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정책 2. 天災 와 人災 (2)

by 이타카



태풍이 몰려온다는 경보가 발령됐다. 이번 태풍은 거세니, 재해가 우려되는 지역 주민은 지정된 돔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나왔다. 시청 직원과 경찰의 '돔'으로 피신하라는 확성기 목소리가, 골목골목에 울렸다.


시의 발표에 따르면, 피신처로 지정된 돔은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지붕은 최대 320km/h의 강풍을 견딜 수 있으며, 웬만한 홍수가 나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또한 혹시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 15,000명이 3일 동안 버틸 수 있는 물과 식량이 비축되어 있으며, 의료진도 배치된다고 했다.


8월 28일, 10,000여 명의 시민이 돔에 도착해, 시청 직원과 경찰의 안내로 지정된 장소로 이동해,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때만 해도 별일 있겠나, 싶었다.


8월 29일 새벽이 되자, 태풍의 거센 바람이 '돔'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창문이 덜거덕 거리고, 지붕에서 들섞이는 소리가 났다. 선잠을 깬 시민들은 불안했지만, 시에서 마련한 피난처인 돔을 믿었다.


8월 29일 오전 6시 20분, 갑자기 돔 안의 전기가 일시에 나갔다. 정전이었다.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불안이 쌓여갈 때쯤, 돔 안의 전등이 환하게 다시 켜졌다. 비상 발전기가 가동한 것이었다. 비상 발전기는 용량이 적어 에어컨, 냉장고, 의료 장비까지는 작동시키지 못했다.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정전에 의아해할 때, 제방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는 바다에 인접해 있었으며, 이 제방이 바닷물의 침입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태풍에 제방이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쓰나미처럼 도시로 밀려든 것이었다. 돔에도 물이 들어오긴 했지만, 심각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피난해온 시민들은 그나마 안도했다. 돔으로 왔으니 이 정도지, 집에 머물렀다면 큰일 날 뻔했다. 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태풍이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바람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천장에서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얼마후 엄청난 바람에 버틸 수 있다는 돔의 천정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투툭 날아가는 천장 구조물.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몰아치는 비. 빗물은 돔 내부 곳곳에 스며들어 그나마 작동되는 전자기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돔을 믿고 있던 시민들은 당황스러웠다. '태풍에 지붕이 띁겨져 버리다니.' 그리고 오기로 한 의료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생각치도 못한 상황으로 인해 소요가 일었다. 한켠에선 이나마 다행히 아닐까 하는 안도도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갔으니. 하지만 이는 시작이었다.


사방에서 이재민이 발생하자, 군인과 경찰은 구조한 사람들을 돔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집이 물에 잠겨버린 사람들도 돔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돔 안 시민들은 3만 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8월 30일. 에어컨이 고장 난 돔 내부 온도는 32도까지 올라가고, 고온과 습한 환경에서 곰팡이들이 곳곳에서 피어났다. 높은 온도에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썩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하수도, 화장실 배관시설이 망가졌다. 벽은 피와 대변으로 뒤덮이고 악취와 역겨운 냄새가 돔 안 전체로 퍼졌다. 돔 안 시민들에게 실제적인 재난이 시작된 것이었다.


악취도 문제지만, 정말 심각한 건 마실 물이었다. 준비된 비상식량도 충분치 않았고, 구호물자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집에서 무어라도 준비해온 사람은 형편이 나았지만, 맨 몸으로 뛰쳐나온 피난민들의 상황은 최악으로 달려갔다.


배고픈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호텔이나 상점에 침입해 물건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뜬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돔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 다는 소문. 강간과 폭력이 횡횡한다는 소문. 그리고 어느 틈에 이를 알게된 언론은 티브이나 인터넷을 통해 소문을 진실인 양 떠들어댔다. 이 와중에 실제 죽은 사람이 실려 나가고 돔 안의 시민들은 이를 목격했다. 불안과 공포가 돔 곳곳에 퍼진 곰팡이 처럼 사람들 마음에 번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는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8월 31일, 9월 1일. 돔은 더 이상 피난처의 구실을 하기 어려웠다. 이대로 가다간 돔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아수라장이 될 터였다. 수습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부와 시는 돔 안의 피난민들을 다른 장소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인근 시의 협조를 받게 된다.


