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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21. 2021

부리부리 박사

어릴 적 티브이에 들러붙듯 보았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부리부리 박사였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이자 척척박사다. 그런 부리부리 박사는 내 미래의 꿈이었다. ‘부리부리 박사 같이 이 세상 모든 이치에 통달한 척척박사가 되고 말테야.’     


하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의 부리부리 박사는 사기에 가깝다. 하나의 전문분야만도 깊이가 너무 깊어 평생을 들여도 속속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한 없이 넓은 분야에서 조금씩 지식을 모아담고는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는 사람들을 목격했었다. 개발도상국 시대가 남긴 잔재라는 것을 아프리카에서 깨달았다.      


나이지리아에 갔을 때, A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그다음 주제는 B, 다음은 C. 그런데 똑같은 사람이 전문가로 등장했다. 나이지리아에 맡긴 프로젝트에도 그 전문가가 관여했다. 깊이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다양하고 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이지리아 에본지주에서는 그 사람이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에 200여 명이나 참석했다.      


전문가를 상대로 한 교육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리되지는 않았다. 부족어만 알아,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부족 주민까지 교육생 리스트에 올랐다. 교육은 부족 주민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나빼고는 모두 만족한 듯 보였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이런 다방면에 전문가 명패를 달고 등장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릴 적 티브이서 봤던 부리부리 박사였다. 왜 부리부리 박사들이 아프리카에 많을까? 란 의문을 가지고 여러 각도로 관찰했었다. 그런데 원인은 의외인 곳에 있었다.      


“어떻게든 아프리카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외국에서 교육을 받으면 다시 돌아와 고국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해외에서 신지식을 배워서 돌아온 전문가가 태부족한 게 아프리카 현장이었다. 전문가는 부족하고, 해야 될 일은 많고, 결국 한 명의 여러 전문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넓고 얕은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 아프리카는 부리부리 박사의 대륙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런 부리부리 박사는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전문가가 부족한 시절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만물에 통달한 부리부리 박사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전문화가 깊어지고,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부리부리 박사가 멸종의 길에 들어섰지만, 부리부리 박사에 관련된 다양한 기억과 경험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나라 분들 중 이런 부리부리 박사에 친숙한 나머지 아프리카 태생의 부리부리 박사와 자웅을 겨루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었다. 중국인조차도 아프리카 지원을 위해선 제대로 된 전문가가 필요하다 강조하는 마당에, 우리나라 분이 부리부리 박사를 흉내 내다니..      


2023년 한 해 동안 해외원조를 위해 세금 4조 5천 억원이 쓰인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인재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탄생한 부리부리 박사와 같이 일하는 건 달리 방법이 없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과거 개발도상국 때 접했던 부리부리 박사 흉내를 내면 안 될 것이다.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혜국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한국은 말만 많고 실제 깊이는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위험까지 있다. 해외원조 현장은 전문성으로 무장한 우리 국민이 일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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