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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Sep 18. 2020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두렵다.

아직도 그때의 감정과 마음이 선명한 흉터처럼 생생하다.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너무 낮아 보였던 그때. 살고 싶었던 만큼 마음이 다쳤고, 좌절했고, 죽을 것 같았다.


지금도 완치된 상태가 아니라 진단을 '유보'한 상태, 혹은 좀 더 긍정적으로 추적검사 중이라 그때 그 두려움은 종종 다시 찾아온다. 어지럼증이 심해지거나 검사를 며칠 앞둔 날이 보통 그렇다. '이번엔 종양이 커지면 어쩌지?' 그러면 순간 그동안 누렸던 시간들이 사치였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절실한 마음이 된다.


작년에 정보를 얻기 위해 뇌종양 커뮤니티에 가입했는데 나중에는 나의 이야기도 남겨두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쪽지를 받았는데 다른 뇌종양 환자 혹은 환자 가족들이었다. 기능의학 병원에 대한 자세한 정보, 식이요법 방법 등을 알고 싶어 했다. 누구 하나 대충의 마음으로 쪽지를 보낸 사람은 없으리라. 우린 정말 내일을 바랐다.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제발 오늘 하루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한동안 위로를 받았던 작가님이 있었다. 암투병 중이신 작가님이셨는데 그분이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그림책을 통해 내가 겪는 마음의 통증이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간은 지났고 그 작가님은 더 많이 아프시게 되었다. 지금 나의 응원이 그분에게까지 가닿지 않아서 안타깝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으시길 바라면서. 모든 아프고 슬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힘이 될까.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일지 모른다. '죽음'에 다다르는 과정을 생각하는 것도 괴롭고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힘겨운 일이다. 무엇보다 힘들고 슬픈 건 세상에 남겨두고 가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가 없다. 나 때문에 슬퍼할 가족들, 연인, 친구들.. 내가 없으면 부모님은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얼마나 슬퍼하실까. 가끔씩은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그저 버티고 서 있어야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내 존재의 끝이 아니라고 믿는 것. 내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믿음도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없어진 세상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모든 삶의 형태는 이젠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 번째 결론은 지금,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앞으로 얼마나 아플 건지, 얼마나 살 건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 시선을 돌리려고 나를 설득했다. 그러자 다시 할 일들이 생각났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힘도 생겼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늘 감사하다. 어떤 사람이 보면 '뇌종양 일지 모르는' 여자가 일도 잔뜩 벌려놓고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그저 내게 주어진 영역에서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내일을 꿈꾸며 살기로 했다.


아무도 아프지 않은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 전쟁도, 아픔도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도 잘 알고 있으니 그저 매일 작은 기도를 할 뿐이다. 오늘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일이 있을 수 있도록.


가끔 누리는 오후의 힐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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