21일 남해가는 길에 (주)코스트 이영근 대표가 길을 묻는 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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