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아프리카 식량지원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베네수엘라에서 지원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도움을 요청했다. 아프리카 10개국이 식량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데, 한국의 발전된 기술을 전수받고 싶다는 게 요지였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해준 점에 기쁜 마음이 일었으나, 아프리카 보다 더 상황이 나쁜듯 한 베네수엘라에서 아프리카를 돕는다는 사실이 언듯 이해되지 않았다.
'제코가 석자인데, 오지랖이 너무 넓은 거 아닌가?'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니, 베네수엘라 프로젝트에 두움을 주기로 했다.
2018년 11월 아프리카 가나에서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 프로젝트의 평가를 위한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가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어려움에 처한 베네수엘라 공무원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함이 있었다. 사실 그들이 워크숍에 참석했다는 것만 해도 의아했다. 자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데 아프리카까지 오는 항공료도 그렇고, 이런 혼란기에 중앙부처 관료가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나라였으면 어림없을 터였다.
워크숍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공무원들은 낙천적이며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부드러운 눈빛과 미소로 자신들의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고,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판단에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들이 사진으로 보여준 베네수엘라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끝없이 펼쳐진 열대우림과 에메랄드빛 해변, 이국적인 도시의 모습과 곳곳에서 벌어진다는 축제의 광경. 농담 반 진담 반, 만약 내가 베네수엘라에 방문하면 안내해줄 수 있냐 물었더니 그들은 흔쾌히 그러마라고 답을 했다. 4박 5일 일정의 워크숍 동안 베네수엘라는 꼭 방문해야 될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워크숍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얼추 몸을 수습할 즈음엔 더 큰 병을 얻었다. 우리나라로 돌아온 후 꽤 오랜 기간 병치레를 했다. 삶과 죽음에 교차되던 시기에 베네수엘라를 떠올릴 겨를은 없었다. 시간은 느릿느릿 몸을 치유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대략 한 달 전쯤, 신문에서 우연히 차베스라는 이름을 보게 되었다. 과거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로 베네수엘라는 망친 장본인인 것처럼 묘사된 인물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나라, 베네수엘라. 2021년 베네수엘라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베네수엘라 공무원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 깊숙이 들어간 모양새였다.
마침 세계 각국의 리더들을 조명해 보자는 마음으로 글소재를 찾던 참이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다음으로 차베스를 알아보기로 했다.
차베스. 그는 부패를 죄악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생활의 시작점이었던 군대에서, 국가를 좀먹는 부패의 실체를 깨달았다. 더러움을 피하고자 제대를 생각했으나, 혼탁한 세상을 피하려 하지 말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자는 지인의 조언에 군대에서 계속 복무하기로 결정했다.
17년간 군 복무를 하면서 중령까지 진급한 차베스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정의로운 사회를 목표로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열정과 의지만으로 기득권층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유혈충돌의 가능성마저 생기자, 차베스는 스스로 진압군에게 항복하였다.
비록 반란의 실패로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국민들에게 차베스란 이름을 알린 계기이기도 했다.
석유 매장량 전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 정부는 석유를 판 돈에 크게 의지하여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국제 석유 가격이 계속 낮은 상태를 유지한 1990년 초반엔, 국가 재정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흐린 날이 있으면 볕 들 날도 있는 법, 1993년부턴 국제 석유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정부에 많은 돈이 쌓여갔다.
상식적으로 볼 때 베네수엘라 정부가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인 만큼, 국민들도 풍족해져야 했다. 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는 연달아 헛발질만 해댔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물가가 급등해 년간 50-60%의 인플레이션이 있었고 급기야 1996년에는 인플레이션이 100%에 다다랐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국민 66%가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어느 누가 이런 상황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 불만이 폭발할 지경에 다다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시기에 수감생활을 마친 차베스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이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무능한 정부를 유능하게 만들 수 있는 적임자란 사실을 강조했다. 과거 반란까지 일으킨 과단성 있는 정치인이란 사실도 조명되었다. 그는 ‘차베스라면 할 수 있다.’란 이미지를 만들었고,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사회주의자인 차베스였지만, 대통령이 된 그는 유연한 정책을 펼쳤다. 부정부패를 줄이고자 노력하면서, 외국인 투자도 장려했다. 낭비되던 국가재정을 바로 잡아 서민들에게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고, 식료품 가격을 낮추는데도 노력했다. 때를 맞추어 국제 석유 가격의 호황이 계속되어 국가의 재정도 넉넉해졌다.
그러나 2001년, 국제유가의 하락은 차베스를 시련에 들게 했다. 석유를 판 이익으로 복지정책을 늘려나가던 차베스 정부는 국고가 줄어들자 혼란에 빠졌다. 살기가 다시 팍팍해진 국민은 파업의 형태로 불만을 표출했다.
