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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26. 2021

21세기 첨단기술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선 첨단기술이 필요해요.” “최신 장비가 있어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야 좋은 종자를 만들어 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어요.”


아프리카의 식량난 해결을 위한 조언과 참고사항이 가득한 학술지, 보고서에 감초같이 붙어 다니는 게 IT, Bio Tech, Advanced Tech 같은 단어였다. 그렇기에 이런 요구를 받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된바, 이는 현장 경험 없이 단어 뜻에 따라 판단한 어리숙한 초보적 판단이었다. 우리 기준으로 통용되는 첨단장비를 지원했더라면 값비싼 구경거리를 만들거나, 고철 장사에게 좋은 일을 했을 뻔했다. 


첨단을 이야기하기 전, 아프리카 전기사정부터 말을 꺼내야겠다. 아프리카 상당수 국가는 만성적 전기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첨단장비를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선 전기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더하여 첨단장비를 관리하고 운영할 전문가도 크게 부족하다. 고장이라도 나면 바로 고철로 탈바꿈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아프리카에 필요한 첨단장비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첨단장비와 다른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3개국 전문가들을 인솔하여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을 방문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주에 있는 농촌진흥청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질문했다. 


“저건 어느 연구소의 비닐하우스죠?”

“개인이 설치한 비닐하우스인데요.”


“저 유리온실은 국가 연구소인가요?”

“저것도 개인이 운영하는 유리온실입니다.”


그들 눈에 한국 농촌에 펼쳐진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은 첨단장비처럼 비친 모양이었다. 


농촌진흥청에서 소개한 원격조정 ‘스마트 온실’이라든지, 최첨단 농업용 기계. 유전공학 시설은 그들에겐 그야말로 딴 세상의 것들이었다. SF 영화에 나올법한, 접근하기 힘든, 그러니까 도움 되기 어려운 거였다.


김제시에서 운영하는 발효설비를 견학했을 땐, 이들의 집중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한국의 첨단 기술은 우리가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라는 생각이 번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눈을 반짝이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던 첨단 장비는 우리나라가 아닌 필리핀에 있었다. 국제쌀연구기구와 공동으로 추진한 교육과정에서 아프리카 교육생 들은 필리핀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비와 설비에 감탄했다. “우리도 사용할 수 있는 첨단장비”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사용했던,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기기들이었다. 


탄자니아 연구진들이 첨단시설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던 연구소에는 바나나 세포를 떼어내 바나나 나무로 만들어 내는 조직배양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설은 과거의 기억을 소환했다. 1990년대 중반 대학원에 다닐 때, 옆에 있던 조직배양실험실의 실험장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지원해 준 기기 중, 그들이 환호했던 첨단장비는 ‘경운기’였다. 코트디부아르에서 개최한 5일간의 경운기 관리 및 정비 교육 기간 중 알게 된 일이었다. 교육 기간 내내 교육생뿐 아니라 관계자까지도 경운기에 애정이 담뿍 담은 시선을 보냈다. 이런 다목적 기계라면 코트디부아르의 농업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이라는 믿음도 보았다.


원조는 그 나라의 여건에 맞게 해야 한다. 장비도 마찬가지다. 해외 원조 선진국들은 원조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사용하더라도 관리를 못하여 얼마 못 가 고철이 될 운명의 장비나 시설을 지원하는 건 낭비 그 자체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물론, 21세기 첨단시설이 필요한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말하는 첨단과 우리가 생각하는 첨단은 다르다. 내가 말하는 ‘거시기’와 당신이 말하는 ‘거시기’가 다를 수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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