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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06. 2021

테러, 납치, 범죄


호텔에 주차된 자동차의 모습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집중해서 보니 번호판이 검은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소위 자동차번호판 가림행위. 우리나라 자동차관리법 제5조 제5항에 따르면 1차 과태료 50만 원, 3차 이상 적발 시 250만 원까지 부과되는 범법행위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차가 태연하게 호텔에 주차되어 있는 걸까.      


“아 저 차요. 정부 고위 관료 차예요.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가리고 다닌답니다.”

“테러요?”

“예.”    


그의 말은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할 때, 미국인 영어 선생님의 조언을 불러들였다. 선생님은 전직이 미군 특수부대 소속 군인이었으며, 세계 분쟁지역이란 지역은 대부분 다 가본 사람이었다.


“미스터 윤은 국제기구로 가게 되면 어느 지역에서 일을 하지요?”

“아마 서 아프리카에서 주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나이지리아나 가나 같은 나라에서요.”

“나이지리아에 간다고요?”

“예.”

“보코하람이라고 알아요?”

“복코.. 요?”

“보코하람요. 악명 높은 테러집단이죠. 주 활동무대가 나이지리아인데, IS보다 더 지독한 테러집단이라는 평도 있더군요. 내 조언을 해드리겠는데, 권총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세요.”

“권총을... 요?”    


나이지리아로 출장 가기 전, FAO 동료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이지리아에 가면 권총을 휴대하라는 조언을 받았는데, 그럴 수 있을까요?”

“안 될걸요. 미스터 윤은 UN 시큐리티 직원이거나 평화유지군이 아니잖아요.”    


하긴, 권총을 들고 다녀야 뭣하겠나. 쏴본 적도 없고. 더하여 쏴본 친구들 말에 의하면 더럽게 안 맞는다고 하는데. 괜히 무겁고 위험하기나 하겠지. 차라리 돈 달라면 지갑을 통째로 주고, 가방에 눈독을 들이면 가방을 던져주고. 위험한 데는 가지 않으면 되지.     


호텔 객실에서 티브이를 켰다. 때맞추어 살집 있는 아나운서가 등장해서 폭탄테러 이야기를 읊어대고 있었다. 신경을 집중했다. 동북부 지역 어느 도시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났고, 민간인과 경찰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영어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르는 대목.     


다음날 만난 나이지리아 UN-FAO 직원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매사에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몇 년 전에 폭탄테러가 나서 10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는 말도 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눈동자에 필터가 끼인 듯 주변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투명한 햇살이 내리 쪼이는 길거리가 음산해 보였다. 거리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가 짐작되었다. 골목 어귀에서 어슬렁대는 경찰이 자동소총을 메고 다니는 이유도. 무장한 군인이 타고 있는 장갑차가 왜 필요한지도.   

 

며칠 후 한국대사관 직원들을 만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다른 나라에 비해 수월하지 않은 탓인 듯했다.


“윤선생님, 나이지리아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모으게 됩니다.”

“돈을 요? 어디 좋은 투자처라도.”

“하하하. 회사, 집, 회사, 집 밖에 할 수 없으니 돈 쓸데가 없어서요.”    


그는 도시 외곽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몇 달 전, 도시 외곽으로 나간 용감한 외교관 한 명이 순식간에 납치를 당했다며, 나이지리아는 납치가 생계형 범죄라고도 했다. 일단 돈이 될 것 같이 보이면 납치하고 보는 게 납치범들의 생리인 것 같다고도.  


무의식적으로 손이 앞으로 나가 잔을 움켜쥐었다. 잔에 들어 있는 맥주가 찰랑대고 가슴은 철렁댔다.. 내가 일 곳은 수도인 아부자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도시인데.    

  

나는 귀가 좋지 않아 비행기에서 내린 후, 귀 통증으로 인해 반나절은 멍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유전적인 거라 치료법은 달리 없다. 티 안 나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고문이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내린 후 다시 비행기를 태우는 것이다. 여기에 희망고문까지 곁들이면.   

   

“목적지까지 차로 이동할 겁니다.”

“확실히 차로 가는 거죠!”

“예”    


저녁에 전화가 왔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멍멍이 아이들.’ 전화기에서는 차량 대신 비행기로 이동한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납치범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희멀건 피부와 영양 좋은 몸을 가진 동양인. 돈 돼 보이는 사냥감이기에. 목적지인 아바칼리키시 외곽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후 차로 바꿔 탔다.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트럭과 자동소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검문하는 그들의 표정, 말,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대충 하는 모양새는 아녔다. 귀를 누르는 먹먹함이 가라앉고, 그 옆에서 두들겨대는 두통이 가시는 대신 시커먼 한기가 등을 타고 올라왔다. 이건 뭐지.. 검문소를 지나자 피터가 말문을 열었다.

    

“저 군인들은 검문을 하면서 차에 탄 사람이 이 지역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이 지역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어떻게?”

