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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03. 2021

질병

아프리카에서 가장 조심해야 될 부분을 꼽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면, 주저 없이 질병이라 답하겠다. 도시지역은 그나마 덜하지만, 시골로 들어갈수록 위생 상태가 열악해지고, 지역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전염병도 존재한다. 긴장하고 조심하면 피해 갈 수 있기에, 잠깐의 방문이라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계속 일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인 이상 항상 긴장 상태에서 조심하며 일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마음이 풀어질 때가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치명적인 전염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아프리카 현장에서 베테랑처럼 보이던 사람이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는 이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 보지 않은 나에게 첫 아프리카 출장은 심신을 긴장으로 충만하게 했다. 특히 에볼라, 에이즈, 수면병, 말라리아. 아프리카는 무섭고도 지독한 감염병이 지천으로 만연된 지역처럼 보였기에 더욱 그랬다. 출장을 보름 정도 앞두고 메디컬 서비스(Medical Service)에 찾았다. 두려운 감염병을 피할 수 있는 예방주사를 맞고, 현장에서 조심할 사항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주사를 맞는 것은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된 후나 피하고 싶은 일 중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 특히나 한국에서 듣은 바 무려 4종류의 주사를 맞아야 된다고 하니, 막상 주사실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엔 아프리카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주사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예고된 시간이 다가오자 끌려 들어가는 기분으로 진찰실 방 안으로 들어섰다.      


갈색 눈의 간호사가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편안한 표정으로 내 의료기록을 꼼꼼하게 살피더니 일상적인 말투로 여섯 종류의 예방주사를 권했다. 긴장한 상태로 영어로 대화했기에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녀는 재차 확인해 주었다. Six shot. 깜짝 놀랐다. 4 종류도 맞기 싫은데,  6종류의 주사라니.      


가능한 맞는 주사를 줄이고 싶었다. 왜 6 종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향해 있던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려 보여줬다. 모니터 화면에는 내가 일할 지역인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가나에서 걸릴 수 있는 감염병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설명해 주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말라리아나 황열 같은 질병 이외에는 익숙지 않은 의학용어인지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걸리면 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은 증폭됐다. 그녀는 동아프리카 지역도 보여줬다. 만약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다른 주사도 추가해야 된다고 했다. 나는 다른 지역에서 일할 일 없을 거라 빠르게 대꾸했다. 이때 만해도 동아프리카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다.    

  

다음 질문은 2회로 나누어 맞을 거냐 아니면 한 번으로 끝낼 거냐는 선택형이었다. 다시 이곳으로 오긴 싫었다. 한 번에 끝내는 것을 택했고, 일주일간 몸살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예방주사는 호락호락하게 볼 게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베테랑이라는 직원도 가끔 병에 걸려서 와요. 심하면 사망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세요. 특히 물을 조심하고, 얼음은 먹지 않는 게 좋아요.”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한 묶음의 설사약, 해열·두통약, 말라리아 약, 벌레 기피제, 물 소독약 등을 챙겨 주었다. 오지에서 응급조치에 필요한 약이었다. 만약 감염병이 걸리면 신속히 큰 병원에 가는 게 최선이라고는 말을 덧붙였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신속라면 얼마나 신속한 것일까요’라고 질문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참았다. 답이야 뻔할 것이고 괜히 불안감만 더 증폭될 답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메디컬 서비스를 나오면서 의문이 생겼다. 주사를 6종류나 맞은 거에 대한 뒤끝일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나라는 4 종류면 충분하고, 여기는 6 종류도 충분하지 않은 듯 말하는 걸까. 시간이 흐른 후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모호하게나마 정했다. 우리나라의 감염병 예방체계는 아직 덜 발달되었고, 기본적인 예방을 해줄 터이니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해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느 나라를 방문하건 알아서 해당국의 질병을 파악하여 알아두었다. 특히 미국의 질병관리 예방 센터 (Centers for Dec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정보가 유용했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로 여행을 가게 되면 모든 여행객은 홍역, 수두,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독감 (인플루엔자), 홍역-볼거리-풍진 (MMR), 소아마비 백신을 맞는 것을 권했다. 더하여 가급적이면 장티푸스, A형 간염 주사도 권한다. 그리고 말라리아 약을 복용해야 된다. 탄자니아에서도 특정 지역을 방문할 때는 공수병, B형 간염, 황열 등의 백신을 접종하는 게 좋다.  의사도 여행객도 이 정보를 토대로 예방접종을 하는 데 도움 받을 수 있으며, 특정 지역은 피해 갈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가장 고역스러웠던 건 말라리아약이었다. 말라리아는 주사 한방에 예방되는 감염병이 아닌 탓이다. 말라리아를 예방하려면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간에 무리 가는 그런 일을 반복해야 했다.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할 확률보다 간이 나빠져 죽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고 안 먹자니 말라리아에 걸릴 것 같아 겁났다. 그러던 차에 일본 동료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나는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아요. 대신 그 나라 약국에서 말라리아약을 사 오지요. 말라리아는 변이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 파는 약이 예방약이자 치료제거든요. 혹시 말라리아에 걸리면 그 약으로 치료하면 됩니다. 귀찮게 매번 챙겨 먹는 것도 그렇고, 건강에 좋을 리도 없고요.’ 아프리카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그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아프리카 건기에는 몇 달간 비가 오지 않는다. 물이 없으면 당연히 모기는 없을 터였다.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가 없으면 말라리아에 걸릴 가능성은 제로다. 하지만 강가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챙겨봤어야 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어떻게 잘 되겠지. 지금까지 처럼.    

