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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May 07. 2021

21세기 식품안전성

FARM TO TABLE

식품안전성. 관심은 있었으나 그리 깊게 알지 못했던 분야였다. 전공분야도 아닌데 깊게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처럼 잘 먹으면 되는 거지,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삶이 지속될 거라 생각했었다. 공무원이 전공지식과는 무관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을 때였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던 시기의 생각이기도 하다.


2001년 발령을 받고 담당한 분야가 한약이었다. 대학원에서 돌연변이를 전공한 사람이 한약. 쓴웃음이 났다. 한약을 담당하기 이전에는 검역일을 했었기에 이미 어느 정도 단련은 되었지만 여전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언젠가 우리나라 공무원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전문성을 고려하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의사처럼 한약의 약리적 성분, 의학적 효능에 관련된 일은 아니었다. 한약을 얼마만큼 생산하고 유통하고 수입하는 가를 알아 알아보고, 한약 생산과 관련된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었다.


2001년 9월쯤으로 기억된다, ‘중국에서 한약 GAP를 실시한다.’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GAP? 고개가 절로 꺄웃거려졌다. 내 머릿속 GAP는 의류 브랜드 이름이었다. GAP란 회사가 한약재도 다루나? 청바지와 티셔츠나 잘 만들지.


헛웃음도 나왔다. 얼마나 중국이 다급했으면, 신뢰도가 낮은 중국산 한약재에 GAP를 입히나. 청바지를 입은 한약일까? 이런 상상이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란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GAP는 Good Agricultural Practice라의 축약어였다. ‘훌륭하게 농사를 짓는 법’ 정도로 해석된다. 중국은 유럽 천연 약재 생산기준으로 사용되는 GAP를 들여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한 조치일 듯싶었다.  우리나라 한약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정보 같았다.


GAP에 대한 내용을 소상히 알고자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답은 ‘그거 의류 브랜드 아녀요.’ 수준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전문가에 대한 실망감이 일었다. ‘중국에서도 아는 내용인데 우리나라 전문가가 모른다?’ 인터넷을 경유하여 유럽에서 시행하는 천연 약재 GAP를 알아보려 했으나 세세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되나. 영어로 이메일을 써서 관련된 기관에 문의해야 하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솟았다. 국제기구와 관련된 부서에 문을 두드렸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부서 직원들에게 강하게 요청하기는 어려웠다.


중국에서 하는 일인데 별거 있겠어? 싶었다. 전문가도 모른다는 내용이니. 이만큼 노력했으니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국제기구와 연계된 부서에서 문서가 왔다. CODEX라는 곳에서 제시한 GAP 기준서(안). ‘CODEX? 여기에도 GAP가 있네.’ 문서는 두툼했다. 10 폰트로 적인 영어가 깨알같이 A4 용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가 갈림길이었다. 굳이 내가 해석할 필요는 없었다. 전문가가 아니니 오역을 할 우려도 있었고.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결과를 기다려도 되었다. 내가 시간을 쪼개고 휴일을 반납하면서 해석한 이유를 찾자면 초보라서 였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해야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해석을 시작하여 마무리를 짓는 데까지 한 달 넘게 걸렸다. 근무하면서 틈틈이 하느라. 이해되지 않는 단어와 내용을 이해하느라. 그리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라는 CODEX의 실체를 파악하느라.


GAP는 농산물 생산과정의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지침이었다. 농약, 중금속, 미생물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CODEX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상은 한약이 아니라 과일 및 채소류. 내 업무와는 거리가 있는 분야. 알게 된 사실이니 보고를 했다.


‘우리나라도 국제기준에 걸맞은 농산물 안전성 기준을 도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검토할 필요가 있겠네. 그럼 네가 해봐.’


이렇게 해서 대략 3년의 안전성 업무를 시작했다. 3년이 지난 후, 안전성 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의 결정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 못된 것이었다. 힘들더라도, 이해해주는 이가 없더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야 했다. 암에 걸려 병실에 누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격하면서 비로소 철이 들었다.