“차 안에 탄 사람들 얼굴과 행색을 살피는 거지. 부족마다 특징이 있어서 가려낼 수 있거든.”

“그래서?”

“부족 간 간혹 벌어지는 유혈충돌도 막고, 테러리스트들이 도시 내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고.”    



도시 초입에 이런 바리케이드를 쳐서 수상한 이의 진입을 차단하는 것은, 도시의 안녕을 위해 중 일이라고 해석되었다. 바꿔 말하면 바리케이드 밖은 위험지대란 거였다.  


2018년 10월. 나이지리아의 악명 높은 보코하람이 3명의 국제적십자 직원을 납치해 살해했다. 테러리스트의 납치는 돈보다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거에 목적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전직 특수부대 군이었던 영어 선생님이 다시금 떠올랐다. 왜 권총을 가지고 다니라는 지이해할 수 있었다.  지갑을 주고 가방도 줘도 테러리스트한테는 씨알도 안 먹힐 테니.     


우리나라에서도 납치에 대해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2019년 부르키나파소에서 납치된 후 구조된 사람, 2020년 가나 앞바다에서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사람. 아프리카에 가면 납치에 대해 조심하고 신경 쓰시기를.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동료 한 명의 얼굴이 상기된 채, 자기 나라 말로 혼자 투덜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느 놈이 내 노트북 하고 카메라를 가방에서 빼갔어요. 내가 미쳤지, 화물로 보내지 말고 기내 가방을 이용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항상 기내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보름이 넘는 출장도 기내 가방 한 개와 배낭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노하우가 쌓았다. 팁을 살짝 공개한 다면 우선 비닐장갑과 줄과 집게는 필수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저녁에 속옷과 양발을 빨아 널어 말릴 수 있는 이동용 세탁·탈수·건조기다. 구겨지지 않는 와이셔츠와 돌돌 말았다가 다시 펴도 깔끔한 양복. 겉보기에는 구두지만 사실 등산화나 다름없는 신발은 기본. 모두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애착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우리 중소기업 제품을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로 오기 전 누군가가 잔뜩 겁을 줬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는 도둑천국이라고. 그래서 가성비가 좋다는 제품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3년 동안, 이 제품이 버텨낼 줄은 몰랐다. 디자인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가끔, 기내 가방을 비행기 내부로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프리카 내륙 비행기로 갈아타면 비행기 크기가 급격히 작아지기 때문이었다. 이리되면 기내에 가방이 들어갈 자리가 부족해지고, 내 가방이 화물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다행히 그 대가는 소소했다. 치약, 비누, 면도기. 3년간 도둑맞은 물품이다. 면도기는 살짝 아프긴 했지만 노트북에 비하면 조족지혈. 기내 가방도 자물쇠로 꾹 눌러 잠갔기 때문이었다. 정말 중요한 건 배낭 깊숙이 넣어 두고 다니고.     


아프리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범죄는 사기였다. 국제 세미나나 교육을 개최할 때, 사기꾼들이 끼어들었다. 이를 테면 ‘콩고 민주공화국 총무부 소속 식량안보센터’ 란 명칭으로 참가를 신청했다. 국제기구에서 주는 보조금도 같이. 그들이 운영한다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하고, 실제 그 나라에 비슷한 이름이 기관이 있기도 했다. 전화를 해보면 누군가는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사전에 파악된 명단에 없는 단체라면 의심해야 한다. 철자 한 개라도 틀린 단체도 의심해야 한다. 더하여 경험 많은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다.      


이들에게 초청장과 비자 지원, 참가비 지원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떻게든 선진국으로 들어가서 남아있기를 고대하는 사람일 텐데. 그 외에 ‘축하합니다. 당신은 여차저차하여 1000만 불을 받게 되었습니다. 연락 주세요.’라는 메일을 간간이 받았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고 흥분하고. 쥐구멍에도 볕뜰 날 있다, 와 같은 말도 내뱉었다. 그런 나를 보고 동료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그런 메일 받아봤다.’라는 눈초리를 보내며. 과도한 친절과 로또 같은 행운을 제시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감초처럼 끼어드는 범죄는 아프리카라고 다를 바 없다,라고 생각하면 허술한 행동을 삼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시맨 같은 순진무구한 아프리카 사람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존재이다. 아프리카는 밤중에 나돌아 다니면, 나를 털어 가주세요, 란 뜻으로 해석되는 지역이 많다. 그러니 특정 국가로 가야 할 일이 있다면  나라에 대한 정보를 미리미리 파악해 둬야 한다.  


우리나라 외교부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행유의, 여행 자제, 철수 권고, 여행금지 등 단계를 나누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각국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이 제공하는 범죄 정보, 교통 정보 등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사이트를 참고한다. “Foreign Travel advice” (http://www.gov.uk/foreign-travel-advice)라는 사이트다. 우리나라와 굳이 비교하자면 큰 얼개는 비슷한 데,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단체 여행이라면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도 충분할 수 있지만, 업무나 자유여행으로 갈 일이 있다면 영국 사이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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