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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11. 2021

중국 2-2

우리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사람이  수백, 수천 킬로미터 내에 한 명도 없다면, 낯선 이들로 가득 차 있는 곳에 혼자 동떨어져 몇 날을 보낸다면 어떨까.  나는 종종 혼자 술을 마셨다.  출장 말미쯤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거나, 대범한 척하거나,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일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기 일수였다. 이방인들과 술 마시고 실수할 수는 없으니 혼자 술을 마시면서 상상을 펼치거나, 공상을 하거나, 우리말로 투덜대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누가 옆에서 봤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첫 출장, 끄트머리 날 즈음, 객실로 여러 캔의 맥주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곤 맥주를 한 캔 한 캔 점령해나갔다. 처음에는 조용히, 그러다 한 순간 알코올이 뇌 기능을 폭주시켰다. 피터가 말한, '이러다가 아프리카가 작은 중국이 되겠다.'라는 말이 단초였다. 이곳저곳에서 주워 들 내용이 쪼개졌다 모였다 하며 형체를 만들었다. 논리회로가 버벅대고 상상 회로는 날 뛰었다. 혼잣말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인구가 12억 쯤 되고, 중국 인구가 14억쯤 된다지 아마도? 그럼 중국 인구가 더 많네. 요즘 중국이 어떨까. 음... 한때 10%가 넘던 경제성장률이 6% 이하로 주저앉았다고 하니. 실업자 수는 확 늘어났겠구먼. 성비 불균형으로 결혼 못한 총각들이 지천이라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간단한 산식이 떠올랐다. 높은 실업률 x 늘어나는 노총각 = 골치 꽤나 아플 중국 정부. 그런 중국 정부의 레이더에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걸려들었다. 내가 중국 정부의 정책결정자라면 어떻게 할까? 첫 번째 일자리를 아프리카에 마련한다. 두 번째 총각을 보낸다. 세 번째 거기서 눌어붙게 하고 결혼을 유도한다.  일석 삼조!  일자리 대책, 인구 대책, 결혼 대책을 한방에!     


그렇다면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일이? 아마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젊은 중국 남자들. 부지런하고 수완도 좋은 사람들이 현지 아프리카 여자와 결혼하는 걸 주저하지도 않을 것 같고. 워낙 경제적인 면에서 강한 사람들이니까. 아프리카 경제를 좌우하는 힘으로 클 수 있겠다. 생각보다 많은 중국인의 혈통이 아프리카에서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그럼 실제로 아프리카에 중국인이 얼마나 들어올수 있을까.


일대일로 정책이니, 남남협력 정책이니 하면서 중국인이 건물이나 인프라를 짓는 노동자로 아프리카에 와서 눌러앉는 방식이라면, 1억 명 정도의 중국 사람이 아프리카에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케냐의 나이로비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이미 중국인이란 소리도 있고 말이지.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하면서 무분별한 투자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 투자가 중국인에게 새 삶의 기회를 주는 투자라면? 얼마전 비행기에 꽉차게 들어 앉아 있던, 중국인들이 떠올랐다. 설픈 기대와 긴장을 표정에 그리고는 잠자코 자리에 앉아있었던 사람들. 머리가 엉클어졌다.


여하튼 피터의 예언이 맞을 수도 있겠다. 아프리카 중국인 2세가 활동을 할 무렵이면 작은 중국처럼 변화한 아프리카를 볼 수 있게 될지도... 그럼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혼술이 만들어낸 상상과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맴돌았다. 첫 출장 후 돌아와 이 상상이 얼마만큼 들어맞는지와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와중에 중국인 전문가 B 씨를 만났다.


“중국은 공무원이 문제예요. 전문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을 사업현장에 데려다 놓으니 기가 막힌 거죠.”

“그래요?”

