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첫 책을 출간했을 당시 조순 교수님에게 평을 부탁드렸다. 교수님는 책을 정독하며 궁금한 부분에 일일이 표시를 해 두셨고, "학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하셨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올 책은 역작이 될 것 같다는 기대도 있으셨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이제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어 간다. 아직까지 찾는 분이 계시니, 영광이다. 그간 정책 현장에서 좌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을 의식하지 않고 일했다. 현재는 일선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나, 정책의 흐름과 결과에 대한 관심과 관찰, 일의 깊이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조순교수님이 기대하셨던 책을 출간하려면 좀더 지식을 쌓고, 경험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망각의 늪에 현재의 생각과 느낌이 빠져들까 염려되어, 중간 보고서 형식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학생 시절부터 품어온 의문이 있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라는 구분은 과연 현실 정책에서 유의미한 분류인까? 실무 경험이 누적될수록 드러난 결론은 이렇다. 보다 본질적인 기준은 '전문가 대 비전문가', '이론주의자 대 실용주의자'라는 축이 더 가까웠다. 정치적 구호로서의 이념 구분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을 바라 보지 못하게 하는 `눈을 가리는 안대` 같은 요소로 작동하는 때가 많다는 생각이다. 이론은 지식을 두텁게 하지만, 경험과 실무로 다듬지 않는 다면, 오히려 독과 같이 작동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현실의 예를 살펴보자. 한때 좌파·진보로 상징되는 북한은 최빈국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상적 삶의 가치를 높이려던 유럽은 가중되는 사회혼란과 경제적 정체에 직면해 있다. 보수·우파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미국 또한, 극단인 자국 중심의 정치를 표면에 드러내는 상황이다. 백말이 불여일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념은 권력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는 잘 작동하지만, 문제 해결의 도구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공교육을 생각해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정책에 필요한 것은 실용적 통찰과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이고, 이러한 요소가 결여되었을 때, 제 아무리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라도 디테일이 실종되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교육을 개혁하겠다며 달려들어 받은 상장은 공교육 붕괴와 교육 불평등 심화다. 이제는 과거보다 부모의 소득과 지식의 아이들 교육의 질과 기회를 결정하게 되었고, '개천에서 용 나던' 가능성은 점차 얇아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 진단에 있어서 진보냐 보수냐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질은 초보적인 정책가들이 철지난 이론을 마치 대단한 최신 이론인양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외국에서 이미 실패가 확인된 사례를 국내에 적용한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선무당 같은 정책을 진보와 보수, 명분과 이론의 화려한 포장에 쌓아 마구 내던지면 여론몰이까지 하였다.
상식적인 분에게 질문하고 싶다. 교육은 미래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능력있고 기준을 존중하는 후세를 양성하는 게 목적일까. 좋은 말만 하고, 벌하지 않고, 아이들의 순수성에 기대어 자율적으로 가는 이상향 실현이 교육의 목적일까.
지역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지역정책은 인재 순환과 지역 자립을 목표로 한다. 반면, 국내의 지역개발은 결론적으로 볼 때, 수도권으로의 일방적인 인재 유출이라는 구조적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지역 인구 감소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략 10년 전 인구 감소를 막자는 정부대표와 전문가들이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느낌은 지금의 현실이다.
점차 공부분에 확대 되고 있는, "누구나 자리에 앉으면 다 할 수 있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도 짚어야 할 일이다. 심하게 비교하자면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할 수 없었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결과다.
심지어 선조조차 일본의 침략 의도를 감지하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했다. 적어도 사람의 능력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직시한 임금이었다. 그래서 적격인 경험과 지식,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제자리에 앉혀야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에 눈이 흐려져 원균을 선택하는 순간, 조선 수군은 거의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전쟁이 향방도 불투명해졌었다.
공조직을 인재층이 상대적으로 엷은, 수도권 인재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지역에 내려 보내서, 국민이 더 좋아졌나? 국가가 더 발전하는가?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나? 수장을 정치적 판단으로 자리에 앉히면 더 훌륭해지나. 이순신 장군과 원균의 예를 조금만 확장해 봐도 알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은 우리 현실정책엔 없는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선조 임금을 욕할 수 없다고 본다. 적어도 그는 이순신 장군을 주변의 반대에도 전례없는 특별 승진을 시켰고, 임란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한 임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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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수 많은 노력과 희생의 발판으로 선진국의 위치에 선 대한민국호은 현재 침몰 할 수도 있다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 뜬금 없을 수도 있는 이런 위기 의식은 최근 해외 빈곤국가들을 대상으로 일 하다 보니 점점 또렸해진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못사는 나라와 점점 닮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남탓하고, 고마움 모르고,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기준이 때에 따라 흔들리고, 부지런함과 전문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의 위치에 설수 없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해본다. 나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이글을 읽는 분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좌우 논란과 종교 논란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의 시작은 이렇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혼란의 중심에서 충돌하고 있는 논란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다. 그 자리엔 종교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권련을 잡고 싶어하는 정치인의 탐욕과 욕망이 도사린다. 그 결과는 고통받는 국민이다.
그들이 깃대를 세우며 옹호하는 종교 어느 구석에도 죄 없는 국민을 극단적인 상황에 몰고, 고통과 죽임을 당하게 하라는 구절이 없을 듯한데 말이다. 오히려 좌우이념보다 더 숭고한 정신일텐데 말이다.
좌우, 보수와 진보... 이런 논리가 나왔을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따지고 보면 호랑이 담배물던 시절에 논리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강하게 펼치긴 어렵겠다. 천년도 더 오래 전에 생긴 종교를 앞세워 국민을 궁핍과 기아의 선상에 올려 놓는 이들도 적지 않은게 세상이니. 우리가 보수와 진보의 논리에서 챗바퀴 도는 건, 정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