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루나파크에 가다
시드니 루나파크에 가기로 한 날.
사실 루나파크는 우리나라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시설도 노후돼서
정말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지라 갈지 말지 한참 망설였다.
누군가는 루나파크를 20만 원짜리 월미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놀이공원을 가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 싶기도 하고
이 또한 장기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라 생각되어
오늘 하루는 루나파크에서 온전히 보내기로 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 아침은 든든하게 한국식으로 떡국을 끓였다.
호주에서 머무는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구할 수 없었던 식자재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국거리용 소고기였다.
하는 수 없이 Coles에서 간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도 끓여보고 떡국도 끓여보았는데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루나파크도 우리 숙소 근처에 있는 바랑가루 워프에서 페리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우리는 또 킥보드를 챙겨 우리가 좋아하는 무지개 길을 신나게 내달려 바랑가루 워프로 향했다.
늘 오가던 익숙한 길인데 어느 가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맛집이라는 뜻이다.
바로 가게 이름을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이곳의 카페 모카가 그렇게 맛있다는 후기가 많았다.
궁금한 마음에 남편도 나도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기 위해 그 줄에 합류했다.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진하게 퍼지는 초콜릿과 커피의 조화로운 맛이 느껴지는 이 모카는 내 인생 모카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아이스 모카에는 내 주먹 반만 한 크기의 얼음 덩어리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별다른 로고 하나 없는 투박한 플라스틱 컵에 주문한 사람의 이름을 매직으로 툭 적어주는 방식도 오히려 이 집만의 클래식한 매력으로 느껴졌다.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시드니에 머무는 남은 기간 동안 매일 이 모카를 반드시 한잔씩 마시리라 다짐해 본다.
시드니 루나 파크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인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바쁘다.
정문의 형상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괴하기도 하다.
미리 예매한 티켓을 창구에서 보여주자 손목에 착용하는 띠를 건네주었다.
전날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하면 당일 현장에서 예매하는 것보다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용감무쌍하게 킥보드를 타고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나중에서야 보안 요원이 다가와 킥보드를 타지 말고 끌고 다녀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우리가 루나파크에서 가장 먼저 탄 놀이기구는 회전목마였다.
처음에 큰 아이는 시시해서 안 타고 싶어 했지만 동생을 위해 함께 동행해 주었다.
회전목마에 올라 신나게 웃는 둘째 아이와 달리, 큰 아이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다급히 외친다.
"엄마, 왜 안전벨트가 없지?"
그러고 보니 둘째 아이를 자리에 앉히면서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안전벨트가 없었다.
호주 사람들은 이런 놀이기구에는 안전벨트가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덕분에 조심스러운 성격의 큰 아이는, 결코 시시하지 않은 회전목마를 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편, 루나파크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탄 놀이기구는 단연 범퍼카였다.
평소에도 범퍼카를 좋아하던 아이들은
이곳의 모든 놀이기구들은 대기줄이 짧은 것이 특징인데
범퍼카에서 내리자마자 거의 바로 또 탈 수 있어 결국 열 번은 넘게 탔던 것 같다.
루나파크에서 제일 무서웠던 놀이기구는 슬레지해머(Sledgehammer)였다.
바이킹 비슷한 놀이기구인가 싶었는데 360도 돌아가는 자이로 스윙이었다.
큰 아이가 꼭 타고 싶어 해서,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아빠대신 엄마가 나섰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출발 전, 아이에게는 무서우면 절대 눈을 뜨지 말고 꼭 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해 두었다.
그런데 한참을 흔들리다 이제 절정이 지나갔겠지 싶어 살짝 실눈을 떴더니, 세상에 하버브리지가 거꾸로 뒤집혀있었다.
놀이기구가 우리를 무사히 땅에 내려놓자,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둘 다 한동안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루나파크에서 제일 신기했던 공간은 실내 놀이터였다.
실내 놀이터에서는 회전하는 원통을 지나거나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는 등 각종 장애물을 통과하는 체험형 놀이기구가 있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판 위에서 오랫동안 버티는 게임이었다.
사회자의 지령에 따라 손을 머리에 올리거나, 몸을 숙여 손으로 발끝을 터치하는 동작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대기하는 사람들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포대자루 같은 것을 엉덩이에 깔고 타는 대형 미끄럼틀도 있었는데, 경사가 워낙 가팔라 우리 가족은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루나파크는 입장료가 무료라, 일부러 멋진 야경 사진을 남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우리도 그 덕분에 이곳에서 소중한 가족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해가 지고 난 뒤, 그동안 아껴두었던 대관람차를 타고 시드니의 야경을 감상했다.
낮에는 대관람차 줄이 짧더니 저녁이 되니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꽤 오랜 시간 대기를 해서 관람차를 탈 수 있었다.
전날 밤, 잠들기 직전까지도 루나파크 표를 예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규모가 크지 않아 덜 걸어도 되고, 대기줄이 짧아 기다리는 지루함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 애들한테는 10시 폐장시간까지 놀고서도 꼭 다시 오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