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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07. 2021

남남협력



이번 장부터 본격적인 일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간다. 해외원조라는 전문적이고, 어찌 보면 재미없을 내용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공적개발원조(ODA)와 연결되어 있다. 이 글에서  흥미 포인트가 있다면,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 제법 나온다는 점이다. 해외원조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맛본 게 팥 앙금이 들어간 찐빵이라면 , 여기 내용은 완두콩 앙금이 들어간 찐빵 맛일 것이다.


다른 글과 다를 거라는 첫 번째 이유는 국제기구의 정식 직원(프로젝트 관리자)으로 일하면서 겪은 기록이라는 점, 두 번째 이유는 중국과 일본에서 온 공무원들과 같이 일을 한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맡은 일 때문이다.


나는 ‘남남협력 프로젝트 관리자’였다. 그런데 남남협력이란 무엇일까? 해외원조와 관련된 과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 남남협력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 후로는 해외원조니 개발이니 하는 쪽에 별로 신경을 쓰고 살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로부터 ‘남남협력’을 하러 FAO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남남협력? 꽤나 올드한 작명이네’ 정도였다.


남남협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론이야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모호한 구석이 제법 된 탓이다. 남남협력의 이해를 돕고자 그 탄생과정을 소개하겠다.


20세기 중반 무렵부터 원조에 열중하던 선진국, 그리고 그 원조를 받아들이던 개발도상국은 곤혹스러운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돈을 엄청 들이부었는데, 결과는 도로아미타불. 밑 빠진 독에 열심히 물 붓기나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무엇인가 대안이 필요했다.


1970년대 말, 개발도상국끼리 서로 돕자는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었다. 수준 차이가 나는 선진국의 도움보다는 엇비슷한 수준의 개발도상국의 도움이 더 유용하다는 아이디어가 들어간 프로그램이었다. 먼저 개발도상국끼리 서로 기술을 교류하여 일정 수준까지 기술력을 올리고, 여기에 선진국의 도움을 더한다면? 아마도 현재 보다는 더 좋아지겠지?라고 생각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 프로젝트에 이름을 붙였다.  아마 작명가들이 세계지도를 펼치고 만들어낸 이름 같았다.


“여기 지도를 좀 바, 선진국은 지구 북반부에 대부분 몰려 있고, 개발도상국은 남반부에 몰려 있네.”

“아 그럼 개발도상국끼리의 협력이니까 남반부 남반부 협력이라고 하면 어떨까?”

“남반부 남반부가 뭐니, 그냥 남남협력으로 하지.”


남남협력은 South-South Cooperation을 직역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선진국이 좀 끼면 안 될까? 개발도상국끼리 서로 돕자고 해도, 자본이 있어야지 서로 돕는 거지. 선진국도 숟가락 한 개 올려서 낯도 내고. 그렇게 마련된 게 삼각협력이다. 영어로는 Triangular Cooperation이다.



나는 남남협력으로 시작하여 삼각협력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프로젝트 두 개를 한 개 아니라, 하다 보니 남남협력이 삼각협력으로 바뀐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설계했기에 남남협력으로 시작된 거였다. 그러나 아무리 국익을 위해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며 버틴다 해도 그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결국 2019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게 되었고, 내 프로젝트는 2018년에 이미 삼각협력으로 내용이 바뀌고 있었다. 우리 수준은 이미 선진국이었고, 개발도상국끼리 서로 돕고 협력하자는 남남협력은 우리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배움이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개고생이었다. 맞지도 않은 옷을 억지로 입으려다 포기하고 결국 수선하는 방법을 배워서 옷을 고쳐 입어야 된 상황이랄까. 내가 일을 맡기도 전에 프로젝트는 확정된 거였고, 나는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담당자가 된 것이니 어쩌겠나.


내가 한 일은 이론적만 따져 보자면 원조와는 거리가 있었다. Cooperation, 즉 협력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일, 그러니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원조와는 의미가 달랐다. 그러니까 이 글은 협력 프로젝트는 운영했던 사람의 글이다.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 운영은 원조사업처럼 했다. 우리는 선진국이었으니.


나는 일본이 하는 삼각협력 사업을 곁눈질했다. 일본은 선진국이니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말이 협력이지, 내용은 원조군.’ 그래서 흉내를 내봤다. 중국 프로젝트도 곁눈질했다. 중국은 비록 개도국이지만 남남협력의 규모나 지원 면에서 꽤나 공을 들이고 있었다. ‘여긴 협력 같네.’ 그렇게 3년간 양쪽을 보고, 양쪽을 듣고, 양쪽을 끼웃거렸다. 입에선 이익을 주고받는 협력사업을 말하고, 손으로는 원조 계획을 자판기로 쳐 넣고.


마지막은 농업에 관련된, 그러니까 식량에 대한 일을 한 점이다. 인구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라에서 일을 했다. 농촌이 안되면 나라가 바로 기우뚱해지는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나의 글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21세기가 아닌 20세기 관점에서 봐야 이해가 수월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농림부는  21세기 대한민국 농림부가 아닌, 1970년대 혼식을 하자며 온 나라 학생들의 도시락을 거무튀튀한 색으로 만들어 놓은 농림부를 생각해야 한다.


 3년이 지나면서 소소했던 역마살이 거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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