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비 신혼부부 친구의 짧은 한국 방문 이야기
2012년 교환학생 기간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나의 집과 한국을 다녀갔다.
영국, 독일, 헝가리, 싱가포르, 스페인, 캄보디아.. 등등.
처음 외국인 친구를 한국에서 맞이했을 때는 실수도, 어려움도 많았다. 우리의 여행이 생각보다 뻘쭘하게 흘러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나의 여행기에는 여러 장르의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여행을 생각하면 자꾸만 다양한 기억들이 눈앞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기억들을 정리하며 떠오른 생각이 있다. 지금껏 다양한 취향을 가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한국을 여행하며 나 스스로의 요량이 생겨났을까? 어떻게 하면 외국 친구들과 한국을 "잘" 여행할 수 있을까?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을 성공적으로 소개하고, 잘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었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의 요령과 경험이 생겼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면 스스로도 정리가 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맞이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한국을 '잘' 여행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세 가지: 날씨. 센스, 그리고 경험.
2018년 4월. 싱가포르에서 곧 결혼을 앞둔 친구 커플(내 친구와 친구의 남자 친구)이 한국으로 웨딩사진을 찍으러 왔다.
4박 5일 정도의 짧은 일정이었고, 그중 이틀은 이미 웨딩사진을 찍는데 예약을 한 상태였다. 한국을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였다.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아무 정보도 가지고 오지 않은 상태였고, 두 사람 모두 한국 여행이 거의 처음 (내 친구가 어릴 때 한국에 가족여행으로 와 본 게 다였다)이었기 때문에 나의 가이드를 전적으로 의지한 상황이었다. 즉, 본인들이 가고 싶은 여행지가 없었다.
친구들은 웨딩사진을 찍기 위해 한국에 왔고, 당시엔 벚꽃이 만개했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이 오기 며칠 전에 이렇게 일정을 짰다.
토요일 도착 - 드레스 및 촬영 관련 친구들 개인 스케줄, 저녁 식사는 함께.
일요일 - 오전 친구들 개인 스케줄, 점심부터 서울투어 (경복궁 - 인사동 구경 - 북촌 한옥마을 - 남산 - 후암동)
월요일- 오전 친구들 개인 스케줄, 오후 과천 서울대공원 (벚꽃구경)
화요일 - 웨딩사진 촬영
수요일 - 출국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따뜻해야 할 봄날에 갑자기 추위와 비바람이 찾아온 것이다. 친구가 여행하기로 한 그 주간에. 한국에 도착한 첫날 친구들을 저녁식사에서 만났는데 예상치 못한 추위에 하루 종일 달달 떨던 친구들은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추위와 피곤에 절어있었다). 거기에 날씨예보를 확인해보니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요일은 모두 비가 올 것 같았다. 결국 여행 스케줄을 모두 바꾸기로 생각했다. 일요일은 무조건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고,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서울대공원을 가고 월요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다음날은 비가 오지 않았고, 대공원에 사람도 별로 없어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코끼리 열차를 타고 동물원에 내려서 벚꽃사진을 찍다가 다시 돌아와 리프트를 타고 왔다. 하지만 갈 때 리프트를 타고 올 때 코끼리 열차를 탔으면 공원 한 바퀴를 빙 둘러보고 올 수 있어서 더 좋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평소에도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막상 여행을 시작해도 호기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둘러본다거나, 더 많은 장소에 가 보고 싶은 욕심이 없다. 내 친구의 남자 친구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몸 따습고 나른한 곳에서 쉬는 게 부지런하고 보람차게 여행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여기는, 나와는 여행 성격이 많이 다른 타입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내 친구와 친구의 남자 친구. 맞춰주기 위해 엄청나게 여유로운 여행을 짜기로 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서울대공원 산책은 친구 커플에게 제격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볼 수 없는 봄날의 날씨와 벚꽃 풍경은 친구들을 한껏 들뜨게 했다. 내게는 일상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여행 그 자체였다.
(서울대공원 산책을 끝내고 나서는 대형마트에 가서 간식 겸 기념품을 사고 돌아왔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추워졌고, 비바람이 불었다. 친구들이 명동에서 우선 만나자고 해서 명동역에서 만나보니 이미 추위에 지쳐있었다. 찾고 싶다던 화장품 브랜드가 있어서 실내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이제는 어딘가 가야 하는데,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 남자 친구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인사동이나 삼청동을 돌아다닐 컨디션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저녁 시간을 어디서 보내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는데 순간 찜질방이 떠올랐다. 이전에 스페인에서 온 친구가 찬양해 마지않던 찜질방..! 그곳에서 수다도 떨고 몸도 좀 녹여야겠다 싶었다. 다른 여행지를 가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함께 아는 다른 한국 친구도 마침 우리에게 오는 길이라고 해서 찜질방을 서둘러 찾아 주소를 알려주고 우리는 명동에 있는 큰 찜질방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찜질방은 신의 한 수였다. 목욕탕 같은 시설이 없는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들이 처음에는 난감해한 것 같지만 빠르게 적응했고 찜질방 내부에 있는 노래방, 오락시설, 식당 등등을 오가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목욕탕의 벌거벗은 몸땡이들에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던 친구의 남자 친구는 제일 열심히 찜질을 했고 잠도 실컷 잔 후 목욕도 오래 하고 나왔다.
친구들이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날 친구들을 배웅하러 공항으로 갔다. 식사를 하는 동안 친구의 남자 친구는 지금까지 여행한 아시아 국가들 중 한국이 최고였다며, 다음에 꼭 더 길게 오고 싶다고 했다.
비록 많은 곳을 다니지 못했지만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다니는 곳을 자신도 다녀올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했다.
외국 친구들과 한국을 '잘' 여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한 것 같다. 날씨, 센스, 그리고 경험.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날씨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조금은 센스 있는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경험. 여기서 경험이라는 건 친구들을 가이드 한 경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한국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한국을 누려보았는지 인 것 같다.
내가 한국을 즐기는 만큼 친구들에게도 한국을 알려줄 수 있다.
이 커플은 올해 11월 말 결혼한다.
그리고 12월 다시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오기로 했다. 이번에는 한 달 동안.
나의 한국 가이드가 어떤 인상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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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싱가포르에서 온 예비부부 커플
4박 5일 일정
토요일 도착 - 드레스 및 촬영 관련 친구들 개인 스케줄, 저녁 식사는 함께 (Korean BBQ. 삼겹살).
일요일 - 오전 친구들 개인 스케줄, 점심시간 이후 과천 서울대공원 벚꽃구경. 저녁 식사 우리 집 근처 분식집, 이후 대형마트 쇼핑.
월요일- 오전 친구들 개인 스케줄, 오후 명동 쇼핑, 6pm이후 명동 위치 찜질방
화요일 - 웨딩사진 촬영
수요일 - 출국
덧. 가을날 서울대공원도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