“그렇다니까요. 해외사업이라고는 해보지도 못한 관료, 해외사업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만 아는 사람이 꾸역꾸역 들어와요. 그들을 가르치는 일만 해도 장난이 아니라고요.”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렇다면 FAO에서 일하는 중국 공무원은 왜 저렇게 잘하지? 더하여 1년 정도 나보다 늦게 들어온 다른 중국 공무원 J 씨는 B 씨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J 씨는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능숙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B 씨의 말하곤 너무나 동떨어졌다.  B 씨는 ‘전문가’의 수준을 어디에 맞춘 걸까.


새로 들어온 중국 공무원 J 씨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오자마자 그리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정말 알고 싶다는 눈초리를 던지면서. 처음 J 씨는 뭔 말인가 싶어 약간 당황한 듯하다 대꾸했다. 자신은 중국에 있을 때 FAO 출신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FAO에 근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 농무성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국제협력 파트에서 일을 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일했다고도 했다. 그의 말을 통해, 중국이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인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J 씨는 아프리카 상당수의 나라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었으며, 내가 꺼려하는 나이지리아조차도 일할 만한 나라라고 평했다. 하지만 J씨도 꺼려하는 나라가 있었다. 10년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아 졌다면서, 이 나라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에 보고한 듯 보였다. 아마도, 투자에 대해 신중을 기해라든지. 뭐 그런 거겠지.


다른 질문 한 개를 더했다.  식량 개발 같은 해외원조를 총괄하는 부처가 어디냐는 거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농업 파트는 농무성이 총괄하지 누가 하냐?’ 이번은 내가 당황스러웠다. 질문이 잘못된 듯싶었다. 나는 한국은 국무조정실에서 총괄하고, 외교부와 기재부가 깊게 관여한다고 말해줬다.  


J 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도 그런 조직이 있다고 했다. 상무부. 기본적으로 중국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선진국 같이 ‘원조’ 개념보다는 ‘협력’ 개념이 더 강하다.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상무부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협력 정책을 총괄하지만. 파트별, 그러니까 농업이나 농촌 파트는 농무성이 총괄이라면서 전문성이 높은 부처에서 당연히 총괄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대충 둘러댔다.  중국 공무원 시스템은 우리나라 보단 미국이나 유럽 공무원 시스템에 더 가까웠다. 우리 공무원 시스템은 2년 정도면 자리를 옮기는 순환보직이다.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와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외교부가 원조정책을 나누고, 관계부처는 보조하는 모양새로 해외원조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 일을 하는 내내, 중국이나 일본, 국제기구의 전문가 시스템이 부러웠다. 하나를 알아도 깊게 알고, 안 되는 것에 대하여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그런데 이런 전문가 시스템이 과연 정답인가 하는 의구심이 코로나 19로부터 왔다. 공무원을 전문가로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선진국 방역이 K 방역보다 못한 모습을 보인 탓이다. 전문가 시스템이라고 만병통치약 같은 건 아닌 듯싶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현장에 돌아다니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바, 우리나라의 공무원 시스템으로는 중국이나 일본 공무원에 대적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몇 달 앞두고 탄자니아에 방문했다. 호텔로 가는 길, 택시 운전사에게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의 반응은 ‘고맙다’였다. ‘사랑한다’까지는 아니었어도 자신들에게 일자리를 준 중국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건 분명한 듯싶었다.  중국을 바라보며 연변총각을 떠올리는 것은 20년 전 이야기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하는 시기. 중국도 두 번은 변했다. 크게 약진했다.


아프리카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첫 출장 때 들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수는 없었다. 눈앞에 뚝뚝 떨어지는 숙제를 해결하기에도 바쁜 탓이었다. 누군가 내가 고민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겠지. 아니면 세월이 알려주거나.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놀라게 했던, 그리고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던  CCTV Africa를 오랜만에 찾았다. 그 사이에 CCTV Africa는 CGTN(China Global Television Network) Africa 코너로 진화했다.  CGTN의 앵커로 아프리카 여성이 등장한 동영상을 보았다. 대단해 보였다.  우리도 KBS Africa 같은 방송이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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