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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08. 2021

중국 2-1


“이런 교육시설을 지원해준 중국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중국이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식구가 먹고 살길이 열리고요. 감사해요 중국.”

“중국이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위해 만들어 논 방송 플랫폼은 아프리카의 발전을 이끄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랑해요 중국”


한순간이지만 얼이 나갔다. 이런 내용이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SF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스타워즈 작가도 쓰지 못할 내용 같았다. CCTV Africa. 난생처음 보는 티브이 프로에는 각양각색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더하여 백인, 흑인, 중동인, 중국인으로 구성된 리포터들이 각자의 역할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중국이 그렇게 대단한 거야? 아프리카 사람들한테 중국이 그렇게 고마운 거야? 그래서 사랑까지 한다고?


CCTV africa은 한 시간 전에야 알게 된 것이었다. 아프리카를 미리 알고 싶어 구글 검색을 시도하자, BBC, CNN 틈바구니에 CCTV가 보였다. CCTV는 중국 방송인 거 같은데 하며 클릭을 한 게 시작이었다. 한 시간쯤 보고 나자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이잖아!’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단박에 추억의 개그 코너인 봉숭아학당이 떠올랐다. 이어 내 배꼽을 홀딱 빼놓았던 연변총각 강성범 씨가 소환되었다.


“너의 연변에는 거미도 많니?”

“잘 아디시 안슴니까. 저의 연변에선 거미 거미 아주 징글들 함네다. 한 30년 묵은 거미는 자기 힘으로 거미줄도 못 침니다. 지가 한번 쳐볼려고 까불다간 지 실에 지가 묵여서리 한 삼분의 이는 죽습네다. 한 50년 쯤 묵은 거미가 자기 집을 짓는 거지 그리고 쓸모도 좀 있습네다. 고저 고런건 애들이 하나씩 쥐고서 요요로 가지고 놉니다. 고저 떤지면 기어올라오고 떤지면 기어올라오고. 이거 왔다임다. 거미가 한 200년쯤 묵으면 이제는 밧줄같은 걸 뿜어냄네다. 고저 그런건 대강 역어가지고서리 나무 양 끝에다 묶어가지고 그물 침대를 만들어 씀니다. 한번 거기 누워 잘라치면 떨어질 일이 없슴네다. 등가죽에 쩍쩍 붙슴네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거미줄 침대는 가구가 아님니다. 과학임네다....”


[크큭티비] 봉숭아학당 : 103회 저희 연변에서는 모든지 많습니다! #강성범 #연변총각 #가을 - YouTube


한 달 후 국제기구에 입성했다. 거기에선 CCTV africa 만큼이나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농무성에서 온 공무원, 일본 농림수산성에서 온 공무원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모두 남남협력 프로젝트 관리자였고. 내가 끼니 동북아시아 삼국의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인도, 온두라스, 미국, 프랑스, 가나, 앙골라 출신 동료들이 삼국의 행태를 지켜보는 각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은 흥미롭겠다. 그럼 나는? 졸지에 국가대표가 된 기분. 계산기를 두들길 것도 없었다. 잘 못 왔다.


 첫인사를 나누던 중국 공무원이 연변총각 같은 말을 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고, 아프리카도 이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웬만한 건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니, 아프리카 일을 하면서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동물의 왕국에서 무슨 중국이, 나는 속으로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역시 중국은 대단한 나라네요.”


그때 나는 적어도 중국보다는 더 잘하겠구나, 란 생각을 하였고 중간은 가겠다는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일주일도 안되어 이는 큰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 만만했다. 중국의 입장을 적절하고 강하게 대변했다. 프로젝트는 언제나 중국이 정한 틀 안에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일이 능숙하여, 국제기구 직원의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느낌도 있었다. 적어도 사람은 진국이었다. 중국 공무원 중 에이스를 골라 보낸 것 같았다. 나는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종의 뺑뺑이로 온 거고.


그런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아프리카 출장길에 올랐다.  


가나 수도 아크라에는 멋들어진 신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아프리카가 발전하는 모습이었다. 잠자코 바깥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피터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저 건물들 대부분이 중국이 짓는 거야.”

“중국?”

“그렇지. 이는 가나뿐만 아니야 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중국 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거지, 거기다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기도 하고.”

“그으래?”

“응, 건물을 지을 때 중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거든, 그들 중 상당수가 귀국하지 않고 아프리카에 눌어붙어. 현지 여인과 결혼도 하고 말이야. 이러다 아프리카가 작은 중국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나이지리아 아부자 공항. 신청사에서는 더 놀랐다.   


“미스터 윤, 저길 보세요. 건물이 완공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내장재 공사가 안 끝난 거요. 지어 줄려면 다 지어 줄 거지 외곽만 지어주고.”

“누가 공항 건물을 지어주나 보죠?”

“모르셨어요? 중국이 지어주고 있잖아요. 아프리카 많은 나라의 공항들이 중국의 도움으로 짓고 있죠. 그리고 공항뿐 아니라 다양한 인프라 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왜? 무엇 때문에?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아프리카의 관문이라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디스아바바 공항이 중국에 있는 공항인 걸로 잠시 착각했다.  웬 횡재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술을 좋아한 탓이었다. 공항에는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술과 담배가 즐비했다. 중국식당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고. 에티오피아 기념품 파는 가게는 오히려 초라할 지경. 짓 다만 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렇게 지어놓은 것 같았다.


아디스아바바 공항은 중국의 자본과 입김이 얼마나 강하게 아프리카에서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첫 출장길에서 겪어 본바 CCTV Africa에 나온 내용은 사실에 입각한 내용에 약간의 각색을 한 수준 같았다.  중국 공무원의 호언이 정말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설프게 일하다간 중국한테도 일본한테도 떠밀려 꼴찌가 될 지도 몰랐다.  ‘한국은 프로젝트 관리가 개판 야.’ 란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공항이나 건물 같은 시설 말고도 아프리카에서의 중국은 대단했다.  어느 나라에 가건 중국인이 있었고, 중국 음식점이 보였다.  부지런하고, 근성 있는 중국인들. 그렇기에 출장이 끝난 이후 중국 공무원이 관리하고 있는 남남협력 프로젝트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내가 몰랐던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알면 크게 도움될 것이 있을 듯도 싶었다. 그걸 알아야 아프리카에서 제대로 일을 하고, 싱글싱글 웃고 다니는 저 중국 공무원과 경쟁이란 걸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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