차베스에게 호의를 보이던 외국인은 투자를 철회하고, 잘 사는 사람들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반란까지 일어났고, 차베스는 반란군에게 체포되어 구류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란군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했고, 얼마 후 차베스는 풀려나게 된다.
하루아침에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뻔한 차베스.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 시작했다. 이익 앞에서 의리를 저버린 외국인 투자자들, 자본가들은 정의를 위한 행보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였다. 더하여 전문가라는 사람들, 중산층도 해악이긴 마찬가지였다. 경제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앞장서 혼란을 부추기고 반란까지 일어나게 한 중추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정권을 다시 잡은 차베스는 자신의 임기를 연장시키는 한편, 파업과 데모에 앞장섰던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전문직들을 모두 해고했다. 이들의 자리는 차베스를 지지한 인물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고소득층과 중산층에 한층 가혹해지는 동시에 소득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저소득층 지원을 강화해 나갔다.
서민들이 읽고 쓸 수 있게 공교육을 확대했다. 국민들의 영양상태를 개선시키고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다양한 방편을 찾기도 했다.
그런데 차베스의 노력에 번번이 제동을 거는 세력이 있었다.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를 받는 자본주의 사업가와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식품 가격을 올리고, 주택 가격도 높게 만들었다. 정부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세워도 이들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된 정책 효과를 보기가 어려웠다.
차베스는 한층 혹독하게 이들을 다루었다. 주요 식료품점을 국유화하여 식품 가격을 낮추었다. 주택업자의 재산을 몰수하여 주택 가격도 안정시켰다. 한편으론 인권개선에도 노력했다.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라 할지라도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된다는 게 그의 정책이었다.
차베스의 집권 기간 동안 베네수엘라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소득불평등은 크게 줄어들었다. 남미 최고의 문맹률이었던 베네수엘라였지만, 15세 이상 국민의 95%가 읽고 쓸 수 있는 나라로 변모했다. 빈곤율 역시 크게 낮아졌다. 1998년 48.6%였으나 2013년엔 32.1%였다. 국민의 영양상태도 크게 개선되어 영양실조 관련 사망은 50%나 감소했다.
복지뿐 아니라 경제상황도 크게 개선되었다. 차베스가 대통령을 시작하던 시기,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 남짓. 차베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 대통령직을 내려설 때의 베네수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6,000달러였다. 정리하자면 차베스 재임기간 중,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 소득은 4배로 불어난 셈이었다.
차베스의 집권 시기만 놓고 본다면, 그를 베네수엘라를 망하게 한 지도자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영웅에 가까웠다. 경제와 복지를 가늠하게 하는 모든 지표가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베스는 베네수엘라를 급속도로 침몰시킨 장본인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책이 있었다. 비록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뜻을 컸겠지만, 이상이 현실을 압도해버린 실패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중 하나가 차베스 재임기간 중 중산층이 무너지고 전문가들의 씨가 말랐는 점이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석유산업 종사 전문가들을 쫓아낸 이후,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은 점차 비효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자산가의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익을 제한하자, 사업가의 활동을 크게 위축되었다. 노력해도 이익이 없기 때문이었다. 국유화된 식료품점이나 주택공급 산업은 국민들의 수요에 제대로 반응하기 못하는 구조가 되어갔다.
게다가 차베스의 장기집권으로, 고인물이 썩어가듯 부패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차베스가 믿었던 인물들은 초심을 잃었다. 이런 결과로 차베스의 독재가 지속되면서 내로남불이 판치는 상황이 돼버렸다. 범죄자의 인권보장을 강화하여 교도소가 마치 강력범죄자를 양산하는 학습소처럼 변질되었다는 비판까지 일었다.
차베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베네수엘라를 혼란에 빠트렸다. 차베스의 뒤를 잇겠다는 부패된 정치인들의 권력욕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정치 상황은 혼동으로 빠져들었다. 때맞추어 하라하기 시작한 국제 석유 가격은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15년 베네수엘라는 세계 불행 지수 1위인 나라가 되었다. 인플레이션은 159%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지경에 이르렀고, 가난한 사람들은 먹은 게 없어 쓰레기까지 뒤지는 상황에 처했다. 한때 1인당 국민소득 16,000달러인 나라는 폭망 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IMF는 애들 장난인 수준처럼 돼버린 셈이다.
차베스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지도자였다. 이상을 너무 앞세우면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보여준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지도자가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바람직한 사람일까.
차베스의 집권 초기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독재가 심화되고 사회주의 이상을 강조하면서 저소득층의 지지만으로 정권을 버텨 나가야 했다. 결과를 놓고 볼때 차베스의 정책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반면에 지난회에 소개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모든 국민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은 지도자였다. 집권 마지막 해인 지금도 폭넓은 국민의 지지는 변함없다.
내년 상반기엔 향후 5년을 이끌어나 갈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결정된다. 우리의 새로운 지도자는 어떤 정치인이 되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