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일을 할 수 있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바로 그 시간이 올 때 우린 서로 어색함을 느낀다. 상대방은 생각보다 무거운 병명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하는 눈치를 보이고, 나는 거기에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해야 하나,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해야 하나 순간 고민을 한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 머릿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살까. 그러니 그들의 당황은 자연스럽고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곧이어 내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나를 동정만 할 뿐 나와 함께 일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지?' '나와 거리를 두면 어쩌지?'
그래서 때로는 가능하면 내가 아픈 게 정말 '가벼운' 일인 양 설명하기도 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때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나의 증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내가 더 이상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가끔 상상을 한다. 지금 증상이 심하지도 않고, 늘 그래 왔듯이 현기증이야 숨길수 있지만 혹시 내가 더 많이 아프게 되면 사회에서 도태되진 않을까.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사람들은 내게 동정심이라는 낙인 이외엔 줄 수 없는 게 없는 시간이 오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한국의 장애인 고용 광고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메시지는 명료했다. 그들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실수하고 넘어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그건 비장애인들처럼 그런 순간일 뿐이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내겐 그렇게 단순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모든 장애인들이 그렇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않았을 텐데. 심지어 나의 경우에도 머리가 많이 아프고 몸이 안 좋아졌다고 느낄 때는 기억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짐을 느낀다. 그럴 때는 정말 내가 앞으로도 학문 세계에 있을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에겐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능력을 가졌다는 눈가림 막이 아닌, 함께 사회를 살아가고자 하는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를 중증 장애인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중증 암환자 분들보다도 내 상황은 훨씬 경미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죄송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 지도교수님께 이메일을 드렸다. 죄송하지만 당장 다음 주에 독일에 돌아가기로 한 비행기를 취소해야겠다고.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의사도 더 이상 독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말한 터라 교수님도 내게 박사를 포기하라고 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교수님은 내 건강을 제일 먼저 걱정해 주셨고, 한국에 와서 날 만나주셨다. 당신도 암에 걸린 적이 있었다면서 건강을 먼저 챙기라면서 그 당시 장학금 지원에 필요했던 연구계획서도 꼼꼼히 지도해주셨다. 박사 장학금을 주는 독일 재단에서도 원래 규정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지낼 수 있도록 날 배려해 주었다. 이런 배려들이 내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감사한 기회들이다.
나도 사람들을 만날 때 색안경을 끼고 대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아마 우린 서로 잘 알지 못해서 더 그럴 거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들과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면 조금 더 빨리 그 안경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