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양보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타협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흑백' 또는 '적 아니면 동지'라는 식의 논리를 그리 탐탁하지 않아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세상사란 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들이 있다. 타협하면 득은 없고 해가 될 일만 잔뜩 벌어지는 것들이다. 특히나 해가 될 일의 결말이 목숨을 담보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싶다. 그렇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세상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타협을 적지않이 한다.
살아오면서 목숨을 담보로 타협하는 이들을 생각보다 많이 보아왔다. 나 역시 따져보자면 이 범주에 속한다. 제정신이라면 누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타협을 하나!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은 주변에서 흔하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몇 달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추려본 답은 참 다채로웠다.
자기 합리화, 즐거움, 만족, 눈앞의 이득, 얇은 귀 등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뛰어넘는 최악은 잘못된 정보 또는 거짓말이었다. 그 이유를 꼽자면 사람을 혼미하게 해서 결국 목숨을 담보케 하니 최악이다. 사실 이는 범죄와 가깝다. 이런 정보나 거짓말이 정책에 반영되면 그 피해는 상상을 불허한다.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희대의 사기극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 단적인 예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이웃나라에 있었다. 십여 년 전 일본 정치인들은 후쿠시마 방사능 피폭을 정치적으로 해결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의 한 수단으로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는다면, 후쿠시마 방사능 피폭은 별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봤다. 그 결과로 일본 정부는 춤판을 깔았다. '먹어서 응원하자!'가 춤판의 이름이었다.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들이 이 판 위에서 춤을 추었다.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우그적 우그적'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으면서 '먹어서 응원하자!'를 외친 것이었다. 그 결과로 '암에 걸렸다느니', '죽었다느니' 하는 말과 '후쿠시마산 농산물과는 상관없다.' 란 말이 혼재되어 있어 뭐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일본의 암 발병률은 우리보다 높다는 건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잘못된 정보나 거짓말의 피해는 국가단위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얼마 전 간암이 재발되신 분과 식사를 했다. 필자는 '그분이 술을 다시 즐기신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술은 끊고 대신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그래서 난 '혹시 담배가 간암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셔서 그런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건 간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낮은 목소리지만 확신에 찬 변론을 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담배가 간암에 직접적으로 나쁘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네요.' 그 순간 이에 반박할 말들이 수 없이 떠올랐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하셨다는데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의 말을 부정하는 건 모양새가 아무래도 이상할 테니. 믿지도 않으실 테고.
전 세계의 암 전문기관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담배가 미치는 암의 종류는 다양하다. 구강암, 신장암, 폐암, 위암, 간암, 췌장암, 대장암, 백혈병 등등.. 그런데 한국의 의사 선생님이 담배가 간암에 직접적으로 나쁘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니. 아마도 간암이 재발하신 분이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하지만'.. 이란 단어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동안 보아온, 전문가라는 탈을 쓰고는 전혀 전문가 답지 않게 행동하고 말했던 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짧은 지식을 권위로 채우거나 필요하면 거짓말과 침소봉대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타협하면 절대로 안 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치웠다. '지식이 부족해서 일까. 아니면 정보를 잘못 알고 그러나.' 싶기도 했지만 진실을 알려줘도 모른척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잘못된 정보나 거짓, 침소봉대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사기'의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했으면 좋겠다. .. 타협할 수 없는 일을 이런 사기와 같은 행위로 말미암아 타협이 된다면 그건 큰 일이다.
오지랖이 넓다. 내 코가 석자인데. 간암이 재발하신 분은 의사 선생의 잘못된 정보로 담배를 피우시는 것이고, 나는 알면서도 살이 찌고 있다. 비만이 암에 좋지 않다는 것은 WHO나 미국 암협회 같은 전문기관의 자료를 통해 익히 알아보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탄수화물을 탐닉한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 즐거움, 유혹에 약한 마음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CDC(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비만(Overweight, Obesity)은 식도암, 유방암, 결장과 직장암, 자궁암, 쓸개암, 위암, 신장암, 간암, 난소암, 신장암, 갑상선암, 뇌암, 다발성 골수종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타협의 가격은 목숨인데,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될 일을 타협하는 나를 자각할 때마다 씁쓸해진다. '뭐 어차피 죽는 목숨이니... 맛있는 것도 못 먹고사는 건 너무하잖아.' 하면서도 항암 할 때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