9월 2일, 9월 3일. 이틀에 걸쳐 피난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돔에서의 악몽 같은 일주일은 끝났다. 시민들은 돔을 떠나면서, 이제는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시기도 하고. 정말 재수 없이 돔에 들어갔다며 시를 원망하기도 했다.


실상 돔에 있던 사람들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일주일간 공식적인 사망자가 6명 밖에 안나왔으니 말이다. 이번 재난의 전체 사망자는 1,800여 명. 돔 밖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던 것이다.


재난으로 피폐된 시민들은 들려오는 뉴스에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 태풍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갈 때, 대통령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은 '시에서 상황 보고를 제때 하지 않아 몰랐다.'라고 변명했다. 시에서는 적절한 시점에서 상황을 보고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시장의 부적절한 대처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피난민을 이송하는 버스를 적절히 배치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치열해지는 책임공방 속에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재난 대응 사령탑의 주요 관계자들이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들이란 것이었다. 전문성과 경험이 없다 보니, 재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쓸데없는 회의만 잔뜩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구호물품도 제때 오지 않고,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못 살렸다고. 이는 대통령의 무능 탓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각종 시민단체가 합세하고, 이재민과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언론은 황당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소식을 계속 전달하고, 이를 접한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이런 시점에서 제방이 갑자기 무너진 원인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애당초 제방에 견뎌주기만 했다면, 이렇게 어마어마한 재난으로 번지지 않았을 일이었기에 시민들의 관심이 정부 발표에 온통 쏠렸다.


수십 년 전에 지어진 제방은 문제 투성이었다는 게 정부의 조사 결과였다. 당시 예산을 절감한다며 부실하게 설계를 하고, 부실하게 시공했다는 것이었다. 만약 제대로 설계하고 시공했다면, 이번 태풍에 제방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란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제방 설계와 감리, 공사에 관여된 책임자들은 퇴직하고 사망까지 했을 터였다. 그리고 수십년간 정부와 시는 제방을 한번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책임은 면할수 없었다.


언론이 이번 사태는 천재가 아닌 인재라고 떠들어 댔다. 책임소재는 대통령, 시장, 재난 대응 관계자, 수십 년 전 제방 건설 책임자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남 탓 공방이 가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 대응 사령탑은 어설픈 일처리로 복구를 지체시켰다. 구호물품을 빼돌리다가 걸리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피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여 복구 장비와 인력이 겉돌고. 세금을 줄줄이 낭비한다는 비난이 퍼졌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시민들은 뼛속 깊이, 재난의 고통과 후유증을 새기고 일상을 버텨나갔다.


이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던 미국 뉴올리언스 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시는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는다는 정책을 발표한다. 100년 만에 한번 올만한 재난을 대비한 제방에 대한 내용이었다.


카트리나 재난 이후, 부쉬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거세졌다. 이 시점에서 대선이 있었다면 당선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당사자에겐 다행이랄까. 이미 재선에 성공한 후였으니 말이다. 2009년에 있었던 대선에는 부쉬대통령의 공화당은 패배하고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다.





이전 글에 소개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카트리나의 공통점은 선진국에서 일어난 대형 재난이며 천재와 인재의 합작품이란 점이다.


후쿠시마는 일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 카트리나는 1,80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경제대국 미국의 위기대처 능력에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후쿠시마와 카트리나 재난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공공분야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곳곳에서 보인다.


일본은 전공을 불문하고, 공무원을 입명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한 자리에서 10년넘게 재직하며 전문성을 키우는 구조이지만, 비전공자가 전공자처럼 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라고 본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정치적으로 주요 인사들이 바뀔 수 있는 구조다. 그나마 전문성이 강한 조직은 그대로 나두는 데, 카트리나 때 기상청이 그랬다. 기상청은 카트리나 재난에 제역할을 한 기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실무라인이 전문가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공공분야의 전문성. 선진국이라면 꼭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평상시에는 드러날 일이 적겠지만, 국가의 위기 상황이나 중요한 국가 정책에서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주요 정책을 지휘하는 사람과 조직이 선무당인가, 아니면 전문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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