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글을 쓰는 이유?

by 이타카

어제 지인을 만났다. 해외원조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지인이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지, `왜 이런 돈도 안 되는, 오히려 귀찮아질 수 있는 쓸모없는 글을 쓰냐`는 질문을 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질문이다. 해외 원조에 대한, 마마보이에 대한. 이런 글은 필자의 경력에 도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기대도 없다.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는 죽음이 당도했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항암치료가 끝난 후, 한숨을 놓고 있는 차에 CT에서 췌장에 난 혹이 발견되었다. 전이란 생각, 이제 죽을 거란 생각. 이때 삶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이 걸어가는 길의 끝은 죽음이다. 죽음 뒤에 남는 건, 없다.


항암 과정에서도 죽음을 생각할 때, `내가 무엇을 했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열심히 살고 돈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긴 했는데, 죽음이 당도한 마당에 난 무엇을 했나? 멋지게 놀아본 것도 아니고, 대단한 무엇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일만 했다.


췌장에 난 혹은 그런 의문을 증폭시키고 구체화했다. 죽음을 마음으로 준비했다. 가족도 그런 낌새였다. 췌장에 난 혹은 물혹으로 판명되었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죽을 거라 확신했을 때의 그 느낌에선 벗어나질 못했다. 또다시 이런 생각을 할 순간이 틀림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죽을 때 `최선을 다해 보탬되는 일을 했다`라는 위안을 가지고 싶어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갔다는 흔적을 좋은 방향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분들을 만나고 연락하고, 밥도 사고 그러면서 그들의 생각과 아쉬움을 듣는다. NGO, 정부 관계자, 다른 기구의 사람들도 선이 닿는 한 만나고 물어본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묻는다.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글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 해외원조의 한 구석이라도 바뀌면, 죽음에 이르러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서 조금이라도 보탬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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