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Jan 02. 2021

종교

종교와 관련된 생각은 가능한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한다. 간절하고 확고한 믿음을 비판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종교에 대해 말문을 연건, 아프리카에서 일하려면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해가 부족하면, 선입관으로 가득 찬 시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그러다 보면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접했던 아프리카 종교는 물음표에 가까웠다. 외신 발 뉴스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크게 도움 되지 않았다. 그나마 타잔이나 부시맨을 통해 바라본 아프리카 종교는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에서 한 뼘 차이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아프리카엔 다양한 종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종교(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했다. 처음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이 사전지식이 없었기에 당혹해했고, 멀쩡한 사람을 오해하기도 했다. 


첫 번째 알아두어야 할 종교는 전통 신앙(종교)다. 고대부터 치열한 경쟁 관계 속에서 생존해 온 3,000여 개의 부족과 운명을 같이한 믿음이다. 이 전통 신앙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교육 기회가 적은 시골 부족의 주민들에겐 그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처음에는 잘 몰랐기에 아프리카 현지인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기도 했고, 오해도 있었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방문했을 때, 현지 책방에서 서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구했다. 가나 출신 역사학자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서아프리카 역사를 정리한 귀한 책이다. 그 내용에는 아프리카 토속 신앙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과가 끝난 후 숙소에서 책을 읽다 깜짝 놀랐다. 익숙한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서아프리카 부족은 내세와 윤회를 믿고 있었다. 신과 현세의 중간에 윤회를 관장하는 중간계가 있다고 한다. 사람은 죽으면 이 중간계로 돌아갔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현세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 윤회의 선순환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현세에서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악령이 되어 구천을 떠돌거나, 미물로 환생한다. 그러니 신의 뜻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그 신의 뜻 중 하나가 자손을 낳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아프리카인에게 산아제한을 하고 있다. 


어떤 부족은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분리되며, 육신이 부활한다고 믿다. 이 부분은 이집트 고대 종교로 부터의 영향도 있어 보였다. 아프리카 토속신앙을 이해해 가면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우리나라와 서아프리카의 거리는 교통이 발달한 요즘도 쉽사리 닿기 어려운데, 그 거리가 무색할 만큼, 우리 토속 신앙에 닮은 점이 많았다. 무지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신을 바라보는 눈은 세상 어디고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안도감과 자신감이 생겼다. ‘피부색과 문화는 다르지만 사고체계의 근본은 우리와 별차이 없다.’ 싶었다.  


아프리카 토속신앙과 관련된 이야기가 영화에 캐스팅된 경우가 있었다. 바로 ‘좀비’였다. ‘좀비’를 탄생시킨 종교는 미국 남부지역에 퍼져있다는 ‘부두교’. 그런데 이 부두교는 서아프리카 ‘보도교’가 뿌리다. 노예로 잡혀간 서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퍼트린 무속 신앙이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오래전 주술과 약물의 힘으로 사람을 가사상태로 만들어 부렸다고 하는데, 이게 좀비의 기원이 됐다. 


아프리카 전통 신앙은 삶 깊숙이 침투해 있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바깥으로 비치는 모양과 실제 그 속이 다를 수 있다. 국제기구 동료들 중에는 아프리카인은 전통 신앙을 바탕으로 기독교, 이슬람 같은 외래 종교가 덧 써져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전통신앙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 사고체계를 이해하는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도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집어볼 부분이 있다. 종교를 기록하는 칸에는 버젓이 **이라 기록한 분들 중 용하다는 점집을 찾거나 액을 막기 위해 굿판을 벌이는 분들이 적지 않다. 새해에 토정비결을 보는 건 어떠한가. 그저 재미로 하는 거라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 본질은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우리보다 좀 더 심하다 보면 될 것 같다. 


두 번째는 이슬람교, 선입관에 기인한 다소 두려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종교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언론이나 영화에서 조명한 과격한 이슬람 테러단체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IS의 잔인한 행태가 생생하게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러니 내 머릿속에 그려진 이슬람은 과격하고,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종교였다.



주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세네갈 등 국가엔 이슬람 신도들이 많았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아프리카에 무슨 무슬림이 이렇게 많아? 중동도 아닌데.’ 하고 말이다. 무슬림이 대부분이라는 국가로 첫 출장을 갔을 때는 두려웠다.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계 과격 테러단체가 대낮에도 총질을 하고, 부르키나파소도 연중행사처럼 테러가 발생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하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막상 무슬림과 만나 식사를 같이 하게 되면서 두려움은 옅어지고 종교적이라고 할지, 문화적이라고 할지 구분이 모호한 충격과 혼란이 대신 자리를 잡았다.


