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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22. 2021

해외원조 전문가?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질문 세례를 담뿍 받았다. 처음엔 해외원조 전문가가 되기 위한 세례라고 생각했었다. 좋은 쌀을 만들려면 어떻게? 농기계 수리는 어떻게? 종자 관리는 어떻게? 물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답하기 참 곤궁했다. 대학원에서 돌연변이 종자를 연구했었고, 그 대상이 콩이었는지라 쌀은 잘 몰랐다. 그리고 오랫동안 연구와는 동떨어진 일을 했던바, 세세히 답해 줄 경험도 지식도 부족했다.


그래서 관련 정보를 찾아서 주겠다느니, 전문가를 소개해주겠다느니. 하는 식의 답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질문 세례를 받아서, 분류하고, 전문가에게 분배하고, 교육기관과 연결시키고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런 건 무슨 전문가일까. 싶었다.


그나마 현장에서 바로 도움 줄 부분이 있다면, 지역개발 석사논문 주제가 새마을 운동이었고, 지역개발 일을 5년 간 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 이에 대한 조언은 해 줄 수 있었다. 더하여 지역개발 관점에서 식량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경제난을 이해할 수 있었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 식량난 해결은 가난한 지역의 개발과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역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지식수준, 발전 수준, 자원 등에 따라서 해야 할 내용이 달라진다는 경험, 지역발전은 주민 스스로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에 해외원조 행태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신 전문가 분들과 같이 일할 때는 그분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움을 드리는 게 주요 임무였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전문가분들과 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원조 전문가는 이런 분들이 아닐까.’ 지역개발에서 하는 일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분들은 한국에서 하던 일을 아프리카에서 한 것뿐이었다. 달리 해외원조 전문가의 소양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더한 것은 없었다. 예를 들어 코트디부아르에서 경운기 수리와 관리에 대한 교육을 해주신 전문가분들은 한국에서도 경운기 수리와 관리를 강의하시던 분이었다. 세네갈에서 중소규모의 비즈니스를 강의하신 분은 우리나라 벤처기업 전문 컨설턴트였다. 아프리카 쌀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쌀 품종을 개발한 박사님도 한국에서 쌀 품종을 개발하시던 분이었다.


이런 분들 명함에 ‘해외원조 전문가’라는 글귀를 넣어도 될까. 괜히 우스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프리카 구석구석 다니면서, 아프리카의 생생한 모습을 촬영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 아프리카에 전기에너지 원조를 위해, 태양광을 설치하고 전선을 뽑아 가가호호 전등을 설치한 기술인력. 아프리카에 자동차 수리소를 지어주고 인력을 교육한 전문가. 이분들을 뭐라 칭해야 할까?


해외원조는 지역개발과 쌍둥이일지도 모른단 생각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론가들의 주장하는 듣기 좋고 달콤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능력 있는 전문인력이 중심이 되는 생산업, 유통업, 유지·보수업, 건설업, IT 업, 농수산업이다. 그리고 이들이 맘 편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공서비스다. 해외원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과 굶주림이라는 특수한 지역 상황이 개선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해외원조의 본질이라고 본다.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지역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성과를 창출해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해외원조도 성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해외원조를 논할 때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전 세계 모든 국가가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목표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겉으로 보이는 구호가 아닌 SDG의 속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달성하기 어려운 SDG를 구상하는 데 참여했던 전문가에게 그 속살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엔 없었다.


해외원조 전문가. 지역을 국가단위로 확장한 지역개발 전문가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제대로 된 지역개발 전문가는 ‘내가 이 지역을 부자로 만들 수 있다.’라는 과감한 목표를 말하지 못한다. 그 지역 발전의 주체는 주민이기 때문이다. 국가라고 다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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