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12일 차
포트 스테판에서 모래 썰매를 타다
오늘은 내가 가장 기대하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포트 스테판에서 모래 썰매를 타는 날이다.
시드니에서 차로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 포트 스테판은 나에게 엄청난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거리가 멀어서 보통 한인 여행사나 현지 여행사를 통해 버스를 타고 일일 투어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멀미도 심하고 체력도 약한 둘째 아이가 이른 새벽부터 하루 종일 단체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여행사를 통한 투어 상품에는 포트 스테판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근처 동물원이나 와이너리, 돌핀 크루즈 등 추가적인 상품들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투어 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차를 렌트해서 셀프로 다녀오는 것을 택했다.
아이들은 곤히 자고 있던 이른 아침, 남편은 차를 픽업하러 혼자 먼저 출발했다.
차를 렌트하기는 했지만 호주의 운전석은 우리나라와는 반대여서 홀로 시내 운전을 처음 할 남편이 많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남편은 태연하게 혼자 차를 잘 가지고 왔다.
나중에 보니, 사실 속으로는 엄청난 긴장 상태로 운전을 했다고 한다.
포트 스테판에 가기 위해 시작된 공포의 반대편 운전 그렇게 드디어 포트 스테판으로 출발했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10여 일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한 뚜벅이 여행을 하다가 차가 생기니 확실히 편했다.
남편이 직접 운전하는 차로 하버브리지 위를 달리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Anna bay에 위치한 Crest birubi beach 한참을 달려 점심시간 즈음, 포트 스테판 근처에 위치한 식당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밖에 나왔더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눈을 똑바로 뜨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랜 운전 끝에 마주한 뻥 뚫린 경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강한 바람조차 상쾌하게 느껴졌다.
Crest birubi beach의 창가자리에서 보이는 풍경포트 스테판은 대개 투어를 이용하는 여행객이 많다 보니 주변 음식점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나처럼 셀프로 다녀온 몇 안 되는 사람들이 Crest birubi beach라는 식당에 대한 정보를 블로그에 남겨놓았었다.
한국인 후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구글 평점은 매우 좋았었기에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미리 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창가 자리에 한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해변은 마치 커다란 액자에 걸린 그림 같았다.
점심을 다 먹고 밖에 나가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 뻥 뚫린 뷰를 자랑하는 이곳은 포트 스테판에 온다면 꼭 들려야 할 식당이라고 생각된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저 멀리 해변에서 낙타 투어 행렬이 보이기도 했다.
투어 업체에서 운영하는 부스와 해당 업체에서 제공하는 버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썰매를 타기 위해 구글 맵에 Anna bay lower carpark를 찍었다.
이 주차장에 가면 여러 투어 업체에서 운영하는 부스들이 있다고 한다.
주차장까지는 포장된 도로가 있어 일반 차량도 드나들 수 있었고, 주차장에서부터 썰매를 타는 모래 언덕까지는 투어 업체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는 보이지 않고, 모래만 가득한 사막처럼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굽이굽이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을 지나, 우리가 선택한 업체 직원들이 두어 명이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모래 썰매를 들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아이들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짐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었다.
처음 모래에 발이 닿았을 때 그 느낌이 어색했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모래는 걱정했던 바와 달리 입자가 굉장히 부드럽고 고왔으며, 햇빛에 노출된 상태에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사진에서 가까운 쪽이 초급, 베이스캠프에서 가까운 쪽이 중급, 가장 멀리 보이는 언덕이 고급 코스 마치 스키장처럼 모래 썰매에도 초급, 중급, 고급 코스가 있었다.
우리는 먼저 짧고 비교적 완만한 초보자 코스에서 썰매를 타기 시작했는데, 썰매를 타고 다시 올라가는 길이 고역이었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어른인 나도 숨이 차올랐다.
안전을 위해 빨간색 고깔로 표시한 길목으로만 걸어서 올라올라 갈 수 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순간들 누군가가 모래썰매를 타면 눈과 코와 입에 모래가 잔뜩 들어간다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필히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왔는데,
어느 순간 답답해진 나와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왕년에 보드를 탔던 아빠는 서서 타는 묘기를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중간중간 모래 장난도 하며 쉬다가, 이내 다시 썰매를 타러 가자며 졸랐다.
그렇게 우리는 타다가 쉬었다가 타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하며, 무려 3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아이스박스에 물을 담아 팔고 있었다.
꽤 오래 놀았기에 갈증이 난 남편이 물을 사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풀싸, 1달러인 물은 현금결제만 가능했다.
당황한 표정의 남편을 보며 직원이 웃으며 "너희 오래 있었던 거 알아. 물 한 병 공짜로 줄게"라고 말했다.
그 젊은 호주 총각에게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아이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있을 생각이었는데, 결국 내 입에서 먼저 그만 타고 돌아가자는 말이 나왔다.
나에겐 더 이상 걸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난 관계로,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장거리 운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점심을 근사한 곳에서 먹었으니 저녁은 간단하게 해결하려고 근처 음식점을 알아보는 대신 도미노 피자를 검색했다. 도미노 피자는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검색해 우리는 근처 Nelson bay에 위치한 도미노 피자 가게로 향했다.
Nelson bay에 위치한 놀이터 피자를 주문하기 전에 공용 주차장을 찾느라 주변을 돌았는데, 내 눈에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한 멋진 놀이터가 들어왔다.
놀이터 주변에 마련된 벤치에는 우리 말고도 가족 단위로 저녁 식사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남편은 피자를 주문하러 가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했다.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다니!
차에서 간단히 피자 한 조각으로 저녁을 때우려고 했는데, 생각하지 못한 멋진 곳에서 엄마는 눈 호강을 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마저 더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다시 시드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왕복 5시간 운전을 한 남편은 고생스러웠지만,
렌트를 택한 덕분에 Anna bay 바로 앞에 위치한 훌륭한 식당에서 여유 있게 점심을 먹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려 3시간 동안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모래 썰매를 탔다.
게다가 우연히 저녁을 해결할 겸 방문한 놀이터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