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연봉액은 4억. 10년 넘게 덜덜거리는 디젤차를 끌고 다닌다. 연봉 한 귀퉁이만 잘라내도, 차 한 대는 뽑겠다는 말을 해도, 쓴웃음만 지을 뿐. 그래서 원래 알뜰한 분인줄 알았다. 그러다 며칠 전 하소연을 들었다. 월급 절반 넘게 다 큰 아이한테 빨려 들어가고 있단다.
아니 애가 혼자 한 달에 600도 넘게 쓰냐고 했더니,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물가 비싼 나라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럼 박사학위를 받거나 아니면 무슨 준비를 하냐 했더니. 그것보단 아이가 취직을 포기하고서 혼자 프리랜서일 하면서 편안하게 살 궁리를 하는 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퇴직하면 연금만으로 아이 지원이 어렵다는 게, 선배의 고민이었다.
퇴직하시고 애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며, 일하시는 친한 형님이 떠오른다. 능력 좋고 잘 나가시는 분이었는데, 아이가 죽을 때까지 돈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되었다. 70을 바라보는 형님뿐 아니라, 형수까지도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노후 리스크 중 가장 큰 게 자식리스크라는 말이 과한 게 아니다.
이런 말을 듣다 보니, 필자 스스로가 대견하다. 까딱 잘못했으면, 부모한테, 아내한테 들러붙어 평생 빨대를 꽂는 인생이 될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마마가 철옹성으로 가둬두고, 거짓으로 세뇌시키고, 유리구슬 같이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키웠음에도,
사회에서 마마보이가 되는 걸 어느 정도 막아주고, 아내가 마마보이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덕분에, 적당히 즐기며, 적당히 퇴직을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모 걱정, 아이 걱정하는 자연스러운 인생이 되었다.
그런데 자식 리스크, 새로 생긴 말은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우리 세대에도 있고, 지금도 있는 것뿐. 미래에도 수두룩하게 나타날 것이다. 온실 속 화초보다 더 곱고, 가냘프고, 그러면서도 이기적으로 키운 마마보이가 들러붙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망상에 가까운 착각이다. 들러붙지 않는 마마보이는 오히려 소수일 거라고 본다. 굳이 자식 리스크라 칭할 것도 없다. 마마보이가 갈 확률 높은 미래인데, 왜 리스크라는 말을 붙여야 하나. 그냥 마마보이의 숙명이 더 맞는 말이지.
필자는 아이들이 마마보이로 크지 못하게 최선을 다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적당히 나이 먹으면 알아서 돈 벌어먹고 살아라.` 를 가훈처럼 여기며 살도록 했다. 마마보이로 키우지 않는다면, 소위 자식리스크는 99% 줄일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