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마마걸로 어른이 된 사람의 하소연을 들었다. 듣고 보니, 배우자는 열심히 살면서 평안한 가정을 꾸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인 듯싶었다. 하지만 마마걸은 이런 성실만을 앞세우는 평범함이 진저리 나게 못마땅했다. `내가 특별한데, 네가 그따위로 하면 안 되지.` 그래서 이혼하고 싶다 했다. 비록 남편이 매달리면서 징징대도, 아직 어린 애들의 앞날이 깜깜해져도.
마마보이, 마마걸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강건한 신뢰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본다. 자신들이 특별한 것은 달이 지구를 도는 것과도 같은 진리이며, 지구가 자전하는 것과도 같은 진리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바꿀 수 없는 법칙을 부정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짓은 용납되기 어렵다. 특별한 만큼,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마마보이는 자신의 특별함을 뒷받침해 줄 배우자와 생을 같이하여야만 하는 운명이다. 이 사람이 나의 특별한 지위를 죽을 때까지 누릴게 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고 난 후, 결혼을 생각해야 한다. 그 특별함이 유지되지 않게 되면 관계가 소원해지고, 불안해지고, 종국에는 헤어짐이 따라올 수도 있기에 그렇다.
필자는 한때 마마보이의 특별한 대우가 자연스러웠다. 결혼 후에도 마냥 이어질 거란 낙관이 있었다. 그동안 받았던, 누렸던 마마보이의 대우를 지속적으로 받으려 하면 배우자가 어려움에 처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게다가 주변에 친분이 있는 마마보이나 걸들의 생각도 비슷해 보였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오랜 해외 생활은 이런 생각을 밑바닥부터 흔들었다. 마마보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와이프는 시작부터 이런 생각을 뜯어내 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럽이나 미국엔 특별하게 태어나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특별함을 칭하는 단어는 귀족이나 왕족, 대기업의 자손들이다. 코넬 대학을 다닐 때, 케네디 가문의 사람과 같이 공부를 했었다. 같은 과에서 공부를 했기에 몇 년간의 친분이 쌓였다. 그가 케네디 가문이었기에 그 자체로만도 특별해 보였다. 그의 아파트에 초대받았을 때, 그의 삶을 보게 되었을 때, 그 특별함은 필자가 생각했던 특별함과는 거리가 있어 놀랐다.
평소 그의 학교생활에서 그를 판단한 바, 그의 여름방학은 카리브해에서 요트를 즐기는 것이었다. 그에게 파리는 동네 마실 다녀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집구석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건 명품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했고, 같이 살고 있는 파트너를 살뜰하게 보살폈다. 마마보이보단 특별한 사람일 텐데, 그렇지 않았다.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요리도 시킬 수 있었고, 돈으로 파트너를 달래야 하는데 안 그랬다. 일상적인 학생들 사이에 녹아들기를 바라는 듯 행동했다. 그의 집에 요트가 있고 자가용 비행기가 있다는 것을 듣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지인 집 방문은 놀람을 더했다. 성이 있는 귀족 가문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고, 열심히 돌보지 않으면, 깨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다. 부모에게 신세지기 싫어서, 국비 장학금으로 유학을 다녀온 전력도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특별함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정말 대단한 가문의 사람들은 저렇게 치열하게, 오히려 특별함이 없어 보이게 사는데, 왜 나는 그렇게 배우지 못했을까? 내가 누렸던 건,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사회 부적응으로 몰아가는 무지함의 결과가 아닐까?
미국과 이탈리아의 중상층은 마마보이와 걸이 누리고 싶어하는 그 특별함과의 온도 차이가 더 컸다. 물론 캥거루같이 아이를 품안에 넣고, 옴짝달짝 못하게 키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지인 중에는 그런 이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좀 더 자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마마보이와 걸, 그리고 그 부모님에게 드리는 조언이다.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챙겨 줄 수 있는 특별한 배우자만 바라보셨으면 좋겠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마마보이나 걸을 챙겨 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사람과도 인연을 쌓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 불행해질 수 있다. 아이들도 피해가기 어렵다. 결혼시키지 않는게 최선일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결혼생활을 무리없이 이끌게 하고 싶다면, 아이를 마마보이와 걸로 가는 길로 인도해서는 안 된다. 설사 길을 걸어 가게 했더라도, 더 늦기 전에 마마보이와 걸의 완장을 떼어내게 해야 한다. 그게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마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소연을 했던 마마걸이 끝내 이혼할지, 아니면 이 고비를 견뎌내고 그 특별함이 부적응이란 걸 이해하고 고치면서 살아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마마걸이 그 고비를 견뎌내면, 마마걸의 껍데기를 한 거풀은 벗을 거라고 본다. 필자는 조금 더 신속하고 극단적으로 그 껍데기를 벗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