Farm to Table 이란 말이 있다.  21세기 식품 안전성 확보를 위한 근간 정도로 해석되는 내용이다. 2002년 우리에겐 생소했던 GAP를 디테일하게 파악하고자, 영국 정부기관에 방문했을 때 배웠다. 농장부터 식탁까지 식품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선진국의 정책방향이기도 하다.


아무리 삼성에서 스마트폰을 잘 만들어도, 부품에서 에러가 있으면 제대로 된 스마트폰을 생산할 수 없다. 식품도 마찬가지다. 농장단계에서 부터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가공을 잘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도 소비자 식탁에 놓이는 것은 불안한 식품이다.


그러니 농장에서 농약, 중금속, 미생물, 방사선물질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들 중에는 현재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는 것들도 있고, 미래에 발암물질로 분류될 여지가 있는 잠재적인 물질들도 있다.


농산물에 농약을 치지 말고, 중금속도 들어가지 않게 하고, 미생물도 모조리 죽이면, 방사선 동위원소도 모조리 없애 버리면 좋겠지만, 최신 과학기술을 모조리 동원한다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중금속, 화학제, 독성물질, 미생물, 방사선물질. 이것들을 1도 없이 없앨 수 있을까. 논과 밭에서.


바람만 한번 휑하니 불어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미생물들이 날아들어온다. 미세먼지라도 불어오면 그 안에 엄청난 숫자의 화학성분과 중금속 성분이 들어있을 수 있다. 차량이라도 한번 스쳐가면 매연에 함유된 암 유발물질들이 사방으로 퍼진다. 작업을 하다 담배를 펴도 그 연기안에는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자연계에서 방출되는 방사선 동위원소와 환경호르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현실적인 방도를 찾아야 했다. 현실적의 기준은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다. 얼마만큼의 화학성분, 중금속, 미생물, 방사선물질을 감내할 수 있나를 우선적으로 알아야 했다. 그다음은 이들 물질을 최소화하거나 차단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고안해야 하고. 이들의 종합되어 탄생하고 발전한 개념이 HACCP(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s)이다.


HACCP은 사실 우주에서 비롯되었다. 우주에서 장시간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가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1960년대 NASA에선 이를 대비하기 위한 식품 안전 관리방법을 찾게 되는 데 이것이 HACCP의 출발점이다. 1994년엔 HACCP 국제협의체가 발족한다. 그 후 HACCP은 식품뿐 아니라 의약품이나 화장품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HACCP는 밀폐된 공간, 그러니까 공장에서 식품을 안전하게 생산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면 사방이 뻥 뚫려 있는 논이나 밭에서는 그 효용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원료 농산물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가공과정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안전한 식품을 만들어내긴 요원하다.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다.


21세기에 이르러 농산물의 생산단계에서 식품 안전성을 확보하자며 국제기구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정립한 개념이 GAP다. ‘훌륭하게 농사를 짓는 법’의 실체는 ‘안전하게 농사를 짓는 법’이었다.


HACCP 개념이 적용된 게 GAP이다 보니, 과거의 농법과는 다르게 농업인이 배우고 지켜야 할 꼼꼼한 규칙들이 있다. 학습에 적극적이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만이 GAP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해외에서는 거대한 농장이나 농업회사에서 GAP를 한다.


21세기 식품 안전성 확보의 개념이랄 수 있는 FARM TO TABLE. 그 근간에는 HACCP의 개념이 흐르고 있다. 현재 과학 수준으로 가능한 식품안전관리다. 농장에서는 GAP가 가공공정에서는 HACCP이 가정에서는 식품안전관리 요령이. 이 모두가 제대로 되어야 FARM TO TABLE이 완성된다. FARM TO TABLE에는 현재의 기술로 실현 가능하냐, 그렇지 않으냐가 핵심이기에 정치적인 고려요소는 배제되어야 한다. 국민의 식탁에 안전한 식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선진국 대한민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정책방향이기도 하다.


1년에 8만 1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암. 암 예방에 있어서도 식품 안전성 확보는 필수다. DNA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돌연변이시켜 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식탁에 올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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