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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l 09. 2020

친구의 쉼표를 도와주고 왔다

"진짜 부자는 시간 부자래"

"그건 난데"

"그렇네 흐흐"

"근데 난 진짜 거지야"


직장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 다녀왔다. 시간은 많지만 돈은 궁한 내가 이번 여름엔 정말 아무 곳도 가지 않으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결심이 무색하리만치 금세 친구와 충동적으로 제주 여행을 결정해 버렸다. 재고하면 못 가는 게 여행이라는 게 어느샌가부터 내 신조인가 보다. 딱 두 번 생각해서 괜찮으면 결정하고, 취소는 없다. 앞으로 진행만 있을 뿐이지.


제주행 비행기표가 너무 저렴해서였다. 그리고 친구가 퇴사를 생각할 정도로 힘들다는데 같이 가서 힘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계획하는 건 내 특기이니까. 여행을 부추겨주는 누군가 생기니 모든 건 일사천리였다. 떠나고만 싶었던 친구는 '제주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너무 기뻐했고 그런 친구를 옆에 두고 '그런데 나 생각 좀 해볼게'라고 다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내가 저렴하게 여행을 계획하기로 했고 우리 여행은 소박했다. 그리고 담담했다.

 

물영아리오름


저녁이 다 되어 제주에 도착하니 이튿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물영아리 오름에 도착하니 비는 슬금슬금 거칠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발은 진흙에 푹푹 꺼졌다. 아직 수국은 다 피지 않아 풀숲에 초록이 더했다. "몸이 힘드니 잡생각이 없어지는 게 참 좋네." 전날에도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던 친구가 말했다. 나도 옆에서 한숨이 나왔다. 우울증. 화병. 가슴 답답함. 정신적 스트레스. 육체적 장애. 한국이라는 복작복작한 사회에서 경쟁하듯 사는 법만 배워온 우리에겐 점점 많은 것들이 버거워진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한꺼번에 분출되기도 하고 조금씩 비집고 나오기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오름이였는데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비는 멈추지 않았고 우리는 자꾸만 길을 잃었다. 처음부터 습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올라간 우리 실수였다. 세 시간 정도를 나무 사이를 헤매며 걸어 다녔는데 '사서 고생'한 날이었다.


"난 젊어서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너무 싫어"

"나도 고생하는 거 싫어"

"사실 힘들다고 하면 주위에서 다 해주는 사람 따로 있거든"

"근데 우리 지금 하는 건 고생까진 아니야. 어드벤처지"


처음엔 운동화가 젖을까 봐 웅덩이 사이를 조심조심 피하며 걸어 다녔지만 시나브로 신은 발을 들을 때마다 비에 젖어 무거워져 결국은 계곡물에서 걸어 다니는 기분으로 넘쳐흐르는 물도 피하지 않고 지나다녔다. 어느덧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일은 집에 무사히 돌아가는 일이 되었고 길을 찾았을 때의 그 소박한 기쁨도 그 당시 우리에게 전부가 되었다. 마음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복잡했던 친구의 마음도 자연이 조금 위로해 주었던 것 같다. 우릴 고생시키면서 더 좋은 것을 내주었다.


하도 해변


날씨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셋째 날은 구름만 조금 있고 맑은 날이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제주 바다에 왔다. 날이 좋고 마음이 좋아 뙤약볕 아래 친구와 두 시간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시절 영국에서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하며 시간을 쌓아왔다.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그 시간을 더듬어 보는 것도, 함께 외국에서 알고 지내는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리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도 모두 즐거웠다.

 

지난밤 함께한 패디큐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행이라는 건 그 무엇보다 나를 좌절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왔다. 아직도 때때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좋아지면 마음에도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듯이 금방 감사와 긍정적인 기분이 돌아온다. 나는 이렇게 내 마음의 탄성력에 따라 내가 괜찮은가를 가늠하곤 한다.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줄곧 작년에 내가 힘들었을 때 생각이 났다. 부모님 집에 가는 제주도 비행기를 타고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힘겹게 숨을 쉬던 내 모습. 그때는 정말 겨우 겨우 마음을 붙들고 하루를 버티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들도 모두 지나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조그만 즐거움이라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해녀박물관 평상에 누워


하도 해변에서 이동해 늦은 점심을 먹고 해녀 박물관에 다녀왔다. 위미에서 보낸 시간이 몇 달은 될 텐데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해녀박물관까지는 한 번도 오지를 못했었다. 매번 생각만 하고. 하도 해변, 세화 모두 처음 가본 곳이었다. 그래서 셋째 날 여행은 친구의 추천을 온전히 믿고 움직였는데 백 프로 만족한 날이었다. 해녀박물관에 있는 평상에 누워 또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이런 거야말로 여행의 백미랄까.


'저녁 여섯 시까지 물질을 하고 여덟 시에 아기를 낳았지.'

'아기를 낳고 사흘 후에 다시 물질을 했어'

'물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아기 젖을 못 먹이니까 애 아빠들이 아기를 업고 와서 엄마들이 물에서 나와 불을 쐘 때 젖을 물리려고 기다렸어' -해녀박물관에서 해녀들 이야기


우리는 가만가만 이야기 하곤 했다. 여행 동안 수다를 떨기도 했고, 또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기도 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나의 바람은 '친구가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마음도 잘 정리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깨달았다. 잊고 있었지만 여행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순간은 과정의 연속 아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순간이 모여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주겠지. 우리의 시간이 너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기를 바란다. 또 하나. 힘이 들 때, 죽을 만큼 힘이 드는데 끝까지 해낼 필요는 없어. 너도 잘 알고 있잖니. 우리가 물영아리오름에 끝까지 오르지 않고도 행복했던 것처럼 우린 또 다른 길에서 행복할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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