이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세계 어디를 가나, 친교를 쌓는데 감초 같은 스토리가 가족에 대한 부분이다. 먼저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소개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무슬림 현지인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두 번째 부인은요?” 순간 당황했다. “두 번째 부인이라니요?”


무슬림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고 한다. 물론 1명의 아내만 둘 수도 있지만, 이례적이란다. 어느 정도 능력자라면 4명의 아내를, 능력이 없다면 홀아비가 팔자로 정해진 듯 보였다. 같이 식사를 하던 이들의 얼굴엔 아내가 한 명인 나 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말투도 약간 달라진 듯싶었다. 말투에 뭍은 느낌은 “아내가 한 명?”이었다.


한 번은 무슬림 현지인 집에 초대를 받아 응한 적이 있었다. 여성 세 분이 음식을 조리하고 날랐다. 모두 초대한 분의 아내라고 했다. 놀라지 말아야 할 상황인데도 깜짝 놀랐다. “저 여자분들이 다 부인?” 우리나라에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근처 경찰서에 가서 고발해야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고민이 찰나적으로 머릿속에 떴다 사라졌다.


이들 무슬림과 같이 웃고 떠들고, 숙식을 하며 아프리카 시골을 누볐다. 무슬림 중에도 나일론 신자가 있었고, 평화주의자도 보았다. 과격한 느낌의 신자도 있겠지만 만난 적은 없었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슬람교.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 이외엔 아주 크게 다른 점이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그들 역시 종교에 대한 말을 꺼내진 않았다. 내가 종교가 있다고 하니 굳이 무슬림을 전도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무슬림 중엔 티브이나 영화에서 각인된, 무자비하고 극렬한 무슬림에 대한 이미지는 없었다. 


그러나 과격한 무슬림 무장세력은 분명 존재하는 거였고, 테러리스트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 번은 우리나라에 일이 있어 출장을 미뤘는데, 딱 그 나라에 도착하기로 계획한 그날, 묵기로 한 호텔 근처서 테러가 발생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테러리스트와 정부군의 시가전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될 뻔했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하거나 말이다.


세 번째는 기독교다. 같이 일한 사람들 중엔 기독교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몇 있었다. 피터, 아우구스틴, 폴. 프란체스코. 그런데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무슬림보다 더 평화롭거나 착한 건 아닌 듯싶었다. 종교가 다를 뿐.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아프리카 일을 하는 초반에 곤혹스럽게 한 부분이 있었다. 아프리카 기독교인 중엔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나이가 비슷해 친분이 두터웠던 P씨도 아내가 2명은 넘는 듯 보였다. 기독교인이 여러 명의 여자를 아내로 둔다? 의아한 일이었다. 


면전에서 비난할 용기는 없기에 속으로 비난했다. ‘아니, 기독교인이면 교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1부 1 처제를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믿는 것 다르고 행하는 것 다른 인간이네?’ 믿지 못할 사람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아프리카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의 노예상인과 결탁한 왕에 의해 수많은 부족의 남자들이 노예로 붙들려갔다. 부족의 입장에선 남자의 씨가 말라 부족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지경에 처한 것이었다. 종족의 생존을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여러 여자가 한 남자를 노예 사냥꾼으로부터 피신시키고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아야 했다. 그 남자가 잡혀가면 그 남자를 수발했던 여인들은 다른 남자에게로 갔다. 생존을 위한 선택 었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이 생존전략은 노예제가 사라진 지금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저 놈은 기독교인이라면서 아내가 다섯 명이야. 나쁜 **네.’ 하고 마냥 욕할 수 있을까. 


시골로 출장을 다니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현지인이나 아프리카 출신 동료들에게 듣게 된다.  그중 하나가 내전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내전의 양상은 잘 사는 기독교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무슬림과의 충돌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 내면에는 부족이 있다. 서로 다른 부족이 종교가 다르고, 여기에 빈부 차이까지 덧대어지면서 갈등이 극으로 치달린 것이다. 아프리카 내전의 속내는 복잡했다.  


전통 신앙과 관련된 괴담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부족장이 사후세계에서도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서, 노예로 쓸만한 사람을 미리 죽여 사후의 세계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순장이다. 실제로 그런 일을 본 것 마냥 표정을 짓고 목소리를 쭈욱 깔면서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사람들. ‘그러니 이번 출장길에는 조심해야 돼요. ** 부족이 그런다는 소문이 있으니까요.’ 내가 진짜예요? 하면 자기들끼리 낄낄댔다.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는 어디고 있고, 어설픈 외국인을 놀려먹기엔 좋은 소재다. 이때는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나 한 마음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중요한 건 출신 부족이고, 저변에 깔린 토속신앙일 수도 있다. 


지금은 아프리카 사람을 대할 때 종교적 색채는 지운다. 사람 됨됨이가 훨씬 중요하고 부족의 평판이 더 의미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과거로의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