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호구로 만드는 해외원조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예멘은 분단 후 20여 년이 지난 1990년에 통일되었다. 그러나 1994년 내전 후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었고, 2004년 후티 반군의 등장, 2011년 내전의 본격화, 현재는 후티 반군의 수도 사나 점령과 남부의 독립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820달러에 못 미치고 국민 40%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통일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단, 갈등과 가난이 전국토에 확장되는 부정적인 상황이 심화된 듯 보인다.
이런 예멘 상황에 대해, 이구동성을 하는 말은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통일되었다.`이다. 이런 주장에 필자는 의구심이 들었다. 준비가 제대로 된다는 게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다. 그래서 예멘의 통일 전, 통일 후 상황을 파헤쳐 보았으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독자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예멘은 기원전 3000년 전부터 단일국가를 이루어온 역사와 문화가 깊은 나라다. 전 세계에서 즐기는 커피를 처음으로 가공하여 수출한 국가다. 성경에 나오는 시바여왕의 국가이기도 하다. 예멘 국민들에겐 이런 역사적 문화적 자부심이 적지 않을 터이다. 단일민족이라는 의식도 강한 나라다. 그렇기에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예멘 국민들에게,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할 역사적 사명이었을 것이다. 시민들은 통일이 가져올 번영을 꿈꿨고, 지식인들은 밝은 미래를 확신했다.
분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외세에 의한, 냉전이라는 세계 질서로 의한 타발적 분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남부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북부는 오스만 튀르크의 영향권, 남부는 영국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느슨한 남북 분단의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북부는 예멘 아랍공화국으로 남부는 예멘 민주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외세의 간섭을 받다가 종국에는 분단의 현실을 접한 예멘 국민들에게 통일은, 그들 삶의 목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통일 이후 끊이지 않은 예멘의 혼란과 지속된 가난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외부적 영향도 있었지만, 근원적으로 남과 북에 있는 사람들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데에도 문제가 있었던 듯 보인다.
수십 년 간 몸과 뇌에 깊게 새겨졌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 차이는 통일이라는 과제를 달성했다고 쉬이 메워지는 게 아니다.
여기에 남과 북의 부의 재분배, 정치적 참여의 제한은 통일 후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상실감과 자신들의 부로 예전보다 잘 살게 된 다른 지역에 대한 시기와 분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한몫을 했다.
이 와중에서 정치적인 단합 노력은 효과를 보지 못한 듯하다. 편 가르기가 더 우세하게 작동되었다. 북부산악지역에서 오랜 시기 권력을 쥐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 남부지역에서 석유 같은 자원으로 부를 축적했던 사회주의자들, 통일 후 권력을 잡은 북부의 공화주의자들. 이들의 권력다툼은 국민의 분열을 가속시켰다.
급기야 통일 정부에 불만을 품은 남부지역 사람들이 1994년 분리전쟁을 일으켰지만, 진압된다. 북부 산악지역 이슬람을 지반으로 한 종교 공동체 형태의 사회도 자신들의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고, 후티 반군이 태동하게 된다.
2011년 아랍의 봄, 통일 후 권력을 잡았던 살레 정권이 붕괴되면서, 산발적으로 투쟁하던 후티 반군의 세는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후티 반군은 주변국인 이란의 도움으로 예멘의 수도인 사나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식량을 통제하고 있으며, 후티 반군의 일원이 되어야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후티 반군의 세략을 지속적하고 늘려나가는 구조다. 인구의 40퍼센트가 식량난에 허덕이는 나라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남쪽에서도 분리독립을 위한 투쟁이 가열되기 시작되었다. 1994년 정부군에게 패한 남부는 무장투쟁이 아닌 정치투쟁으로 분리독립을 요구하다가, 2017년 재무장을 하고 본격적인 무장투장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분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필자의 의구심이 계속되는 이유를 공유하고 싶어서다. 만약 당신이 예멘 통일의 주역이고, 통일 예멘을 통치한다면 다음 사항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1. 남부는 사회주의지만, 석유 같은 지하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여 부유한 상황이다. 가난과 배고픔으로 힘들어하는 통일 예멘 국민들의 불만을 줄이고, 통일 예멘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남부의 부를 재분배할 필요성이 있다.
2. 북부 산악지역은 오랜 기간 오스만 튀르크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공동체가 지역을 이끌고 있다. 이는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의 역할도 한다는 의미다. 좋게 말하면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종교가 삶 깊숙히 파고든 이들이다. 통일 예멘은 이런 종교 공동체를 주류로 끌어 안기엔 부담이 있었다.
3. 1990-1991년 사이의 걸프전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일하는 수많은 예멘 노동자들을 일자리를 잃게 하였다. 이들이 송금한 돈을 먹고살던 예멘의 수많은 가족들이 궁핍으로 내몰렸다. 이 노동자들은 일시에 대규모로 귀국하는 데, 이는 예멘 내 일자리 부족을 야기했다. 걸프전은 가난한 예멘의 안정을 위해 원조를 해주던 아랍 국가들의 원조를 중단시켰고, 예멘 국민은 통일이 된 후 더 가난해졌다는 불만이 커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예멘이 어떤 준비를 했어야, 오늘날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의문을 풀고자 독일의 통일을 살펴보았으나, 의구심은 풀리지 않았다.
예멘의 통일은, 통일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우리에게 시사점이 적지 않다고 본다.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통일을 진심으로 염원한다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론을 설파할 게 아니라, 예멘과 독일의 통일 후 사회적 갈등과 봉합과정, 현재의 문제, 실패 사례를 연구하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실패한 통일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준비 안된 통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요한 준비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