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정책 2. 정치인이기 보단, 정책가 메르켈!
대략 20년 전 독일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독일 모 연구소의 K 박사는 회의가 끝난 후 우리 일행을 동양 느낌이 물씬 나는 중국집에 초대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온 한국인을 중국음식점으로 초대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황당했고 조금 지난 후 쓴웃음이 나왔다. ‘해안가 사람이 산골에 방문해서 풍성한 산채나물을 기대했더니, 산골 사람들이 큰맘 먹고 물고기를 잡아주더라.’라는 우스게 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필자는 지역 주민이 추천하는 전통 독일 하우스 맥주와 소시지를 기대했었는데, 초대하는 입장에선 서민음식점으로 안내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나 보다.
중국음식과 함께 중국술을 마시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필자는 부러운 목소리를 담아 ‘통일이 되니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K 박사의 답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웬걸요. 통일이 되면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녀요. 세금이 두배도 더 늘어난 것 같아요. 통일비용이라나 뭐라나. 게다가 동독 사람들은 믿기가 어려워요. 치안도 예전 같지 않고요. 통일이 돼서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분명한 건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거예요.’
통일된 지 10년이나 지난 독일 땅에서 들은, 독일 지성인의 불만은 필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당시엔 우리나라가 통일에 대한 장밋빛 꿈이 컸기에 더욱 그랬다. K 박사와 대화를 하면서 깨달은 바는 통일은 단기간에 풀어내기 어려운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는 사실이었다.
1990년 통일 후 독일 정부는 잘 사는 서독과 못 사는 동독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서독인에게는 세금을 부담시키고, 동독인에게는 그 세금으로 지원을 했다. 이리되니 세금이 많이 내야 하는 서독인에겐 금전적인 불만이, 서독보다 일자리가 적고 보수가 낮은 동독인은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다.
서독인에게 동독인은 인종차별적이고, 가난하며,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독일 문화에 어색함이 있었다. 반면에 동독인 눈에는 서독인이 속물적이고, 정직하지 않으며, 돈 많은 이기주의자처럼 보였다. 이런 생각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로에게 냉소적이 되고, 적대감이 쌓였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머릿속의 벽’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갈등은 통일된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실정이다.
2005년. 메르켈이 독일 총리가 되었을 당시, 통일 독일은 내적 갈등과 정치적인 혼란으로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었다.
메르켈 총리의 등장은 과거의 총리와 크게 구별이 되는 점이 있었다. 통일 후 남성들의 정치논쟁에 신물이 난 이유 때문인지, 독일 최초로 여성 총리가 선출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사회적 혼란을 잠재워줄 만한 지식 배경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물리학과 박사 출신이다. 사회적 혼란상이 반영된 것인지,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수장이 된 이후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비판을 정리하자면 메르켈 총리는 정치적인 결단을 미루기 일쑤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며, 사회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특정한 이념이 없고, 통일 독일을 이끌어갈 비전이 흐릿하여 실제로 비전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심이었다. 더하여 자신의 말을 뒤집는 모습도 보였다. 독일에선 이런 총리를 비야냥 하듯 ‘메르켈른’이란 속어가 생겼다.
이런 비판만 본다면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임기를 1년도 못 채웠을 듯싶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16년 동안이나 장기집권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어느 나라 국민이 ‘메르켈른’이라는 속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우유부단하고 문제가 생기면 침묵하는 지도자를 16년 동안이나 지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메르켈 총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경제이지 않을까 싶다. 메르켈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실업률은 11% 이지만, 현재는 6%까지 내려섰다. 재임기간 중 독일의 경제성장은 34%인데, 주변국인 영국(7%), 프랑스(18%), 스페인(11%), 이탈리아(2%)였다. 독일의 경제는 EU 주요국과 비교해서 꽤나 견실하게 성장한 것이다. 경기 침체 기간 동안에는 '단시간 근로 시스템'을 운영하여 대규모 정리해고를 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주변국들보다 경제적 충격을 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EU 국가들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나라 빚을 늘려나갈 때, 메르켈은 국가 재정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막대한 통일비용이 국가재정을 좀 먹고 있는데, 여기에 버거운 복지정책을 늘리면 국가의 앞날을 어둡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는 듯싶다. 이런 재정균형 노력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독일은 경제적으로 탄탄한 나라로 성장해 나가게 된다. 메르켈 총리가 부임했던 2005년 국가 부채는 GDP의 67.3%였으나 2019년에는 59.8%로 낮아졌다.
메르켈 총리는 EU 내에서 독일의 위상을 크게 높인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였다. 당시 금융위기란 쓰나미에 EU 회원국도 휩쓸렸다. 특히 그리스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는 국가가 휘청거릴 지경에 처했다. 이때 메르켈 총리는 반대를 무릅쓰고, EU 연합 중앙은행을 정치적으로 물질적으로 밀어준다. 어려움에 처한 회원국에 도움을 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도움만 준 것은 아니었다. 도움을 받는 그리스 같은 나라 국민들에게 비난을 받을 일도 같이 수행했다.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고, 긴축재정을 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메르켈 총리가 내세운 기준을 따라야 하니, 지원을 받아야 하는 나라 국민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높았고 데모와 파업으로 메르켈의 결정에 저항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메르켈을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 아직 불안 요인은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그리스는 예전보다 탄탄한 나라로 변모했다.
