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호구로 만드는 해외원조
국익을 챙기라는 해외원조의 새로운 기조는 너무나도 환영한다. 작년에 시작된 분위기가 서서히 현장에도 내려오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익숙한 분위기. 우리나라에서 용역을 주는 업자한테 하는 요구와 너무나도 닮았다. 가난한 나라를 무시하는 마음으로 돈을 주는 모양새가 겹쳐진다.
해외원조의 기본은 나눔과 도움, 인류애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그렇기에 선진국은 외교적 수사를 써가면서 자신들의 본심을 감추고, 최대한 도와주는 말을, 최대한 사랑을 전파하는 말을 한다. 이런 말과 보고서에 우리가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해외원조는 앞을 내다보고 두는 포석으로 대외전략의 한 축이기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횡간의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본다.
우선 국제기구에서 사용하는 언어부터 집어야겠다.
You need to send a project report ASAP. 이런 식의 언어는 안 쓴다.
대신
Could you please share the project report at your earliest convenience?
이런 식의 무척 생소한 영어를 쓴다. 이 영어가 국제기구와 외교가에서 쓰는 영어다. 이런 고급영어가 통용되는 세상에 중등학교 수준의 영어가 모 나라 정부기관으로부터 전송되면, 그리고 이 이메일이 공유되면, 쪽팔리다. 무례하기도 하고 무식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 교차한다.
그러니까. A 부처의 사무관이 B 부처로 메일을 보내는 데, 그 이메일을 중학교 다니는 아이에게 쓰게 하면 어떨까? 그 이메일을 받은 B부처 담당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데 말이죠. 그런 고급 영어는 외교관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익숙하지 않은 경제부처 공무원이 그렇게 할 수 있나요?
1, 2년마다 자리를 바꾸는 세계 유일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 공무원 인사 시스템에서, 이런 외교관 수준의 고급 영어를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욕할 수도 없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된 것인데, 마이동풍. 부정부패가 항상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부정부패에는 신속하게 자리를 돌리는 것만 한 처방이 없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왜 AI의 도움을 받지 않는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외교적 수사에 다 능한 건 아니다. 예전에는 에디터가 도움을 주었고, 요즘은 AI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국제기구는 영수증을 또박또박 챙기지 않는다. 선진국은 그럴 필요가 없어 따박 따박 안 챙기고, 가난한 나라는 어차피 챙겨보았자,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불가해 챙길 필요가 없다. 이런 오랜 기간의 경험으로 세팅된 룰에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기준을 댄다. `우리가 내는 돈이니, 너는 그냥 따라와.`
보고서에 대한 부분, 회의 개최에 대한 부분, 소통 방식에 대한 부분. 우리의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에 대한 고민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고민하면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이조 시대 경국대전의 법규를 일단 들이대고 보는 식이면, 곤란하지 않을까?
그리고 국익이란 말은 삼가야 한다. `수혜국과 대한민국의 보다 긴밀한 협력 증진과 대한민국 지원금의 효율적, 효과적인 활용을 위하여 해외원조를 개선하는 상황’이라는 말처럼 누구나 납득되는 수사가 있다. 해외원조에서 국익을 챙기는 건, 언제나 해외원조의 본질 위에서이다. 인류애적 차원에서 사랑과 도움을 나누는 그 본질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서 외교적 전략과 수사를 더해 실효성 있게 국익을 챙겨야 한다.
필자는 해외원조에서 국익을 챙겨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외교적 수사와 전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건 강조를 덜한 모양이다. 기본이라 생각해서다. 어제 들은 내용이 갑갑해 이참에 강조에 밑줄 쫙이다.
지금은 해외 원조에서 국익 챙기기의 초기인지라, 전환기적 혼선이 있을 거라고 본다. 대한민국 해외원조 전문가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전문가들이 설마 이런 기초도 몰랐을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