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Dec 30. 2020

과거로의 여행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종종 들었다. 그리먼 과거가 아닌, 1970년, 1980년대 어디쯤이었다.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났고, 특히 시골 출신인 분이 아프리카에서 일하게 된다면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거라고 본다.   

   

과거로의 첫걸음은 공항에서부터였다. 80년대 김포공항을 연상시키는 공항건물과 관제탑, 그 속에서 큰 짐 지고 입출국을 하는 현지인들. 시끌벅쩍했다. 비행기 타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에 우르르 따라 나온 가족들. 오래전 경험했던 광경이었다. 80년대 초였을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삼촌을 배웅하러 김포공항이란 데를 처음 가봤다. 말 그대로 온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갔었다. 회색의 웅장하고 간지 나는 공항건물, 공항에 왔다는 자체만으로 한 단계 신분이 상승한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비행기가 굉음을 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 엄청났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으슥 거리며 자랑했었다. ‘나 김포공항에 가서 비행기 봤다.’     


아프리카의 공항의 정경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다. 이국땅에서의 혼란스러움이 과거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마음이 진정되며 안도감이 들었다. ‘예전 생각하면서 일하면 크게 어려움이 없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억을 간직한 채, 과거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미 겪었던 일이라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 게 부지기수였다.     

코트디부아르에 처음 들렸을 때의 일이다. 아담하게 지어진 시내 호텔에 도착해 샤워를 할 요량으로 수돗물을 틀었다. 한순간 놀랐다. 처음 몇 분간은 흙탕물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한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호텔에서 흙탕물이 나올 줄을 생각도 못했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물 관리가 형편없는 비위생적인 나라’에 와 있는 것이었다. 찝찝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친 후, 가져간 500밀리 플라스틱 병에 수돗물을 받은 다음 물소독약을 넣었다. 양치질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 고향은 충청도 시골이었다. 60세를 넘기신 어르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단명하는 마을이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은 원래 환갑을 넘기기 어려우니까.’ 정도로 이해했었던 것 같았다. 여름철이면 마을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 마시고 아이들과 뛰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물 안을 세심히 살펴본 적이 있었다. 햇볕이 우물 속을 비추자 우물 깊은 곳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우물은 사람도 먹고 물고기도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가득한 공간인 것이었다. 우물에 소독약을 넣고 수도가 집집마다 연결된 다음에는 60세 이전에 돌아가시는 어르신이 크게 적어졌다. 요즘은 60세 정도면 청년 취급받는 장수마을이 되었다.     


아프리카를 다니며, 물을 무척이나 조심했다. 잘못 마시고 오지에서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물고기가 헤엄치는 우물을 마신 이력은 하등 도움이 안 되었다. 비위생적인 물을 마시면 일찍 죽을 수 있는다는 사실만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하려 해도 조심하기 어려운 상황도 벌어지는 법이다.