EU 금융위기를 앞장서 해결했던 메르켈 총리는 2015년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른 나라에선 엄두를 못 내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이는 독일 내부에서 반 난민 정서를 끓어오르게 하고,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지게 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독일의 국격은 한층 높아진 모양이 되었다. 독일의 EU 리더로서의 위치는 더욱 탄탄해진 것이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인과 메르켈 총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지인은 영국이 EU를 탈퇴한 이유가 메르켈 총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EU를 결성할 때만 해도 영국은 프랑스, 독일과 더불어 EU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였지요. 대영제국이라 불렸던 영국의 위상이 어디가겠습니까. 그리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된 후 동서로 갈라져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영국의 많은 학자들은 통일 독일의 미래를 불투명하다고 내다봤었다고 합니다. 21세기에는 독일은 쭈그러들고 영국이 EU의 리더로써 우뚝 설거라,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은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고,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통합을 이룬 것입니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EU의 침체를 건져내는 주도적인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이만해도 영국인들의 배가 아플 지경인데, 시리아 난민까지 받아들여 국가의 위상이 영국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영국보다 더 잘 살고 칭송받는 나라가 되다니. 이쯤 되면 영국인들이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지 않겠습니까? 그 결과 EU를 탈퇴하자는 여론이 부글부글 끓어올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영국은 메르켈 총리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다음 해인 2016년 EU 탈퇴를 결정했다.
메르켈 총리가 16년 동안 이룬 성과를 보면 그녀가 말을 자주 바꾸고 정책적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함까지 있다는 비판이 선 듯 납득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실례가 있었다.
지구온난화 대응에 대한 태도가 한 가지 예이다. 환경부 장관을 지낼 때,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를 위하여 EU 여러 나라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이끌어내는 노력까지 했다. 또한 기후온난화 대응을 위하여 석탄 의존도를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하여 원자력을 계속 이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신의 발언을 바로 뒤집어 버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자신의 결정을 바꾸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원자력 에너지 폐기를 결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환경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 강화가 자국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듯하자 독일에서의 이산화탄소 관련 규제를 느슨하게 추진했다. 환경론자들이 보기엔 말을 했으나 실천은 미루듯 보였을지도 모를 대목이다. 이후 2015년 파리 기후협정이 성공하도록 노력했지만, 독일에 돌아와서는 이전과 마찬가지의 행보를 펼쳤다. 독일 내 산업 보호를 위하여 탈탄소 정책을 미적지근하게 추진한 것이었다. 이 역시 말을 바꾼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여론에 밀려 정책 추진을 머뭇거리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쳤을 터이다.
메르켈 총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행보를 두고 실용주의라고 평했고, 메르켈 총리 스스로도 실용주의자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에는 이념이나 자기 고집에 집착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이며, 실질적인 이익에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그는 반대파가 주장하는 논리를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고도의 정치적인 책략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줄 곳 보였던 호르스트 제호퍼를 연방 내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메르켈의 사고체계는 정치전략으로만 치부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매트 포트 러프 영국 코벤트리 대학교 정치과학과 교수에 의하면 ‘메르켈 총리는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다 '정책'에 대한 토론장으로 바꿔 놓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의 정치논쟁이 아닌, 국가발전을 위한 정책 토론을 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통일 이후 혼란에 휩싸인 독일이 EU 리더국 위치까지 올라간 핵심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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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원에서 콩 유전자를 돌연변이시키는 실험을 했었다. 당시 선배는 ‘과학자가 기술자와 다른 이유는 매뉴얼이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과 실증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유전학이나 생화학 교과서, 과학저널의 이론에 붙들려 있던 필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했었다.
선배와 필자, 실험 실원은 돌연변이 처리를 한 12,000개의 콩에서 세계에서 4번째로 ‘다량 뿌리혹 형성 콩’이라는 돌연변이체를 만들어냈다. 이는 공중에 있는 질소를 양분으로 더 많이 끌어 쓸 수 있는 돌연변이체였다.
물리학 박사였던 메르켈. 그녀는 정치이론이나 기준을 철저히 자연과학도의 관점에서 해석했을 듯하다. 그러니까 기존의 정치이론·이념, 매뉴얼에 얽매이지 않고 실증을 통해 가장 합리적이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정치. 아마도 이런 정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2021년 9월 21일 갤럽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독일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는 32%였다. 메르켈 총리가 마지막으로 총리직을 수행하는 올 2021년은 60%다. 다양한 비판과 이론이 있겠지만, 메르켈은 어려운 시기에 독일의 수장이 되어 독일을 EU 리더국의 지위에 올렸고, 독일 경제를 부흥시켰으며, 임기 마지막 해에도 한때 지지율이 80%선까지 될 정도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지도자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와 같은 이념이나 당리당략이 아닌, 국가 발전을 위한 실용적인 정책에 주안점을 둔. 정치인이기보단, 정책가인 지도자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