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주사를 맞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데,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복을 입지 않았으면, 환자인지 모를 정도로 힘이 넘치는 사람이 내 앞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내심 그가 부러웠다. 거의 완치가 된 환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기뻐한 이유는 그의 병이 완치에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 명은 초상을 치른다는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망자와 마주쳐야 되는 그의 입장에선 기뻐할 만하다. 내가 있는 층에선 하루에 한 명씩 실려나가진 않으니까.
그는 스스로를 잘 참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도 참기 어려운 건 척수에서 골수를 빼는 거라고도 했다. 그의 병명은 혈액암이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걸리는 10대 암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혈액암 환자는 생각보다 많은 듯 했다. 지레짐작으로 우연히 내 주변에 많이 모인 거겠지 싶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럴만도 했다.
혈액암은 한 종류가 아닌 4가지 종류의 암(백혈병, 다발성 골수종, 비호지킨 림프종, 호지킨 림프종)을 통틀어 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14세 이하에서는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며, 15세에서 35세 이하에서는 2번째로 많이 걸리는 암이기도 하고. 꾸준히 늘고 있는 암 유형이다. 그러니 주변에 혈액암 환자들이 많았던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출처 : WHO-IARC List of Classifications by cancer site
어떤 이유로 혈액암 환자가 늘어나는 걸까.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더. WHO IARC 에서 제시하는 원인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암 중에서 원인이 가장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크론 병 거부 반응 예방을 위한 면역억제제인 이뮤란이란 약품의 원료인 Azathioprine, 그리고 Cyclosporine가 눈에 맨 처음 들어왔다.
그 다음이 암치료제 들이었다. 항암제는 암을 치료도 하지만, 암도 유발하는 이중성을 가진 독한 화학물질이었다. 항암제로 쓰이는 Busulfan, 백혈병이나 호지킨 림프종 등 치료에 사용되는 Chlorambucil, 난소암, 유방암, 백혈병, 소세포성 폐암 등에 사용되는 Cyclophosphamide, 일부 혈액질환의 방사선 요법에 사용되는 Phosphorus-32, 과거 암 치료에 사용되었던 Semustine, 방광암 치료 등에 사용되는 Thiotepa, 난소암이나 고환암 등 치료에 사용되는 Etoposide, 다발성 골수종이나 난소암 등에 사용되는 Melphalan, 호지킨 림프종에 사용되는 MOPP 등이 있다.
바이러스도 혈액암을 유발하고 있었다. Epstein–Barr virus, Hepatitis C virus,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type 1, Human T-cell lymphotropic virus type 1, Kaposi sarcoma herpes virus.
농약이나 살충제 성분도 있었다. 이나 옴 등을 방제하는 살충제인 Lindane, , 목재 방부제이자 살충제이며 미국 환경성에서 사용금지를 제안한 pentachlorophenol 이다.
이외에 발암물질로 널리 알려진 벤젠, 합성고무 제조에 사용되는 1,3-Butadiene, 일부 골수 이식 치료에 관련된 Treosulfan, 접착제나 코팅제 등에 사용되는 Formaldehyde, 담배, X-선이나 감마선 등이 혈액암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다.
위에보단 덜하지만 혈액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들도 상당하다. 살충제 성분 농약인 Malathion, DDT(현재 금지됨), 말벌 등 퇴치 등에 사용되는 농약인 Diazinon, 세균 감염 시 치료제로 쓰이는 Chloramphenicol, 화학용매로 사용되는 Dichloromethane, 고환암이나 폐암 등에 사용되는 Etoposide, 혈액암 치료제 등에 사용되는 Teniposide, 전류에 의해 생성되는 극 저주파 자기장, 페인팅, 말라리아, 담배 등이 있다.
암 환자가 더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혈액암 자료를 통해 보다 명확해진 기분이다. 항암제가 암 유발물질이니. CT나 X선도 암 환자가 피할 수 없는 필수 코스고.
대부분의 백혈병은 가족력, 그러니까 가족 누군가 백혈병에 걸렸으면, 본인이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유형의 암은 아니라고 한다. 백혈병은 골수세포 DNA의 돌연변이에 의하여 발생하는 암인데 대부분의 경우 부모로부터 유전되지 않는다. 다만 백혈병과 관련된 유전질환이 있는데, 다운 증후군, 클라인펠터 증후군, 판코니 빈혈, 블룸증후군, 운동실조-모세관 확장증, 신경 섬유종증, Li-Fraumeni 증후군 등이다.
다발성골수증은 가족력이 일부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는 미미하다고 한다. 단일클론감마병증, 단일형질 세포종이 있는 사람은 다발성골수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호지킨 림프종의 경우, 형제자매가 이 병에 걸렸을 때 호지킨 림프종에 걸릴 확률이 높으며,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매우 높다고 한다. 하지만 그외 가족력에 의한 발병은 흔하지 않다. 면역과도 상관이 있는데,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 장기 이식 후 면역 억제를 위해 약을 복용하거나 면역 질환이 있는 사람이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비호지킨 림프종은 부모, 형제, 자매가 병에 걸린 경우 발병확률이 높은 암이다. 이 역시 면역이 떨어지는 상황, 또는 류마티스성 관절염, 전신성홍반성루푸스 같은 일부 자가면역질환자는 발병확률이 높다. 비만도 비호지킨 림프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