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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l 20. 2020

나에게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올까요

작년 여름은 정말 더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독일어를 배우겠다고 남산을 오르내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깐 지내는 한국에서 최대한 바쁘고 열심히 살겠다고 공부도 여행도 열심히였다. 날씨만큼이나 내 생활도 치열했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날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처음 아프단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들었을 때 조금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현실감이 없었고 수술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이야기에 오히려 안도했다. '뇌종양 수술하면 머리 밀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두개골도 뚫어야 할 텐데 무서워' 뇌종양이 어떤 아이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생각이었다.


입원과 퇴원, 검사를 반복하고 뇌종양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니 내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낮다는 걸 발견했다. 의사 선생님들은 대게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숨골에 교모세포종 추정진단이 나왔고 스테로이드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염증 가능성이 적으니까 정말 나쁜 악성 종양일 확률이 높구나. 그리고 이 아이들은 보통 아주 빨리 자라서 나는 아마 일 년이나 이년을 살기 어렵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객관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의학 저널과 네이버, 구글 등 정보의 세계를 헤엄치며 '나와 같은 경우에도 살 확률이 있을까'를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원하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주 간격, 한 달 간격으로 한번 찍는 MRI에서도 이상하게 종양은 작아지지도, 커지지도 않았다.  


조직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도 내게 어떤 처방을 해 줄 수 없었다. 종양이 변할 때까지 기다려본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이 힘겨웠다. '항암을 해야 하는 걸까?' '방사선을 해야 하는 걸까?' '결국은 죽을 텐데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보험금 나오면 해외로 죽을 때까지 여행 갈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이왕이면 치료도 받고 싶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는 시간이었고, 마음의 우울감이 짙어져 갔다. 앞으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경험해 본 적 있는가? 그건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머리로는 나를 달래려 애써보지만, 마음이 자꾸만 쳐지고 힘겹다. 어딜 보아도 앞으로의 시간이 나보다 많을 것 같은 타인이 부럽기도 한 그 마음.




그러다 몇 권의 책을 만났다. 그중에서 [하버드 의대는 알려주지 않는 건강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 어떤 식생활을 할 것인지에서부터 시작해 마음가짐까지 바꾸어 가면 책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처럼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과학과 의사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의학저널과 내 생존확률을 찾는 일은 그만뒀고 인생을 즐기는데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서 바뀐 생각 중 하나는, 내게 찾아온 종양이라는 놈이 그리 나쁜 놈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 살기가 힘들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내어서 이렇게 커진 것이고, ‘이 아이는 내가 진짜 행복해졌을 때 나를 떠나갈 거야.’ 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만들어냈다.


작년 12월 31일 이후로 종양은 놀랍게도 계속 작아지고 있다. 하지만 어지럼증이 심해지거나 몸이 쳐질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왠지 모르게 또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곤 한다. '아직 완치가 아니잖아. 결국 죽으면 어쩌지?' 그래도 평소엔 아프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지내려 하고, 또 이따금 지금 얻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소중히 써야겠다. 이렇게도 생각하기도 하는 나날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얼마 전에 본 영화다. 한차례 아프고 나서 그런지 내내 주인공 정원에게 이입하며 보았다. 영화는 현실처럼 담담했다. 드라마처럼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가족들이 내내 울상으로 지내지도 않았고, 시간도 일정한 음을 내며 달려갔다. 한 번 정원의 마음이 터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 가족도 내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려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등바등 겨우 붙잡고 서 있으려 했다.


친구들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함께 있어주고 싶어 했다. 정원의 친구들처럼 시간을 저장하고 싶어 했다. 어색 한쪽은 나였다. 내가 아프단 걸 모르는 친구에게 '나 뇌종양이래'라고 말하기가 싫었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게 힘이 되어주었고 내 옆에 있어주었다.



정원이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렌즈에 비췬다. 마치 그동안의 할머니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다. 정원은 그즈음에 죽음과 더 가까워져 있는데, 결국 죽음에 가까워지고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원에게 크리스마스는 8월이 되었다. 다림을 만나고 인생이 아름다워진 그 시간이 그에게는 크리스마스였다. 다림에게도 8월은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기를. 비록 정원에게 크리스마스는 다시 오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시간을 사진 속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정원과는 다르게 앞으로도 크리스마스가 계속 오기를 바라고 있다. 내 방식대로 시간을 저장하면서 앞으로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쌓이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의 시간은 공평하지만 또 다르게 흘러간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데 순서는 없다고 하는 말은 정말 매정하다. 내가 아프다는 걸 생각하고 지내면 매일이 살얼음 같다. 그러나 또 순간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이런 역설은 재미있다. 그래도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고 지내고, 가끔씩 꺼내어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러다 정말 다 나았으면 엄청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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