아프리카 출장 시 꼭 가지고 다닌 위생용품이 있었다. 물을 자외선으로 살균하는 휴대용 기계와 물소독제였다. 물소독제는 주로 양치질할 물을 소독할 때 사용했다. 자외선 살균기는 호텔 방으로 들어오는 먹는 물에 사용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서는 둘 다 사용이 어려웠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데 혼자서 유별 떠는 건, 상대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수라면 가려 마실 수 있겠지만, 시원하게 내놓은 얼음 동동 뜬 주스는 난감했다. 아예 안 마시면 모르겠지만, 더위로 사방이 쩔쩔 끓는 듯한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음은 위험할 수 있었다. 비위생적인 물을 얼릴 가능성이 높았다. 오랜 기간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온 내 소화기관이 오염된 물을 버텨낼지, 자신 없었다. 이럴 때 자외선 살균기를 꺼내서 얼음 동동 주스에 담그면 딱인데, 주위를 둘러싼 현지인들의 눈치를 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유혹을 뿌리쳤지만, 무더 위에 버팀목이 녹아내렸다.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물고기가 돌아다니던 우물에 단련된 것일까. 탈 난 적은 없었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점심은 마을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코트디부아르 출장 중 강가 마을에 머무를 때의 일이다. 그 지역 별미는 생선구이였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드럼통 안에 불붙은 장작을 놓고 그 위에 석쇠를 올려 생선을 굽고 있었다. 구수한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이 집에서 자신 있게 내놓는 대표 요리는 큰 접시에 구워진 생선 올리고, 그 옆에 촘촘히 썰은 양상추 같은 채소를 곁들인 것이었다. 먹을 때 안 사실이지만, 그위엔 짭짤 매콤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 조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리하는 아주머니의 손이 까맸다. 화들짝 놀랬다. ‘아 여기 아프리카지.’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흑인 손이 까만 건 당연한 일이고 하등 이상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깨끗한 손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까만 손이 깨끗한지 안 깨끗한지 분간해 낼 재주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요리를 하는 여인의 손만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리가 나오자, 같이 간 현지인들이 구운 생선을 채소에 싸서 먹었다. 나도 같이 먹어야 했다. 말짱한 정신으론 좀 그래서 맥주를 곁들였다. 입안에 넣은 매콤한 채소에 쌓인 생선은 입에 달라붙었다. ‘이거 술안주로 꽤 좋은데.’


대학 시절, 학교 교문은 나서면 얼마 안 가 닭발로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허름한 식당 앞엔 깔끔해 보이지 않는 호스에서 물이 콸콸 나오고, 커다란 고무 대야 안에는 닭발들이 유영하며 몸을 씻었다. 얼마 후 같은 곳을 지날 때 보니, 그 다라 안에는 무가 썰어져 있었다. 반찬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닭발을 씻던 다라인 데 쓰고 난 후 살균은 제대로 했을까.’ 그 허름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즐겨 마셨다. 매콤 쫄깃한 닭발과 고춧가루가 덕지덕지한 무는 안주론 일품이었다. 웃고 떠들고. 나는 그리 살았었고, 아프리카에서의 음식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려 했다. 개발도상국이니까. 하지만, 그리 살아 본 적 없는 분이라면 가급적 요리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 걸 권한다. 완전히 익힌 음식만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아프리카도 큰 도시에 소재한 호텔은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철저히 소독을 하는지, 모기 한 마리 없었다. 하지만 시골 도시는 달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퀴벌레와의 동침이었다. 나이지리아 어느 시골 도시 호텔에서 묶을 때였다. 무언가가 얼굴을 간질이길래 깨어났다. 눈에는 침대 위에서 재빠르게 기어 도망가는 바퀴벌레들이 들어왔다. 징그럽다기 보단 반가웠다. ‘아 너네들이 여기도 있었네.’     


탄자니아 시골 마을 호텔에선 좀 더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침대에서 잠결에 눈을 설 푸게 떴는데 누가 빤히 보는 것 같았다. 화들짝 놀라 보니 도마뱀이었다. 나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도마뱀이 네 개의 다리를 재빨리 놀리면서 후다닥 벽을 타고 멀찍이 떨어졌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제를 놀라게 했구나.‘  

   

이름도 알 수 없는 까맣고 작은 벌레들이 문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광경은 종종 목격했었다. ’ 얼마나 살충제를 뿌려댔으면 벌레들이 전멸했을까.‘ 싶었다. 그런 환경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게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오래전 여인숙이란 데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가격이 착한 숙박시설로,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에겐 훌륭한 잠자리였다. 그만큼 바래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여인숙보다 아프리카 호텔은 전반적으로 좋았다. 침대도 컸고, 시트도 깨끗했고, 화장실도 방마다 딸려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골 도시의 호텔에선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마치 여인숙처럼.   

  

또랑 또랑한 눈을 가진 꼬맹이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무엇인가를 주기를 바랐다. 이성보단 감성을 앞세우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했다. 부패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통행료라는 게 통용되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과거와의 조우. 기억에는 선명하게 남은 과거지만,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니 어색했다. 얼른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니 선택지는 적응하는 것일 뿐. 하지만 그 적응에 2년은 걸렸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과거에의 적응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부족, 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