  

말라리아약을 먹지 않고, 벌레 기피제도 바르지 않은 첫날밤. 숙소에 있는 야외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모기에 물린 날이자, 말라리아에 걸린 날이었다. 말라리아를 신속하게 진단하는 간이 키트가 있다는 사실도, 말라리아 예방약이 치료제란 사실도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가장 주의를 준 건 배탈 설사였다. 자칫하다간 식중독과 심한 탈수로 인하여 큰 곤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출장 중에는 밀봉된 물통에 있는 생수만 마시고, 컵에 따라주는 물은 절대로 안 마셨는데요. 얼음을 깜빡했지 뭐예요. 그날은 꽤 무더운 날이었죠. 현장에 나가 일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에, 덥다면서 현지인들이 노상에 있는 판매대에 저를 데리고 간 거예요. 과자와 얼음이 가득한 음료를 시켰어요. 다들 먹는데, 혼자 안 먹을 수 있나요. 시원한 음료 한잔 마셨다가 그날 밤부터 삼일은 반쯤 죽었죠.”   

       

이런 경험담까지 들었기에, 아프리카 출장길에서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조심한 게 물과 얼음이었다. 하지만 의심이 가는 물은 피할 수 있지만, 얼음은 쉽지 않았다. 더위 때문이었다. 서아프리카의 별미 중 하나는 차갑게 식힌 생강 레모네이드다. 생강 레모네이드 한잔이면 더위에 찌든 피로감이 쏙 빠진다. 그런데 간혹 얼음 동동 생강레모네이드를 권할 때가 있었다. 어느 누가 이런 더위에, 얼음 동동 자태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마시고 나면 유혹에 굴복당함에 대한 후회와 걱정이 밀려왔지만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소화기관이 튼튼했던 건지 배탈 설사 한번 없이 잘 지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새삼스레 관찰하게 된 약도 있다. 기생충 약. 우리나라는 한 번에 기생충을 모조리 박멸한다는 약이 있는데, 유럽에는 그런 게 없었다. 아프리카 출장을 마치고 만약을 대비해 기생충약을 사러 약국에 찾아갔다. 약사는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왔다니까. 이름도 알 수 없는 기생충약 6알을 권했다. 한국은 한 알에 기생충을 싹 박멸하는 약이 있는데, 이탈리아는 왜 6알이나 먹어야 하냐고 물으니, 아프리카는 독한 기생충이 있으니 약을 강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기생충 종류를 나열했다. 영어로 나열되는 기생충.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종류도 많았고 듣는 것만도 소름이 돋았다. 다양한 기생충이 존재할 수 있는 대륙이 아프리카. 약 한 알에 기생충을 싹 다 박멸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감염병이나 기생충을 조심해야 할 나라는 아프리카 대륙 국가뿐만은 아니다. 10여 년 전 인도에 갔을 때도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개도국에 여행을 다니거나, 일할 때 우리나라에서 깊이 있는 관련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건 언제나 아쉬웠다. 그래서 미국의 CDC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보게 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도국에 여행하거나 일하게 될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CDC 하고 협약을 맺어 한글 번역판을 제공하면 안 될까. 병난 다음 치료하는 것보다, 미리미리 예방하는 게 상책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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