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와 여행하기 좋은 곳
난 여행을 좋아하지만 '잘'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향감각 제로에다가 수시로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늘 적은 여행지를 다녀오게 되기도 한다. 전주도 여러 번 여행했지만 사실 내가 다녀본 여행지는 한옥마을과 근처 몇 군데뿐이다. 흑.
전주 한옥마을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진부한 여행 장소가 되어버린 듯하다. 너무 상업화되었다고 느껴지는 걸까. 사실 내가 '진부하다' 고 말하기엔 전주의 역사와 문화에 너무 미안하고 교만한 생각이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옥마을에 방문할 때마다 바뀌어있는 가게들과 새로 지어지는 건물을 보면 이젠 정말 오롯이 여행객을 위한 관광지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한옥마을과 그 주변에는 좋은 곳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전동성당, 경기전, 최명희 문학관이고 근처 벽화마을도 아기자기하고 정말 예쁘다. 남부시장에 있는 청년몰도 몇 년 사이 더 좋아졌다.
작년엔 영국인 친구 L과 전주에 다녀왔다. 전주가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의외로 전주에 다녀온 적 있는 외국인 친구들은 별로 없다. L도 이미 한국에서 1년을 산 적이 있었지만 전주 여행은 처음이었다 (L은 지난번 구례 여행을 함께 다녀온 바로 그 친구다). L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기념으로 내가 하루 휴가를 내고 L과 함께 전주에 다녀왔다. 우리들 눈엔 전주 한옥마을이 진부하다, 상업화되어 있다, 할진 몰라도 외국인 친구들은 생각보다 전주를 좋아한다. 너무 붐비는 날만 피한다면 아주 만족할 거다.
이전에도 다른 영국인 친구 J와 전주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J가 아주 만족해하며 '3주간의 한국 여행 중 가장 전통적인 한국 모습을 본 것 같다'라고 내게 후기를 전해준 적이 있다. 그때의 자신감을 가지고, 몇 번의 전주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발전된 가이드를 해줄 수 있었다.
전주에 오면 맛집이 많다고 하던데 희한하게도 난 첫 여행에서 맛집을 찾을 수 없었다. 도통 어디가 좋은지 알 수 없었고 맛있긴 맛있는데 특별하진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 전주 여행, 바로 전주 국제 영화제를 보러 다녀온 그 여행에서 드디어 특별한 집을 찾았다. 그 이후로는 난 누군가를 데리고 전주를 가야 한다면 꼭 이 집에 들른다. 가격은 1인에 3만 원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맛도, 분위기도 만족스럽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한식을 상다리 휘어지게 경험하고 싶다면 한번 가보는 것도 좋다. 음식점 이름은 [양반가].
한옥마을에 다녀온 후 시간이 남는다면 자만 벽화마을에서 사진도 찍고, 카페에 앉아 마을 풍경도 구경하는 것도 꽤 운치 있다. 친구와 전주에 간 그날은 무더운 날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벽화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 허리 중턱쯤에 한옥마을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야외 카페가 있어 거기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너무 더워서인지 사람도 하나 없고 우리만 남아있던 카페에 불던 가느다란 바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전주 한옥마을엔 숙소가 많지만 여행자 대부분이 하루 일정으로 전주에 방문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밤이 되면 갑자기 거리가 조용해지며 전혀 다른 분위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북적북적하던 거리가 조용해지고, 가게는 하나둘 문을 닫고 은은한 거리 불빛이 마을을 비추는 풍경도 꽤 운치 있다.
2016년에 전주 국제영화제를 보러 전주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 혼자 영화를 보고 숙소에 돌아왔다. 영화는 Born to be blue. 거리에 감돌던 썰렁함과 영화의 우울함, 차가운 공기, 그러나 영화 음악이 주던 따뜻함이 온통 뒤섞였던 강렬했던 시간이었다.
전주에서의 당일치기도 좋지만 하룻밤을 지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다녀오고 싶을 만큼. 전주의 한옥 숙소는 아기자기하고 생각보다 저렴한 곳이 많아서 조금만 찾아본다면 만족스러울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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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친구 L과 당일치기 전주 여행
교통수단: 고속버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 --> 전주)
일정:
1. 전주 한옥마을에서 점심식사 (양반가)
2. 한옥마을 구경(전동성당, 최명희 문학관, 카페, 가게 등)
3. 자만 벽화마을
4. 남부시장 청년몰
5. 한옥마을에 있는 베테랑에서 저녁식사(칼국수)