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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05. 2021

분쟁, 갈등

  



아프리카에 관련된 위험한 소식 중 기억에 남는 건 르완다 내전과 아덴만에서 벌어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상선 선원 구출 작전이었다. 두 사건 모두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극적이었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하지만 먼 나라 이야기였고, ‘위험 지역은 피하는 게 상책이겠군’ 정도의 느낌이었다.     

 

서아프리카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바로 떠오른 게 르완다와 소말리아였다. 다행히 서아프리카는 이들 나라와는 먼 지역이었다. 프로젝트 대상국은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가나였다. 이들 나라는 축구와 초콜릿으로 알려졌다. 당시 우리나라엔 아프리카에 관련된 정보가 빈약했고, 개인적으로 정보를 찾아볼 생각이 없었다. 그냥,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서아프리카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 영어학원에서였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영어 실력을 높여야 하기에 주말마다 영어학원에 다녔다. 그런데 담당 미국인 선생님이 과거 미군 특수대원의 일원으로 서아프리카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그는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이라는 극악한 테러리스트들이 활개 치는 곳이니, 거기서 일하려면 가능하면 총을 소지하라고 충고했다. 더하여 서아프리카는 거센 지역으로, 사건 사고가 많으니 조심하라고도 했다. 깜짝 놀라 부랴부랴 해외 사이트를 뒤졌다. 서아프리카는 분쟁과 테러로 소문난 지역이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며칠 안돼, 해외원조에 경험 많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아프리카는 국제기구 직원들이 가장 꺼리는 지역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거칠고, 테러리스트가 횡행하며, 부족 간 갈등으로 인한 분쟁도 종종 벌어졌고, 치명적이 감염병의 발상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완전 초짜가 프로들도 꺼리는 지역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서아프리카가 녹녹지 않다는 것을 처음 체험한 나라는 부르키나파소였다. 부르키나파소는 국민소득이 대략 북한과 비슷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나라의 절반이 사하라사막 영향권에 들어 농사짓기엔 불리한 땅이 많았다. 이들이 주로 먹는 양식은 쌀로, 우리나라의 발전된 쌀 생산기술을 전수해주면 식량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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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는 테러리스트가 횡행하는 불안한 나라이자, 북한 만큼이나 가난한 나라다. 나는 부르키나파소 시골 마을로 들어가 프로젝트 진행 사항을 점검해야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여장을 풀 때만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SUV 차량을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저녁이 되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빨리 갔다 돌아와야 한다는 재촉 때문이었다. 창밖 너머 대로변에는 지붕 없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붕 대신 까만 비닐로 하늘을 가린 블록집이었다. 사하라 사막 영향권이라 비가 적게 와 저런 집이 가능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우기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칠 수도 있기에 사는 게 쉽지 않을 듯 보였다. 가난이 만들어낸 거처였다.   

  

지붕 없는 집들이 드문 드문해 지다가 황량한 벌판이 이어지는 지역에 도달했을 때쯤, 멀리서 먼지구름이 보였다. 그 먼지구름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이내 엔진 굉음을 요란히 울리는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사람들 머리엔 이슬람교도의 상징적인 모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어깨에는 자동소총이 가로매어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화관에서의 관람이 아닌 차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본 광경이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비현실 같은 현실에서 사고가 멈췄다.    

 

천만다행이었다. 테러리스트와 똑 닮은 오토바이 집단은 지역을 순찰하는 민병대였다. 그들이 떠난 후에 차차 정신이 들면서 오히려 마음은 불안해졌다. 민병대가 저렇게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다닌다면, 테러리스트는 어찌하고 다닐지가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허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슬람계 테러집단의 모습은 마냥 머릿속 상상으로만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2년 후,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하기로 한 날, 비행기에서 내려 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할 무렵, 머물기로 한 호텔 근처서 대규모의 테러가 발생했다. 백 명이 넘게 죽거나 다쳤다. 만약 출장을 연기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중간에 끼일 뻔했다. 천운이 따랐다.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에 얼굴이 나오는 유명인사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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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터였던 코트디부아르는 대략 10년 간 심한 내전이 있던 나라였다. 코코넛을 팔아 전쟁자금을 마련했다 하여, ‘피의 코코넛’이란 말까지 생겼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데, 대부분 상의 군인이었다. 그런데, 내전의 불씨가 완전히 진화되었냐? 하면 그건 아니란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는 무슬림 반군과 정부군이 휴전한 후 통합하는 과정으로 불안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코트디부아르 정부당국과 회의가 잡혀있는 날이었다. 다음 단계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거냐는 논의를 해야 했다. 아침 일찍 FAO 국가 사무소에 도착해, 회의를 대비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능한 한 빨리 이 나라라는 떠나라는 급박한 연락을 받았다. 무슨 일이냐 했더니,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크게 놀랐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비행장으로 가자며 행장을 꾸렸다.     

 

하지만, 일행 중 한국에서 온 전문가 한분이 비자 문제로 여권을 코트디부아르 외교부에 맡겨 놓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나이지리아로 가려면 그 여권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반군이 정부청사를 빙 둘러쌓고 있다고 하니, 여권을 찾는 게 불투명해 보였다. 당황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코트디부아르 당국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답신을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 연락이 왔다. 정부청사로 와서 여권을 받아가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군인들은 반란이 아닌 시위를 하는 것이라는 소식이 덧붙었다. 코트디부아르 외교부로 가보니, 중무장한 트럭과 군인들이 정부청사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의 눈초리는 우호적이지 않아 정말 시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봤던 시위와는 달랐다.    

    

코트디부아르 현지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오랜 내전 끝에 반란군이 정부군에 편입이 되었는데, 이들 사이에는 부족, 종교 그리고 연봉문제로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이번 시위는 겉으로 볼 땐 연봉의 차별에 기인한 거지만, 내면은 더 복잡한 게 있었다. 신문에는 2017년 1월 합의했던 연봉협상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군인들의 시위라고 보도됐다.     


아프리카에서의 분쟁은 아시아보다 잦은 듯싶다. 과거 식민지 시절에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한 후 편의대로 그은 국경선 안에 여러 부족이 강제로 같이 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잉태된 갈등이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고 들었다. 독립 후에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이 스며들어 부족 간의 갈등을 부풀려 놨다. 여기에 기독교와 이슬람 같은 종교도 얽혔다.  이런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면, 매사 조심해야 한다. 가능한 분쟁지역은 들어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갔다가는,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는 교훈을 체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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