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대한 인도적 지원

대외전략의 축 해외원조

by 이타카

우리나라 대외전략의 틀에서 시행되는 이란의 인도적 지원을 환영하는 바이다. 이와 같이 해외 원조를 대외전략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국내 반응을 보면 찬반으로 엇갈리는 면이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란 국적의 사람들은 우리 정부의 결정에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해외 원조 현장에서 보면, 국제사회는 외교적 언어 측면에선 극히 이성적이고 인류애적이고 선함이 깃든 듯하다. 하지만 매사에 계산기를 안에 두르고 쉼 없이 자판을 두드린다. 처음에는 놀랐고, 역겨웠고, 이 세계의 생태를 이해하니 해외 원조의 본질도 덩달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그 나라의 문제는 그 나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답에 가까운 듯싶다. 너무 매정한 거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근대사만 들춰봐도 답을 유추할 수 있다. 그 나라의 발전과 민주화에 개입하고 싶어도, 무척이나 어렵고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무력으로 바꿔 보려 해도, 쉽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이 그렇고, 리비아도 그렇고, 후티 반군이 득세하는 예멘도 그랬다. 몇십 년 전의 베트남은 당시에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르완다의 인종청소에 전 세계가 비난했으나, 외부 세력이 개입할 틈은 거의 없었다.


이란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란은 왕정의 부정과 부패의 반기를 들고 새롭게 태어났던 국가다.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국민의 불꽃 같은 염원이 실현되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정부가 못마땅한 주변국에서는 시비를 걸고 전쟁을 벌였으나, 그 결과 정권은 더 공공해지고 현재의 이란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이란을 바꾼다?


현 상황에서 이란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외전략을 풀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대외전략의 한 측면으로 해외원조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본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란 국민이 고통을 받는 건 팩트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고통을 나누는 건, 나라를 불문하고 해외원조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 시비 걸 나라가 있을까?


물론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맹렬하게 공격했을 때도, 수많은 나라가 가자지구에 구호물품을 보냈다. 그중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례를 돌아볼 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본다. 반면에 꽉 막힌 정세에서의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하기 어렵다.


돈으로 따지자면 탄도 미사일 한발 가격에도 못 미치는 인도적 지원금으로 수천 명, 수만 명이 고통을 덜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유 수출의 키를 잡고 있는 이란 정권에 긍정의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게다가 해외 원조에 소요되는 예산은 이미 작년에 잡혔다. 그 예산은 어디고 써야 한다. 그게 선진국 대한민국의 위상이고 국제사회에서의 약속이다. 해외원조에 있어 우리보다 앞서간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외전략의 축으로 해외원조를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그걸 제대로 못해서, 우리나라가 해외원조 세계에서 호구 취급을 받거나, 졸부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진정한 대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서, 해외원조를 대외전략의 축으로 활용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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